경유 대란, 민생이 무너진다

홍기헌 인턴기자(광운대 행정학과 졸) 입력 2008. 5. 28. 02:54 수정 2008. 5. 28. 02: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화물차 시동 끄고… 어선 닻 내리고… 농가는 시름시름…자고나면 치솟는 경유값 '휘발유 추월' 현실로화물연대 내달 투쟁선언… 정부, 28일 대책회의

개인 화물트럭(1톤) 운송업자 S용달 김인수(51)씨. 요즘 장거리 지방 화물 운송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자고 나면 치솟는 경유 가격에 좀처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 작년 초만해도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데 12만~13만원 정도였던 기름값이 지금은 18만원을 넘는다. 왕복 통행료(3만6,200원)를 포함하면 순수 원가만 22만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운임은 벌써 몇 년째 제자리다. 포화 상태인 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좀처럼 운임이 오를 줄을 모른다. 족히 35만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겠지만, 손님들이 부르는 가격은 25만원 선이다. 차량 정비료, 개별용달조합 회비 등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밑지는 장사다. 당연히 올 들어 매출은 작년보다 30% 이상 줄었다. 월 200만원 안팎. 유류비다 뭐다 다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100만원 남짓이다. 김씨는 "나만해도 기신기신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동료들은 이미 운행을 그만뒀고 나 역시 이대로라면 곧 접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유 대란'에 민생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움직이는 만큼 적자"인 탓에 전국 곳곳의 화물차들이 도로 위에 서 버렸고, 출어에 나서야 할 어민들은 닻을 내린 채 고통스런 신음을 하고 있다. 경유는 산업과 물류의 원천이자, 나아가 화물운송업자, 농ㆍ어민, 축산업자 등 수백만 서민들의 생계 수단이다. 사치성 소비가 적지 않은 휘발유와는 다르다.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민생 경제가 붕괴되고, 산업의 동맥이 멎어버릴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27일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오피넷)에 따르면 26일 현재 전국 주유소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857.74원으로 휘발유 가격(1,861.51원)에 불과 4원 차이로 다가섰다. 정유사의 경유 공급 가격이 휘발유를 추월한 상황에서, 이 추세라면 주중에 가격 역전이 확실시된다.

2003년에 이은 또 한차례의 물류 대란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국 화물트럭 차주 모임인 화물연대는 ▦경유세 인하 ▦운송료 현실화 ▦유가보조금 확대 등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고, 다음달 운송 거부를 포함한 총력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조직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화물연대의 사정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더 심각한 것은 김씨와 같이 아무데도 기댈 곳 없는 자영업자, 그리고 농어민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개인 화물운송업자 박종수(47)씨는 "요즘은 쉬는 날이 일하는 날보다 더 많다"며 "주변 동료들은 견디다 못해 하나 둘 택시기사 등으로 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칙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서민들의 아우성을 외면해 온 정부는 이제서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한승수 총리는 이날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경유 가격이 급등해 영세업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부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28일 고유가 대책 관련 관계장관 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유가 상승 등으로 인한 서민경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당내 특위를 구성키로 하고, 조만간 당정 협의를 열기로 했다.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