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F 조서환 부사장 "나를 키운 건 '긍정의 힘'이었다"

입력 2008. 1. 19. 12:53 수정 2008. 1. 1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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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환 부사장이 서울 송파구 KTF 본사 5층 집무실에서 마케팅에 대한 생각을 말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20여년 전 경영학을 배워보겠다고 '늦깎이' 결심을 한 것이 마케팅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조 부사장은 2000년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군을 꿈꾸며 스물 셋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1978년 훈련 중 수류탄 폭발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병원에서 깨어보니 침대 옆을 지키고 서 있던 아버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버지가 오히려 안쓰러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군인생활은 못하겠지만 살아 있지 않습니까. 영문과에 진학해 멋지게 살겠습니다."

장군의 꿈을 접은 채 군복을 벗은 지 30년이 흐른 지금 그 아들은 업계에서 인정하는 마케팅의 귀재가 되었다. 일찌감치 기업의 임원이 돼 '별의 꿈'도 이뤘다. 조서환(52) KTF 부사장이 역경을 딛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긍정의 힘' 덕분이다. 한 손을 잃은 뒤 주변의 편견과 수없이 맞닥뜨렸지만 그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긍정의 힘'이 있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힘을 북돋웠고, 남들이 "해낼 수 없다"고 도리질친 일을 보란듯이 해냈다.

그를 든든하게 받쳐준 긍정의 힘은 인생의 변곡점 곳곳에서 발견된다. 각고의 노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들어야 했다. 면접관들은 그의 오른손 의수에 시선을 보내고는 불합격 처리를 해버렸다. 생각다 못해 장애를 숨기고 면접을 봤다. 하지만 면접 도중 장애사실을 털어놓고 "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까"라며 당차게 맞섰다. 이를 지켜보던 한 여성 면접관이 "지금 한 말 영어로 옮겨보시오"라고 하더니 그의 이야기를 듣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튿날 합격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그 여성 면접관은 장영신 애경 회장이었고, 애경은 그의 첫 직장이 됐다.

입사와 관련된 일화 한 가지 더. 2001년 KTF에 마케팅전략실장으로 입사할 때다. 내가 골프를 한 손으로 87타를 친다고 하자 이용경 사장은 깜짝 놀랐다. "우와! 한 손으로 87을 쳐요?" "네." 더 이상 다른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대단한 노력파, 집념 있는 사람, 강인한 의지가 있는 사람, 그렇게 그 순간 손이 하나 없다는 큰 약점이 강점으로 미화되어 버린 것이다(중략-조서환 저 '모티베이터' 중에서).

한 손이 없는 그가 골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긍정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에게 골프를 강권(?)한 사람은 장 회장이다. 그는 장 회장이 골프를 하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이 양반이 누구 약을 올리나"라고 생각했다. 이내 다시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한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며 자신을 다독거렸다. 3개월 후 '머리를 얹는 날' 9번 아이언 하나로 103개를 쳤다. 이제 그는 골프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전도사가 됐다고 말한다. 조 부사장이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양손을 가졌는데 못하겠느냐고 자신감이 생겨 곧장 연습장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조 부사장의 사회 생활이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다. 매번 떨어지는 업무는 단순 잡무였다. 매일 바이어를 마중하러 나가 공항에서 피켓을 들거나, 영어문서 번역하는 일만 떨어졌다. 한 팔로 피켓을 들고 있자니 힘도 들고 눈시울도 따가워졌다. 그러나 "바이어를 만나서 생생한 영어를 배우도록 하자", "내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서류를 제일 먼저 보는구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기회와 행운이 따라왔다.

이후 일이 술술 잘 풀렸다. 마케팅 업무를 맡아 '하나로 샴푸', '2080치약' 등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성과로 30대 중반에 일찌감치 외국계 회사의 영입제안을 받고 임원이 됐다. 영국 유니레버, 미국 다이알사, 스위스 로슈에서 마케팅 임원을 거쳤다. 외국계 회사로 옮기기 전 그는 장 회장에게 "4년간 유학을 떠나는 마음으로 다국적기업에 다니겠다"고 약속했다. 정확히 4년 뒤 그는 연봉 절반이 깎이고도 다시 애경으로 돌아왔다. 맨 처음 자기를 인정해준 장 회장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애경으로 컴백한 그는 다시 대박 행진을 이어갔고, 경영학박사 학위도 따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경영학박사가 된 것은 대리시절 경영학을 배워보겠다고 결심한 뒤 16년 만이었다. 2000년 장 회장이 후계구도를 가시화하자 회사를 떠났다. 이동통신회사인 KTF로 둥지를 옮긴 그는 'Na'와 'Drama' 등의 획기적인 브랜드를 시장에 선보이며 마케팅 귀재의 명성을 이어갔다.

조 부사장은 포화되고 정체된 시장에서 마케팅 수완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2080 치약'을 보면 알 수 있다. 애경은 당시 108개의 브랜드가 득실대는 치약시장에서 고전했다. 새로운 브랜드가 치고 들어가 살아남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긍정의 힘'으로 기회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안 된다는 패배의식을 떨쳐버리고 어려울수록 간결하게 승부하라는 마케팅의 기본에 충실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20개 치아를 80세까지'의 명구이다. 이 명구를 내세운 2080치약으로 승부를 걸었고 시장은 결국 그의 손을 들어줬다. 애경은 2080 덕분에 치약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1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업계에서는 조 부사장의 잇따른 마케팅 성공신화를 두고 '미다스의 손'으로 부르기도 한다. 30년 전 잃어버린 오른손이 그에게 미다스의 손으로 돌아온 셈이다. 지칠 줄 모르는 집념과 열정으로 장애를 딛고 일어선 그의 인생은 가볍고 들뜬 작금의 세태에 적잖은 '무게'를 얹어준다.

◇조서환 부사장이 서울 송파구 본사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직원들과 마케팅 전략 회의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며 활짝 웃고 있다. 김창길 기자

#1.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KTF 본사 5층에 있는 조서환 부사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남향인 조 부사장의 집무실은 햇볕이 잘 들어 매우 따스했다.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신다고 덕담을 건네자 조 부사장은 몰라서 하는 소리란다. "왜요?"라고 되묻자, 조 부사장은 "아침 6시쯤 출근하는데 그 시간에는 온기라곤 남아 있지 않아 매우 춥다"면서 "하루 종일 있다 보면 냉·온탕을 번갈아 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임원이 되면 좀 느긋하게 일해도 될 텐데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2. 비누와 샴푸를 만드는 회사에서 이동통신회사로 옮겼을 때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돼 물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그는 옅은 미소를 띠며 예견한 질문이란 듯 답한다. "나는 비누를 만든 적도, 휴대전화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나는 단지 상상을 했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았을 뿐입니다. 상상력을 추진하는 데 비누와 이동통신이 뭐가 다르겠습니까." 조 부사장에게 마케팅은 상상을 실현하는 작업인 셈이다. 꿈과 아이디어에 열정(passion)을 갖추지 못하면 진정한 마케터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창밖 한파에도 불구하고 오후의 나른함을 느낄 만큼 따스한 조 부사장의 집무실에서 그의 마케팅 세상을 엿보았다.

―KTF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뭔가요.

"보다 치열한 시장에서 성취감을 느껴보려고 KTF를 택했습니다. 입사한 날짜가 2001년 11월 16일입니다. 사실 며칠 더 일찍 들어올 수 있었는데 일부러 그날을 택했어요. 왜냐면 11월 16일이 꼭 '011번호(SK텔레콤)를 016번호(KTF)가 따라잡는다'라는 의미를 주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마케팅전략실장으로 와서 음성전화는 1위 사업자를 이기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전체를 뛰어넘기보다는 부문별 1위를 차지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쪼개고 또 쪼개면 핵심이 보인다는 '시장 세분화(segmentation) 전략'이지요. 그래서 나온 게 연령별 성별 브랜드였는데, 10대는 비기(BiGi), 20대는 나(Na), 30대 여성은 드라마(DRAMA)였습니다. 이들 브랜드는 부문별로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지요. 지난해 KTF가 3세대(G) 이동통신 브랜드로 선보인 쇼(SHOW)가 1위를 질주하고 있어 이제는 부분을 뛰어넘어 전체에서도 1등이 될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히트 친 SHOW가 KTF에 주는 의미는 뭔가요.

"사실 SHOW를 도입하기까지 진통이 많았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던 3세대(G)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문제로 내부에서 찬반이 비등했습니다. 그때 조영주 사장이 결단을 내려 3G로 방향을 정했지요. 사실 KTF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10년 늦게 출발해 만년 2등이었습니다. 이 시장 관습을 깨뜨린 것이 조 사장과 SHOW였지요. 2006년 서비스에 들어간 SHOW는 지난해 5월17일 WCDMA시장에서 1등에 올랐습니다. 저는 SHOW라는 브랜드가 소비자의 마음에 심어졌으며, 이제는 프라이드를 가져도 될 명품이 됐다고 자부합니다."

―통신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뭔가요.

"제조회사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면 끝인데 이동통신회사는 서비스를 팔면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통사는 고객 이탈을 막는 게 지상과제가 되지요. 마케팅 측면에서 봐도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비용이 신규로 고객을 영입하는 것의 7분의 1에 불과하니까 고객 해지율을 낮추는 것이 관건입니다."

―마케팅 담당자로 특히 열정과 의지를 강조하시는데 이유는 뭔가요.

"KTF 인천공항 매장 사례가 적절할 것 같네요. 수도권마케팅본부장직을 맡고 있는데 5명의 직원이 상주하는 그 매장에서는 쇼폰이 출시되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 하루에 한 대도 못 파는 날이 비일비재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장 달려갔습니다. 그 매장은 공항 로밍센터 옆이라 로밍을 하러 온 사람에게만 세일즈를 해도 10대는 팔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직원들이 팔려는 의지가 없었어요. 쇼폰이 있다는 말도 사라는 말도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원들을 모아놓고 세일즈 내레이션 교육을 다시 시켰지요. 불과 2시간 정도 방법을 알려준 것뿐인데 2주 뒤에 그 매장에서는 하루 30대를 팔게 됐습니다."

―올해 부사장으로 승진하셨는데.

"올해 승진하면서 법인영업본부를 맡았습니다. 정체된 이동통신시장에서 법인영업부문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통합니다. 올해 CEO가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법인영업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한 만큼, 신바람나게 일해서 가입자 순증 목표를 지난해보다 70% 정도 신장시킬 계획입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하면 길이 있는 법입니다. 꼭 해낼 겁니다."

―성공한 직장인으로 조언을 해주신다면.

"모든 성공은 자신감에서 비롯됩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동기부여(모티베이트)를 하면 성과가 나옵니다. 관리자는 직원들을 어떻게 모티베이트할까만 고민하면 됩니다. 저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부단히 격려하면서 동기부여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에 자서전을 집필하셨는데, 책을 낸 동기가 있나요.

"올해 초에 발간한 책(모티베이터)은 집필에만 3년이 걸렸습니다. 내 삶의 기록을 3년간 틈날 때마다 왼손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갔습니다. 책의 출판이 늦춰지면서 출판사 사장의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하지만 그 책에는 내 인생에서 깨달은 경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내가 젊은이들한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기자 양반!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할 수 있다고 말하라. 그럼 뭐든지 할 수 있다.' 이렇게 꼭 써주세요."

글 하동원 기자, 사진 김창길 기자 goodnews@segye.com

>> 조서환 부사장이 말하는 성공하는 마케터의 7가지 습관

◇조서환 부사장이 최근 펴낸 자서전 '모티베이터'의 표지 사진.

현직 마케팅 9단이 전하는 실전 팁(도움)은 뭘까?

마케팅을 배우려는 학생이나 이제 막 마케팅에 발을 들여놓은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전 팁을 소개한다. 물론 조서환 부사장이 강조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는 기본이다. 조서환이 말하는 '성공하는 마케터의 7가지 습관'을 소개한다.

▲3C를 명심하라

마케터의 기본은 3C에서 시작된다. 우선 발전하기 위한 변화(Change)가 중요하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도전(Challenge)을 안 할 수 없다. 도전을 효율적으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창의력(Creative)이 필요하다.

▲'Why'를 되뇌어라

왜 안 되는가를 계속 물어라. 나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이 두려울 때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 던진다. 그럼 답이 나온다. 나는 손을 잃고서 한동안 대중목욕탕을 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왜 못가?라는 의문을 던지니 못 갈 이유가 없었다.

▲기회를 기다려라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러나 기회는 보는 사람에게만 온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6·25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이 지저분하다고만 볼 때 녹슨 탱크가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는 높게 잡아라

어떤 부서를 맡든지 나는 목표를 사장과 조직이 보는 것보다 높게 잡았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모티베이션(동기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판매목표를 높게 잡으면 결과는 항상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낫다.

▲인적 네트워크를 챙겨라

마케팅을 하려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토대가 있어야 한다. 기업이란 말을 뜯어 보면 기(企)는 사람(人)이 머무르는(止) 곳이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인적 네트워크가 확실해야 마케터로 성공할 수 있다.

▲가치를 평가하라

마케팅은 재화나 서비스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일의 과정과 결과물에 그 이상의 가치를 담을 수 있도록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를 계발하라

나도 영어는 꽤 한다고 자부하지만 요즘에도 새벽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기 계발은 실행하는 사람보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못하는 사람이 더 피곤한 법이다. 그러므로 자기 계발은 하면 할수록 덜 피곤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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