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FTA 비준 연계 압박에 쇠고기 조사권도 '두손' 들어

입력 2007. 5. 28. 22:51 수정 2007. 5. 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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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험 평가 절차를 대폭 생략하기로 함에 따라, 올 가을께면 미국산 갈비가 국내 식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2003년 광우병 파동으로 수입이 금지된 지 4년 만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25일 한국 정부에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개정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지난주 열린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확정받은 '광우병 위험 통제국' 판정을 근거로, 지난해 1월 맺은 수입 위생 조건인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를 고쳐 모든 쇠고기 제품을 수입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28일 수입 위험 평가 절차에 따라 위생 조건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수입 위험 평가 절차는 모두 8단계(그래픽 참조)로 이뤄지며, 세계무역기구(WTO)가 보장하는 수입국의 권리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입 위험 평가 절차를 대폭 생략한다는 방침이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5단계의 자료와 관련한 부분을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해, 6단계인 구체적 수입 위생 조건 협의가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개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세운 신속 처리의 근거는 2005년 수입 위험 평가 과정에서 축적된 미국 쪽의 자료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라는 현재의 수입 기준을 결정했던 2년 전 근거를 이번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이번에 수입 조건을 개정할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판단한 근거와, 우리 정부가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라는 현행 수입 조건을 결정한 근거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의 태도를 두고 광우병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이나 시장 개방에 따른 축산농가의 피해를 챙기기보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수입 위험 평가 절차 가운데 1~5단계는 핵심 절차이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밟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5년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수입 위험 평가를 실시했을 당시 1년 7개월이 걸렸고, 이 중 1~5단계는 1년 넘게 진행됐다. 또 아르헨티나의 쇠고기 수입 위험 평가 때는 1~2단계로 넘어가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엄밀한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며 "첫 단계부터 다시 확인하지 않고 대충 건너뛰겠다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 변경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성사를 위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쇠고기 시장 개방을 연계하려는 미국 쪽의 압력을 의식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범위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협정 타결 직전인 3월 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고, 합의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인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한-미 간에 수입 위생 조건 협의가 시작되면 수입 쇠고기 부위 제한을 없애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대신,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 제한을 유지하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유력하다. 농림부 축산국 당국자는 "협의 과정에서 뼈 수입 조건에는 변화가 있더라도, 연령 제한은 '마지노선'인 만큼 폐지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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