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빚이 1년만에 1억으로..여전히 쉬운 개인회생

이창명|구예훈 기자|기자 2016. 8. 3. 05: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너무 쉬운 빚 탕감, 모럴해저드 부추긴다]-상

[머니투데이 이창명 기자, 구예훈 기자] [편집자주] 저축은행과 대부업 등에서 급전을 빌린 뒤 고의적으로 갚지 않는 얌체족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등록 대부업체의 대출자 절반 이상이 고의적으로 빚을 안 갚는 악성 채무자로 분류될 정도다. 악성 채무는 결국 성실한 대출 상환자들의 높은 이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머니투데이는 3회에 걸쳐 2금융권 악성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 사례와 현황을 짚어봤다.

[[너무 쉬운 빚 탕감, 모럴해저드 부추긴다]-상]

캐피탈과 저축은행, 대부업 등 2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2억원이 넘는 40대 직장인 A씨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빌린 채무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으니 연락을 달라는 글을 보고 이메일을 보냈다. 얼마 뒤 돌아온 답장에는 서울 시내의 B법무사 사무실에 연락해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B법무사는 사무실을 찾아온 A씨에게 자신이 조언한 대로만 하면 채무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채무의 10%인 2000만원을 수임료로 요구했다.

A씨가 2000만원이 없다고 하자 B법무사는 한 업체를 소개해주며 거기에서 돈을 빌려오라고 귀띔했다. A씨는 B법무사에게 소개받은 업체에서 2000만원을 빌려 수임료로 내고 B법무사를 통해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개인회생은 앞으로 계속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개인이 3~5년간 일정 채무를 갚으면 나머지를 탕감해주는 제도다.

B법무사는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은 연체할 필요가 있으니 갚지 말고 버티고 소액의 재산이라도 명의를 미리 바꿔두라는 방법까지 알려주며 꼼꼼하게 컨설팅했다. B법무사가 시키는 대로 하자 A씨의 빚은 진짜 1년 뒤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었다. 빚을 1억원 탕감받는 대신 추가 대출이나 카드 발급은 어려워졌지만 A씨로선 빚 부담이 절반 가량 줄어든 것만으로 만족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2금융권에선 이런 개인회생 신청 악용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법무사 수임료가 필요한 개인회생 신청자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체들이 따로 성업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로 개인회생 신청은 별다른 절차 없이 전화 상담만으로도 상당 부분 진행할 수 있다. 개인회생 신청을 대행하는 업체에 전화를 걸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가 도박으로 탕진했는데 개인회생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재산과 채무 규모 등을 꼼꼼히 파악한 뒤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보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처럼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을 도박이나 주식 투자로 날리고 해외여행 경비나 사치품 구매에 써도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도박빚’이란 키워드를 넣으면 개인회생이 추천 검색어로 뜰 정도다. 개인회생 전문 법무법인이나 법무사 사이트를 들어가면 하루에도 5건 내외의 신속상담을 요청하는 글들이 줄을 잇는다.

대법원에 따르면 개인회생 신청자는 2014년 11만707명에서 2015년 10만96명으로 1년새 1만명 넘게 줄었다. 개인회생 절차가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에 따라 서류심사 등이 강화된 결과다. 하지만 회생신청 인가건수는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최종적으로 개인회생을 인가받은 신청자는 7만7654명이었는데 올해 5월까지 인가를 받은 신청자가 벌써 3만2585명에 달한다. 개인회생 신청 후 보통 1년 뒤에 인가를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인가건수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 셈이다.

2금융권에서 신용대출 리스크를 담당하는 부서는 채무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채무조정제도가 원래 취지와 달리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한다. 대부업 최고금리가 20%대로 낮아진 상황에서 이같은 개인회생 악용 사례가 줄지 않으면 8등급 이하 저신용자 대출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4~7등급 중신용자에 대해서도 대출심사를 깐깐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개인회생 신청건수가 크게 줄었다고 하는데 현장의 대부업체들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부업체 연체자 10명 중 6~7명은 의도적으로 개인회생 신청을 하기 위한 악성 연체자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구예훈 기자 googoo@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