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5조 찍는 5만원권, 어디갔나 했더니..

유엄식 기자 입력 2015. 4. 15. 16:58 수정 2015. 4. 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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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500 박스에 5만원권 뭉칫돈 의혹..한은 "저금리로 현금보유성향 커져"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비타 500 박스에 5만원권 뭉칫돈 의혹…한은 "저금리로 현금보유성향 커져"]

故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비타 500' 상자로 현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5만원권이 검은거래에 활용된 전형적인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적발된 뇌물수수 사건에서 뇌물공여자들은 모두 5만원권을 갑티슈나 담배갑, 비누갑 등에 넣어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1년새 15조 방출된 5만원권, 환수율은 29.7% 불과=5만원권은 지난 한해에만 15조원 이상 늘었다. 한국은행이 15일 펴낸 '2014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화폐발행 잔액은 72조6440억원이며 이 가운데 70%인 52조원이 5만원권이다.

5만원권은 발행 첫해인 지난 2009년 말 9조9230억원, 2010년 18조9962억원, 2011년 25조9603억원, 2012년 32조7665억원, 2013년 40조6812억원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고 지난해 11월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3월말 기준 5만원권 통화량은 55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3달 만에 3조5000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5만원권이 2012년을 기점으로 일종의 '품귀현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서 방출된 5만원권이 다시 시중은행에서 한국은행으로 돌아오는 '환수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발행 첫 해 7.3%였던 5만원권 환수율은 2010년 41.4%, 2011년 59.7%, 2012년 61.7%로 상승했다. 그러나 2013년 48.6%에 이어 지난해에는 29.7%로 환수율이 급감했다.

한은에서 시중은행으로 방출된 5만원권 10장 중 불과 3장도 못돌아왔다는 얘기다. 지난해 5만원권 15조2625억원이 방출됐는데 시중은행에서 환수된 금액은 3조9403억원에 그쳤다.

◇ 비타 500상자에 5만원권 얼마나 들어가나=성 전 회장이 육성을 통해 이완구 총리에게 3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보도됐고, 성 회장 측근이 비타 500 상자를 이 총리에게 전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산술적으로 5만원권만 넣었을 경우 비타 500 상자(100mm 10병입)에 최소 1억원 이상의 현금을 넣을 수 있다. 5만원 지폐는 가로 15.4cm, 세로 6.8cm이다. 5만원권 100장의 두께는 약 1.1cm다. 비타 500 상자 크기는 가로 23cm, 세로 9cm, 높이 14cm다.

상자에 단순히 쌓기만 해도 6000만원 이상(12뭉치) 넣을 수 있고, 여분의 공간까지 활용하면 1억원 이상 넣을 수 있다. 이에 따라 5만원권과 1만원권이 혼합된 형태로 전달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 5만원권 흑역사 살펴보니=5만원이 비리와 부패에 연루된 흑역사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2011년 전북 김제 금구면 마늘밭에서 5만원권 뭉칫돈 110억7800만원 어치가 발견됐다. 경찰조사 결과 밭주인 이모씨는 처남이 불법 카지노사이트를 운영해 모은 '검은돈'을 집안에 숨겼다가 액수가 늘어나 보관하기 어려워지자 땅을 파서 돈을 묻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해 여의도백화점에서 당초 폭발물로 오인받은 쇼핑백에 들어있는 10억원(5만원권 8억원)도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폭로하려던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보내진 '관봉(官封)'이 찍힌 5000만원 돈뭉치도 5만원권이었다.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수천억원대 부실대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5만원권 240장을 브로커에게 주고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이 숨겨둔 비자금 56억원도 5만원권 지폐 다발로 보관돼 있다가 지인이 훔친 사건도 발생했다.

이밖에도 최근 국세청 조사결과 수십억대 체납자의 고급 아파트에서 장롱 등에서 5만원짜리 돈다발 수천만원이 발견됐다. 5만원권이 발행된 뒤 현금을 보관하거나 해외로 빼돌리기 쉬워지면서 고액 체납자도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 한은도 부정 못하는 5만원권 딜레마=전문가들은 5만원권 발행 증가와 저금리, 과세강화 기조가 맞물리면서 현금보유성향이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금리인하로 시중유동성은 풍부해졌지만 그 돈이 실물경기로 이어지는 고리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고 있다"며 저금리 장기화로 은행에 자금을 맡겨도 추가 수익을 얻기 어렵게 됐고 물가상승률이 낮아져 현금 보유시 화폐가치 손실이 줄었다"고 평가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가 5만원권이 발행된 2009년 하반기부터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은은 5만원권의 지하경제 유입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한다. 다만 경제여건상 현금보유 성향이 높아졌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5만원권 환수율 하락은 저금리와 낮은 인플레이션율 등 거시경제여건이 변하면서 현금선호경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엄식 기자 us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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