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윤경의 희망 살림]카드 결제 축소, 나쁘기만 한 걸까

제윤경 | 에듀머니 대표 2013. 3. 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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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의 카드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중단된다고 하고 아파트 관리비의 카드 결제도 없어진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언론에서는 소비자 불편을 강조한다. 그러나 과연 카드 결제 서비스가 축소되는 것이 소비자에게 불리한 것일까?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 가운데 심각한 것이 선진국과 비교해 담보대출 규모보다 신용대출 규모가 더 크다는 데에 있다.

선진국은 전체 가계 빚 중 70%가량이 담보부 채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신용대출이 전체 가계 빚의 50%를 넘어섰다. 그만큼 가계 빚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즉 담보대출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신용대출까지 늘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주택담보대출을 갚으면서 부족한 생활비를 가처분 소득 수준에 맞추는 긴축재정을 선택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통해 쉽게 기존의 소비 생활을 유지한다.

상담을 받은 박모씨도 2억원의 무리한 빚을 끼고 주택을 매입했다. 이자 비용이 생활비의 30%를 차지했지만 소비 생활을 줄이지는 않았다.

물론 한때는 빚을 끼고 매입한 주택 가격이 올라 심리적으로 방심한 탓도 있다. 그러나 이후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과정에서도 소비는 쉽게 줄지 않았다. 소비라는 것이 애초 하방 경직성을 띠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떨어지고 있고 채무까지 부담하고 있는 현실은 소비를 과감히 줄여야 할 만큼 충분히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고 아파트 관리비와 아이들 학원비까지 전부 카드 결제가 가능한 편리한 세상은 당장의 시급한 가계 재무 관리를 뒤로 미루게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카드결제가 지나치게 편리한 세상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관리비는 이미 후불 결제 구조이다. 사용한 후에 결제하는 관리비를 다시 카드를 통해 후불결제를 해야 할 정도라면 이미 그 가계는 재정 상태가 건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리비의 카드 결제가 중단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관리비까지 신용결제하는 우리나라 가계의 재정적 속내를 우려했어야 옳다.

대형마트의 카드 무이자 서비스도 들여다보자. 2011년 한 해 동안 카드사가 대형마트의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부담했던 비용이 무려 1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비용은 소비자도 대형마트도 부담하지 않았다. 카드사가 고스란히 부담했다는 이야기인데 카드사가 손해보는 장사를 할 리 없다. 결국 그 손실분만큼 다른 수익을 챙길 수밖에 없는데 가장 만만한 대상인 골목 상인들에게 높은 가맹점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해결해왔다.

결국 가난한 사람에게 더 비싸게 영업하고 부자인 대형마트에는 더 많은 서비스 혜택을 제공해왔던 셈이다. 소비자가 누린 공짜의 무이자 할부 서비스가 골목 상인의 높은 가맹점 수수료로 충당되었던 것이다.

소비자에게도 무이자 할부 서비스는 소비 과정에서 고가의 제품 소비에 대한 신중한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심리적 계좌의 오류로 인해 100만원짜리 TV를 구매하는데 100만원 일시불과 10개월 할부 10만원은 구매 결정에 큰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당연히 할부는 좀 더 적극적인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것이 반복되면 가계 경제가 크게 경직된다는 것이다.

상담을 받은 김모씨도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굳이 목돈이 들어가는 전자제품을 사지 않을 때조차 매주 할부 결제를 했다고 한다. 20만원가량의 생활비를 3개월 할부 결제를 해야 할 만큼 가계 경제는 위기였다.

문제는 할부에 따른 구매 신중함도 없이 여전히 재정관리를 회피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관리가 절실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상담을 받으러 왔을 때는 이미 카드 결제금이 부족해진 절박한 상황이었다.

카드 결제 서비스가 축소되는 것은 가계 재정 관리의 적극적인 동기 향상을 위해 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순차적으로 조금씩 카드 결제 대상을 축소해야 한다.

< 제윤경 | 에듀머니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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