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포만 놓던 '환율방어' 칼 뺐지만…

한국일보

외환당국이 지난주 예고한대로 원ㆍ달러 환율의 하락 속도를 둔화시키기 위한 본격 행동에 나섰다. 말로 엄포를 놓는 것에서 벗어나, 투기 세력이 '환율 하락'(원화 절상)에 돈을 걸어 차익을 낼 수 있는 여지를 축소하는 내용의 규제 강화에 돌입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27일 3차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외국환은행에 대한 선물환 포지션 비율(자기자본 대비) 한도를 현재보다 25%(국내은행 40%→30%ㆍ외국은행 국내지점 200%→150%) 축소키로 했다.

이 조치는 아시아 주요 통화와 비교했을 때 원화 가치가 가장 빠르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27일까지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의 절상률(환율 하락율)은 2.44%인 반면, 호주 달러는 1.18%, 필리핀 페소 1.71%, 싱가포르 달러 0.68%에 불과하다.

선물환 거래는 특정 시점에 원화와 외화를 교환키로 약정한 대표적인 투기목적 거래인데, 이번 조치로 자기자본이 10조원인 은행은 선물환 보유액이 4조원에서 3조원으로 감소하게 된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선물환 규모가 줄어들면 은행을 통해 시장에 풀리는 달러도 그만큼 감소해 환율 하락 속도를 늦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50%→40%)에 이어 1년5개월 만에 이뤄진 이번 조치는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된다. 다만 축소된 한도는 1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며, 기존 거래분에 대한 예외도 인정된다.

외환당국은 환율 하락세가 이어질 경우 외화자금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달러를 사들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3가지 제도적 틀(거시건전성 3종 세트) 중 하나인 외환건전성 부담금도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 조치에도 불구,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오히려 전날보다 1.4원 내린 1,084.1원을 기록했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 축소 발표 직후 0.7원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정책 불확실성 해소가 오히려 하락 추세에 힘을 실어줬다"고 분석했다. 정부 조치를 미리 예상한 은행들이 관련 한도를 이미 축소한 상태여서 충격이 미미했다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이달 20일(신제윤 재정부 1차관)과 22일(최종구 재정부 차관보) 이뤄진 두 차례 구두 개입 때 환율이 충분히 조정됐다"고 말했다.

향후 전망도 환율이 추세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외환은행 이건희 연구원은 "당국이 강하게 끌어올리지 않는 이상 계속 슬금슬금 내려갈 것"이라며 "9, 10월처럼 수출업체 달러 매도 물량이 분산돼 나온다면 버티겠지만 곧 월말 매도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라 당국으로선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외환딜러는 "달러당 1,080원선 아래로 내려가면 당국이 다시 나서겠지만, 이날 하락 추세를 확인한 만큼 시장을 이기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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