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파트 1채 팔기도 막막… 캄캄한 터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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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수백 명의 배꼽을 들썩이던 행사장 MC, 학원 프랜차이즈 3곳을 운영한 잘나가던 원장선생님, 가방끈 긴 고객들을 차분하게 상대하던 자동차 딜러, 14년째 '이 일'만 해온 분양의 달인까지….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이라면 날고 기던 이들도 아파트 분양상담 창구 앞에서는 한숨을 쉰다.

투자 브리핑만 해도 구름처럼 몰려오던 고객들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분양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사 4명은 하나같이 "2012년 분양시장은 마치 캄캄한 터널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11월 말 인천 송도국제도시 '송도 더샵 그린워크 2차' 본보기집에서 한자리에 모인 분양상담사 4명. 왼쪽부터 이한철 송정두

박영관 고윤희 씨. 이들은 녹색기후기금(GCF) 유치 이전까지 미분양 물량이 남아 있던 이곳에서 분양상담 업무를 해왔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 끝날 기미 안 보이는 불황

고윤희 씨(52·여)는 학원 프랜차이즈 3곳을 운영하던 사교육 시장의 스타였다. 제2의 인생을 살아보겠다며 2008년 아파트 분양상담에 뛰어들었지만 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버렸다.

일을 시작한 지 45일이 지나도록 단 한 채도 팔지 못했다. 이후 4년 새 노하우는 쌓였지만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 씨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기본급 없이 인센티브만으로도 한 달에 몇천만 원을 챙겨가는 상담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한 채 팔기도 어려운 시장에서 한 달 내내 일해도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상담사가 속출하자 급여 지급방식이 일일 기본수당으로 바뀔 정도였다.

올해 14년차 상담사인 송정두 씨(39)는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분양물량은 줄고 불만신고는 되레 늘었다"고 말했다. 분양 후 입주까지 약 2년 동안 아파트 가격이 곤두박질치니 계약을 무효로 하고 싶은 계약자들의 '기막힌' 요구가 빗발친다는 것이다.

시장이 활황일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클레임이 발생하면서 송 씨는 "천직이라 생각했던 상담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그나마 경력이 많은 송 씨가 살아남는 법은 '악성 미분양 현장투입'이다. 상담창구에 앉아 고객을 맞는 대신 아예 완공된 아파트로 안내해 실물을 놓고 설득하면 그나마 통한다는 설명이다.

○ 양도세·취득세 감면에 그나마 반응

이들은 현장에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도 피부로 느낀다. 고객들은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감면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5월 전매제한 완화와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이 나왔을 때는 반응이 크지 않았다. 집값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수요자들이 원하는 것은 집 구입비용을 무조건 줄여주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은 해결책도 '할인'밖에 없다며 한숨을 짓는다. 자동차 딜러 출신인 이한철 씨(41)는 "중대형 미분양도 '비용 깎아주기'가 방법"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가격 인하 말고는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도 이들은 쉽게 낙담하지 않는다. 지방 행사에서 전문 사회자로 이름을 날린 박영관 씨(35) 역시 유머감각으로 고객들의 지갑을 열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만만했지만 요즘 같아선 쉽지 않다. 처음엔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계약을 맺었지만 집값이 계속 떨어지니 꼼꼼히 따지지 않고 계약한 사람들은 이내 불만을 쏟아냈다.

요즘 박 씨는 소비자가 계약서에서 꼼꼼히 챙겨야 할 것들을 반드시 짚어주며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을 하도록 유도한다. 박 씨는 지난달 송도국제도시 '송도 더샵 그린워크 2차' 본보기집에서 실적 1위를 달성했다. 그는 "행사장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사로잡았었지만 요새는 내 앞에 있는 고객 한 명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너무 힘들다"고 밝혔다.

인천=김수연 기자 suy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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