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증세" 하면서 한국은 왜 소득세만 건드리나

박유연 기자 2012. 1. 20.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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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각국이 재정 확충 차원에서 부가가치세(부가세)를 잇달아 인상하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물론 상대적으로 상황이 양호한 영국과 스위스도 2010년 이후 부가세율을 올렸고, 작년 12월 30일 일본이 동참했다. 일본은 우리의 부가세에 해당하는 소비세율을 2015년까지 5%에서 10%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도 부가세율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분출하고 있는 복지 수요를 맞추려면 세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부가세처럼 확실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최기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부가세법의 전반적인 체계를 점검하면서 부가세율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안성호 충북대 교수도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7%에 크게 못 미치는 부가세율(10%)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간편한 재정 확충 수단

국제기구들도 한국에 비슷한 조언을 하고 있다. OECD는 지난해 "한국 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리려 한다면 상대적으로 낮은 부가세율을 인상해 세수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했고, 마이클 킨 국제통화기금(IMF) 자문역은 최근 방한해 "소득세율 인상은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며 "부가세율 인상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의견이 나오는 것은 부가세율 인상이 가장 간편한 재정 확충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가세는 소비를 할 때마다 가격의 10%가 자동 징수된다. 2010년 부가세 징수액은 49조 1212억원이었는데, 세율을 10%에서 11%로 올릴 경우 다른 조건에 큰 변화가 없다면 5조원 가까운 세입을 추가로 올릴 수 있다.

이같은 편리함으로 인해 부가세율을 수시로 조절하는 나라들이 많다. 박춘호 기획재정부 부가가치세 과장은 "유럽 나라들은 경제 사정에 따라 수시로 세율을 조정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부가세는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역진세(逆進稅)'로 알려져 있다. 불공평한 세금이란 뜻이다. 같은 물건을 사면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같은 금액의 부가세를 내야 해 저소득층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다. 10만원짜리 물건을 구입해 1만원의 부가세를 낼 경우, 그 부담은 월급 1000만원인 사람에겐 0.1%에 불과하지만, 월급 100만원의 사람에겐 1%로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오해라는 주장도 있다. 조세연구원은 '한국의 조세·재정정책 평가모형' 보고서에서 "고소득자들은 저소득자들보다 훨씬 많은 소비를 해 납부하는 절대 세액이 클 뿐만 아니라, 고가(高價) 상품의 경우 개별 소비세가 추가로 붙는 경우가 많아 부가세는 형평성을 거의 저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많은 고소득자들이 각종 탈세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부가세를 올리면 고소득층의 실질적인 세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논리도 있다. 소비는 탈세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가세 못 올리는 5가지 이유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부가세 인상에 소극적이고, 가까운 장래에 추진할 계획도 없다. 그 이유는 크게 5가지다.

첫째,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부가세 인상이 형평성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모든 사람이 부담한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데 반길 사람은 없다. 최근 교도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심각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79.5%가 소비세 인상에 반대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올해 선거를 앞두고 있어 연내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 부가세를 내는 사람은 소비자이지만, 이것을 걷어 국세청에 내는 사람은 공급자다. 자영업자 등 공급자들은 부가세를 판매 가격에 덧붙여 받으면서도 자신의 부담으로 여긴다. 따라서 부가세 인상을 제안할 경우 자영업자 등의 큰 반발에 시달릴 수 있다.

셋째, 부가세를 올리면 물가에 바로 충격을 준다. 부가세를 올리면 공급자들이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시키는 경우가 많아 가격이 바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물가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부가세 인상은 어렵다.

넷째, 우리 재정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 재정이 나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부가세 인상 필요성이 덜하다.

다섯째, 부가세 인상은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 성격을 갖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의 낮은 부가세율은 통일 후 재정지출을 대비하는 측면이 있다"며 "통일이 임박하면 부가세율 인상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점들로 인해 정부는 부가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세율엔 손대지 않으면서 세원을 넓히는 방안은 강구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7월부터 성형수술과 애견진료 서비스에 대해 부가세를 새로 부과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면세 사업자는 병ㆍ의원, 농축산물 판매, 주택임대업 등에 종사하는 59만명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되도록 세율을 건드리지 않고 세원을 넓히자는 게 우리 조세 행정의 기본 입장"이라며 "부가세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밖에 주로 부유층이 소비하는 일부 고가 품목에 개별 소비세(예전의 특별소비세)를 새로 부과하는 방안이 있다. 다만 개별 소비세는 품목별로 세율이 다르게 부과되고 있어 조세 체계를 흐트러뜨리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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