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기업 더 빨리 따라 갔더라면 한국 훨씬 발전했을텐데..

2009. 7. 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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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대항해시대, 한국의 기업경영 20년 등….'

덕수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의 방은 집무실이라기보다 서재에 가까웠다. 책장을 가득 메운 온갖 분야의 책들, 그것도 넘쳐 책상 위까지 책들이 빼곡히 쌓

여 있었다. 서울 태평로에 자리잡은 삼성전자 상임고문실 풍경이다.

윤종용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이야기다.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전자 최고경영자직을 성공리에 마친 윤 회장. 이제 그는 국가를 더 걱정하는 자리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윤 회장은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나왔다. 사전 질문지에 대한 답변지였다. 몇 번씩 쓰고 지우고 해서 손수 만든 답변지였다. 그런 답변지가 있었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에 정리된 생각이기 때문일 게다. 윤 회장과의 인터뷰는 태평로 삼성전자 상임고문실에서 시작해 점심 식사 장소까지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현재 경기 상황에 대한 판단이다. 그는 주저없이 답변을 시작했다.

"밑바닥에 온 것이 아닐까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쯤이면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얼마나 급격히 회복할지겠지요. 외환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경제의 중심축이 진원지가 된 것이 아닙니까. 외환위기는 상당히 빨리 회복됐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런 혼돈 속에서 그럼 어떤 정신이 필요할까.

"위기든 아니든 제품을 고급화하고 고부가가치화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불경기가 오다 보면 사람들이 위축되기 마련이지만, 이때 좀 용기를 갖고 계속 연구개발(R&D) 투자 등에 나서야 합니다."

삼성그룹, 현대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 사업을 시작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과거보다 투자가 과감하게 안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업가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부유해지면서 사람들은 편안하게 일하고 싶고, 리스크 없이 사업하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이 약해지고, 서비스산업과 금융산업에 치중하다보니 이런 위기를 맞게 된 것 같습니다. 기업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규제를 풀어주어야 합니다. 기업과 경제를 발전시키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포퓰리즘에 빠져 여론의 눈치를 봐서는 안됩니다."

그는 요즘 전통 주력산업 부활론을 부르짖고 있다. 공학한림원을 통해 전통산업 재건 전략보고서도 만들었다. 왜, 무엇 때문이었을까.

"전통산업은 연구개발을 더하고 제품을 고급화하며 생산성을 올리려는 노력만 한다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습니다. 전통산업에 대한 사회적 노력과 관심이 사라지고 기업가정신은 쇠퇴하고 있죠. 노동집약적 산업이다보니 노사 문제도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다들 손을 들어버리니까 경쟁국에 다 빼앗기는 것이 아닐까요. 넥타이 브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2만~3만원짜리 남대문시장 제품을 20만~30만원짜리 명품보다 좋은 제품으로 고르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브랜드를 키워야 합니다."

그가 요즘 빠져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농업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 평생을 바쳐온 윤 회장이 갑자기 농업이라니?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는 "1960년대 산업화 정책을 펼칠 때처럼 농업 분야를 지원하고 기술도 개발했다면 농업이 크게 성장했을 것"이라며 아쉬움부터 토로했다. 그는 이제 농업도 하나의 산업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정권은 농민, 농촌, 농업을 구분해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뒤로한 채 단순한 정치적 포퓰리즘에 영합한 농민 소득보전용 지원금 위주의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이러한 지경에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공학한림원을 통해 농산업경쟁력강화위원회를 만들어 농업을 산업공학적인 측면에서 보고 혁신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농업이 산업화할 수 있도록 R&D가 강화돼야 합니다. 또 농지 외지인 소유 규제, 그린벨트 정책 같은 것을 풀어서 기업화의 길을 트는 등 농업이 산업화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 문화, 공연, 예술, 의료, 식품 등과 연계해 고부가가치화를 꾀해야 합니다.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일본 등에서 하고 있듯이 기업적 식물공장을 비롯해 공장형 첨단농업 모델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 해소 묘안은 없을까.

"초ㆍ중ㆍ고 시절부터 과학과 수학에 흥미를 갖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서 어릴 때부터 과학기술에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해야 합니다. 올해 중ㆍ고 교육과정을 개편한다고 하는데,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교육 관련 당사자들(학생, 학부모, 학교, 교사, 교육부, 정치권, 시민단체 등)의 이해관계와 이념 때문에 포퓰리즘에 휩싸여 적당히 개편되고 만다면 우리 나라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화제를 좀 돌려봤다. 삼성전자에서 이룬 신화에 대한 얘기다. 단기간에 삼성전자가 성공을 거둔 DNA를 그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대답을 좀 머뭇거렸다. 다시 입을 뗐다. 대답은 의외로 수수했다.

"경영은 자원과 프로세스의 관리이며, 혁신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경영은 복합적인 것 같습니다. 서로 영향을 받고 주는 것이죠. 직원들이 정말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했습니다. 또 조직에 파벌이 없고 아주 깨끗합니다. 서로가 단합이 잘된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철 창업주 시절부터 사람을 중시하고, 좋은 사람을 많이 확보한 때문이 아닐까요?"

파격적인 보상체계 때문은 아닐까.

"다른 기업보다 삼성의 보상이 좋아진 것은 외환위기가 지난 이후의 일입니다. 이건희 전 회장은 이익을 배로 내면 월급도 배로 주겠다고 늘 이야기해왔죠." 그는 지난해까지 삼성전자 최고경영자직에만 만 11년을 있었다. 삼성전자가 가장 급속한 성장 커브를 그렸던 시기다. 마음속에 남는 아쉬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의 답변은 간결 명료했다.

"일류 기업을 빨리 따라가지 못했던 게 아쉽습니다. 좀 더 빨리 따라갔다면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더 기여했을 겁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꼭 필요한 것일까. 여전히 기업에 대한 규제가 많다고 느끼고 있는지 물어봤다.

"규제 문제 해결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제조업체들은 상당 부분 해외에 진출해 있어 규제를 덜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들은 엄청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정부뿐만 아니라 NGO 등 규정화돼 있지 않은 규제도 많습니다. 공권력 확보와 법질서 유지가 안돼서 오는 문제는 포괄적으로 다 규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손가락은 유난히 길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제스처도 더 자주 나오고 긴 손가락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우리도 이제 새로운 미래 먹을거리를 고민하고 있다. 그리노믹스(Greenomics)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냥 녹색, 녹색 하지만 말고 집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갈 녹색의 방향이 어떤 것인지 정의해서 집중시켜야 합니다. 환경만 생각하면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고 기업 비용만 커집니다. 이제 경제성장은 환경과 결부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환경단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조건 환경보호로 갈 수는 없어요.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겠지만 환경과 경제는 이제 어느 한쪽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가 가장 높은 가치를 두고 살아온 좌우명은 무엇일까. "좌우명이란 게 뭐 따로 있을까요. 정심과 성의를 가장 중시하면서 살았습니다. 또 인내, 감사도 중요시했지요. 이를 다 실행하기는 어렵지요."

또 하나 그는 '열린 귀' 자세를 중시했다.

"혼자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게 중요합니다. 대화하면서 경제에 대해 많이 배우는 편입니다."

반드시 읽을 책은 2권을 구한다고 한다. 한 권은 사무실에, 한 권은 집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부분 부분별로 읽어보기 위해서다.

그가 이제 관심을 갖는 것은 '봉사활동'과 '기부'다.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가장 부족한 것이 이런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화려한 최고경영자이기에 앞서 영락없는 아버지요, 할아버지였다.

집무실 한쪽 구석에는 외손자 사진을 디지털 액자에 넣었다. 주기적으로 사진이 바뀐다며 친절한 설명을 할 때는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아들은 탤런트 윤태영 씨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어떻게 해서 이런 아들을 길러냈을까. 그는 이 부분만큼은 솔직히 털어놨다.

"아들이 연예계로 나간다고 해서 엄청 반대했습니다. 그보다 더 고달픈 일이 없을 것 같아서였죠. 하루는 아들이 나에게 방송업계 사람들을 소개해달라고 하더군요. 연결은 해줬지만, 사전에 그 사람에게 아들을 만나면 절대로 연예계에 발을 붙여서는 안된다고 혼내주라고 했을 정도였죠. 아들이 꾸중만 실컷 듣고 왔는데도 한 달 뒤에 다시 소개해달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네다섯 번을 하다보니까 나중엔 아버지 못 믿겠다고 하더군요(윤 회장은 이 부분에서 크게 웃었다)." 그래도 최근 종영한 주말 드라마 '2009 외인구단'을 가장 열심히 챙겨보는 아버지가 됐다.

◆ 40년前 日연수때 충격이 '1등 삼성'일군 초석됐다 

= 경북 영천 출신인 윤종용 회장(65)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전형적인 테크노 경영자다.

1990년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를 시작으로 삼성전기 사장, 삼성전관(현 삼성SDI) 사장, 삼성그룹 일본 본사 사장을 거쳐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 사장직에 올랐다. 3년 뒤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해 지난해 5월까지 삼성전자 최고사령탑을 맡아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로 육성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설립된 1969년 말부터 3년에 걸쳐 받았던 일본 연수를 잊지 못한다. 당시 산요전기와 미쓰비시전기에서 세 차례 연수받았던 그는 일본의 앞선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당시 내 세대 동안 일본 기술자들과 경쟁할 수 없으며 삼성전자도 일본 전자회사를 따라갈 수 없다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를 세계 전자회사 중 매출 5위권, 이익은 최상위권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는 2006년 4월 승지원에서 있었던 한 회의를 가슴속에 담고 있다. 당시 이건희 회장 주재로 전자 관계사 사장들의 만찬을 겸한 회의가 있었다.

이 회장은 당시 "반도체, LCD, 휴대폰들이 세계 1위를 하는 것과 TV가 1위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왜 TV는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되느냐"고 질문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참석했던 삼성 전자계열사 CEO들은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TV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CEO들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제품인 TV는 세계 1위가 어렵고, 특히 일본의 선두업체를 이기기 더욱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렇지만 "모두가 단결해 한번 해보자"라고 결의했고, 'TV일류화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일은 일사불란하게 추진돼 한 달 만에 실무팀 구성까지 끝냈다. 그 효과는 1년이 조금 지나며 나타났고, 2년 뒤에는 삼성 TV가 세계를 제패했다.

윤 회장은 "세계 1위 제품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은 TV를 보면 참으로 큰 자부심을 느끼며,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고, 미래는 창조하는 자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40여 년 전 일본 연수를 받으며 느꼈던 패배의식과 좌절감은 도전의식의 결여에서 나온 젊은 시절의 짧은 판단이었다"고 회고했다.

[대담=전병준 경제부장 / 정리 = 박용범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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