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나라당 찍었는데..다음엔 어림 없다"

2008. 4. 22.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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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장] '뉴타운 공약' 논란 서울 동작·금천 민심

"당분간 뉴타운 추가 선정 고려하지 않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총선 뒤 불거진 '뉴타운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이날 '시민고객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부동산 가격이 불안정한 지금은 당분간 뉴타운 추가 선정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소모적인 논쟁은 끝내자"고 제안했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뉴타운 지정'을 공약(公約)으로 내걸어 대거 당선됐지만, 총선 뒤 오 시장이 "뉴타운 추가 지정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그 동안 '공약(空約)' 논란이 이어져 왔다.

서울 48개 선거구 가운데 26개 선거구에서 뉴타운 공약이 쏟아졌다. 그러나 국회의원 후보자의 말을 믿고 투표한 주민들의 꿈은 불과 1주일도 채 안돼 산산조각이 났다. 선거 뒤 민주당은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동작을), 현경병 당선자(노원갑), 안형환 당선자(금천)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정치권의 공방과 상관 없이 이번 '뉴타운 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지역 주민이 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지역개발'과 '재산권의 정당한 행사'에 유리한 후보에게 표를 줬는데, 결과적으로 배신당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의 현재 분위기는 어떨까.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과 금천구 시흥3동 지역 주민들을 만나 민심을 직접 들어봤다.

"뉴타운 안되더라도 재개발은 되겠지?"

"정동영 후보를 지지했지만, 이번 투표 때 정몽준 의원을 찍었어. 뉴타운 개발 꼭 한다고 했거든. 오세훈 시장의 동의까지 받았다고 했으니까 믿었지. 그 사람 돈도 어마어마하다며? 안 되면 자비 털어서라도 해줄 줄 알았지. 그런데 이게 뭐야? 뽑은 거 후회해."(사당시장에서 만난 50대의 한 상인)

'뉴타운 공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 사당시장 일대. 18일 오후 만난 주민들 대부분은 "지지 정당과 지지 후보와 상관 없이 '뉴타운 공약' 때문에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을 찍었다"며 한숨부터 쉬었다.

사당1~5동은 도로 하나를 두고 방배동과 맞닿아 있다. 4호선 사당·총신대, 7호선 남성역 등 주거환경이나 교통 등은 인근 서초구 방배동과 별 차이가 없지만, 땅값에서만큼은 3배 가량 차이가 난다. 사당동이 평당 1500만~2000만 원 선인 반면 방배동은 평당 5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낮은 층의 주택가가 많은 이 지역에는 서민들이 주로 산다.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주민들의 기대감은 한껏 부풀었다. 울산에서 지역구를 옮긴 5선의 정몽준 의원이 동작을에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4조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재력가에다, 여권 실세다. 여기에 정 후보는 선거가 한창인 지난달 27일 주민들의 기대를 확신으로 바꾸는 '깜짝 발언'을 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배신이야! 배신"

"사당동과 동작동에 뉴타운을 건설하겠다. 오세훈 시장을 만나서 확실하게 설명했고, 오 시장도 확실하게 동의해 주었다."

서울시장이 동의까지 했으니, 이 지역의 뉴타운 지정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정 후보는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를 가볍게 눌렀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이 곳에서는 "정몽준을 찍어야 지역이 개발된다"는 여론이 폭넓게 형성됐다고 한다.

사당1동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몽준 후보도, 정동영 후보도 모두 뉴타운 공약을 내놨지만, '힘이 있는 사람'으로 표심이 움직였다"며 "뉴타운이 안되면 재개발이나 재건축 추진 지역이라고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동작지역 민심은 180도 뒤집어져 있었다. 뉴타운 개발로 살기 좋은 동네가 되리란 기대는 "차라리 총선을 다시 하자"는 거센 항의로 바뀌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 교류가 빈번한 사당시장 골목은 정 의원 성토장으로 바뀌고 있었다. 포목점 주인 임아무개(55)씨는 "뉴타운이 안된다면 그것은 사기"라며 "정몽준이 부자니까 사비를 털어서라도 (뉴타운을) 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이아무개(47)씨도 "주민들을 철저하게 농락한 것"이라며 "선거가 끝난 뒤 주변에서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런 격한 분위기와 달리 "지켜보자"며 관망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정보에 밝은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이 그런 부류다. 천일부동산 임민선 대표는 "차기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그러니까 오세훈 시장 임기 말년에 지정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놨다. 임씨는 "총선에서 후보들이 표를 의식해서 낸 공약이긴 하겠지만, 뉴타운 공약은 2년 전 지자체 선거 때부터 나온 것"이라며 "사기라는 생각은 안 든다"고 말했다.

342표 차 박빙 승부 가른 '시흥 뉴타운'

"시흥3동 항의집회. 서울시와 건교부는 뉴타운 개발 이행하라!(시흥동 뉴타운 발전 카페)"

서울에서 천안까지 이어진 1번 국도 뒤편으로 저층의 빌라와 단독주택으로 이뤄진 아담한 동네가 있다. 바로 시흥3동이다. 하지만 지난 18일 동네 어귀에 내걸린 펼침천을 보니, 평온한 겉보기와 달리 이 곳도 '뉴타운 공약'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그동안 그린벨트와 고도제한 등에 묶여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어졌다. 서울과 안양-광명과 맞닿아 있는 서울의 남쪽 끝자락 금천구는 서울에서 평당 1000만 원이 안 넘는 유일한 곳이다. 2005년 8월 시흥1~5동이 '시흥 뉴타운' 후보지로 지정됐지만, 사업 착수가 늦어지고, 시흥3동이 뉴타운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총선을 치르는 동안 이 지역 주민들이 뉴타운 공약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한나라당 안형환 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전면에 들고 나왔다. 안 당선자는 총선 이틀 전인 지난 7일 시흥3동 박미시장 유세에서 "며칠 전 오세훈 시장이 조용히 왔다 갔다"며 "총선이 끝나면 뉴타운 문제를 본격 협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술렁였다. 그리고 전통적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던 금천구는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안 당선인은 시흥3동에서 이목희 후보보다 650표를 더 얻었다. 금천구 전체에서 안 당선인이 이 후보를 겨우 342표 차로 이겼으니, 시흥3동 표심이 당선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셈이다.

서울 금천구 시흥3동 "제대로 사기 당했다!"

"안 당선인이 유세할 때 '뉴타운 된다, 오 시장하고 담판 지겠다'고 확신을 줬잖어. (뉴타운) 안되는 것을 '된다, 되게 해주겠다'고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완전한 사기지."

'선거'와 '뉴타운' 이야기를 꺼내자 박미시장은 앞은 금세 왁자지껄 토론회가 벌어졌다. 문구점 주인 이현준(60)씨가 "속았다"고 운을 뗐다. 이씨는"안 후보가 당선된 것은 시흥3동에서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라며 "이를 배반한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22년 시흥 토박이로 살았다는 박천금(68)씨도 "사기"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서울의 관문인데, 이 곳은 인접한 안양이나 과천보다 낙후됐고, 땅 값도 훨씬 싸다"며 "그나마 '뉴타운'이 숙원사업이었는데, 이게 물건너간 것 같아 주민들이 많이 격앙되어 있는 것"라고 말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50대의 여성은 한나라당에 역정부터 냈다. "기대만 부풀려 놓고 이제 와서 어쩌자는 것이냐. 한나라당 후보들이 시장, 구청장, 구의원까지 싹쓸이 하면서 오히려 우리 지역은 더욱 소외되고, 버림받는 느낌이다"

반면, 오 시장의 '뉴타운 유보' 방침과 달리 한나라당 프리미엄에 편승한 기대심리가 여전히 주민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곳에 살면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전용춘(58)씨는 "언젠가는 뉴타운 개발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안 당선인이 정치적으로라도 해결한다고 했으니, 일단 추이를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약이 지켜지지 않을 땐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에 전씨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왜 한나라당을 찍었는데…. 다음 투표 때는 어림도 없다"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킨 것도 뉴타운이지만,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도 뉴타운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겨레> 취재·영상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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