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임대주택… “들어가면 뭐해, 월세 못내 쫓겨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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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하루 방값 1만5000원짜리 서울역 쪽방에 이동길(가명ㆍ47)씨가 살기 시작한지 벌써 4년째. 그 전엔 딸아이와 함께 아파트에 살았다. 임대였지만 일용직으로 일하는 밤에 홀로 지내는 딸아이를 지켜줄 경비원이 있어 든든했다. 쪽방생활은 다리를 다치면서 시작됐다. 일을 나가지 못해 수입이 끊긴 후 매달 13만원 가량의 임대료가 연체됐던 것이다. 3개월을 넘기자 독촉장이 날아왔다. 5개월째는 퇴거 명령을 받았다. 결국 딸아이는 동생네 집으로 보내고 쪽방촌을 파고들게 됐다.

#고시원에 거주 중인 정지운(가명ㆍ61)씨. 2년 전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공급한 임대아파트의 입주 심사를 통과했던 그가 이곳에 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매달 내는 임대료 16만원이 문제였다. 수도와 전기, 가스요금 등도 막막했다. 임대료가 몇달 밀리면 강제 퇴거 조치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씨는 월 20만원짜리 고시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차기 정부의 최대 정책 화두로 주거복지가 꼽히고 있다.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짓겠다는 목표는 이미 드러나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공급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이 임대주택을 지으면 지을수록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 때문이다. 단순히 공급량만 늘려보자는 발상으로는 금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다양한 저소득층에게 돌아가는 만큼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공급량만 따지면 현 정부도 뒤지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2011년 공급된 임대주택은 총 34만8965가구다. 연평균 8만7000여가구 꼴이다. 1990년대 이후 들어선 정부 가운데서는 가장 적다. 하지만 첫 선을 보인 보금자리주택 정착기와 장기간 지속된 금융위기 여파를 감안하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다.

◇'양과 질' 모두 잡아야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임대주택 공급량은 최소 20만가구다. 철도부지에 아파트와 기숙사를 짓는 '행복주택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건설임대 7만가구와 매입전세임대 4만가구, 보금자리주택 임대비율 증가분까지 합친 물량이다.

신혼부부와 대학생, 고령층 등의 주거약자들을 끌어안기 위한 계획이다. 공급 목표치로 보면 MB정부보다는 한결 적어 실현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문제는 임대주택 공급자의 부담을 얼마나 적게 지우면서 주거약자들의 다양한 형편에 맞는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느냐다. 우선 임대주택 주 공급원인 LH 등의 재무적 현실은 지금도 녹록잖다. 전문가들이 민간임대주택 활성화를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용식 수목건축 대표는 "전체 임대주택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임대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공급에만 치중해온 지금까지의 방식과 달리 임대주택 수요를 세분화해 생활수준에 걸맞는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선순환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맞춤형 주거복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부담스런 임대료는 임대주택 거주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임대료 책정 기준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LH와 SH공사 등이 모두 정부 고시에 맞춰 임대료를 정하고 있다. 영구임대아파트의 임대료는 '영구임대주택의 표준임대보증금 및 표준임대료'에 근거해 ㎡당 1568원이 책정된다. 시세의 30%이며 평균 3만4000원, 최대 5만원을 넘지 않는다. 거주민에겐 부담이 크지 않다.

하지만 무주택 저소득층에게 공급되는 공공임대는 상황이 다르다. 역시 국토부 고시에 맞춰 감가상각비와 대손충당금 등을 반영해 책정되는데 인근 시세 반영비율이 높다는 것이 문제다. 예컨대 LH가 공급하는 85㎡(전용)이하 국민임대 임대료는 인근 시세의 55~83%선이다. 85㎡초과로 면적이 제법 넓은 10년 공공임대는 시세의 90%까지 책정된다. 소득이 높지 않다면 입주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몇년새 새 임대 유형으로 등장한 신축다세대 역시 시세의 80%선으로 부담이 적지 않다. 고급 임대로 분류되는 재건축 임대는 최고 90%를 웃돌아 임대주택이 아니라 저렴한 일반매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변화의 시작.. 안착 가능할까?

= 서울시는 주거복지 차원의 도시계획과 임대주택 공급 패러다임을 내놔 주목받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선봉장이다. 도시계획의 큰 틀은 전면철거식 재건축ㆍ재개발을 지양하고 가로주택정비 등 대안사업을 확대하는 데 맞춰져 있다. 고층 재건축이 불가피한 곳에서는 소형평형을 더 많이 짓고 임대와 분양주택을 혼합시키는 '소셜믹스'를 구현 중이다.

임대주택 8만가구 공급계획은 소외계층별 다양한 주택을 공급하는 식으로 바꿨다. 특히 주거약자들의 빈곤을 감안, 임대료를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올 2만5000여가구에 달하는 임대공급 계획을 내놓으며 땅값을 아끼기 위해 낡은 공공청사를 리모델링하거나 시유지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고가도로 밑 공간을 활용한 1인 가구용 초소형 조립식 주택도 비슷한 취지다.

공공기관의 재무 악화를 감안, 사회적기업과의 협업을 활용한 방식도 적용할 방침이다. 시립의료시설을 연계한 의료소외계층 돌봄형 주택, 일자리 지원주택 등 복지연계형 주택은 저소득층을 더욱 세분화한 대목이다.

LH 역시 도심에 보유한 자투리 땅을 활용, 저렴한 도시형생활주택을 공급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 시세 대비 70~80% 수준의 임대료를 책정한 17~59㎡ 규모의 주택을 지난해부터 공급하기 시작했다. 독신자나 고령층, 신혼부부용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설명이다. 주택을 공급하면서 맞벌이 부부 아동, 장애인 등을 안심하게 돌볼 수 있는 '안심맘 사업', 청소년, 노인 등 문화소외계층에 대해 저렴하고 질 높은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반 사업' 등 커뮤니티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기업에 임대주택 공급을 의존할 경우 재무상태는 더욱 나빠질 것"이라며 "민간을 적극 활용하되 공공 임대주택으로 민간의 임대료를 견제하는 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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