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만 수직상승..등급 높을수록 골치

아시아경제

규제에 갇힌 주택정책 ①주택성능등급제
아파트단지 대부분 최소한 기준만 충족

[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 #계룡건설이 동탄2지구에 조성하는 '계룡 리슈빌' 분양공고를 들여다보던 김모씨(42세)는 고개를 갸웃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딸이 새집 증후군에 시달린 적이 있어 친환경 자재를 썼는지를 살펴보려고 했는데 성능등급을 나타내는 항목이 없었다.

다른 아파트 공고에서 본 기억이 있던 김 씨는 해당업체에 성능등급이 왜 표시돼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1000가구 미만 아파트단지는 성능등급을 평가받을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침체된 주택시장에서 소비자들의 까다로움은 점점 더해진다. 소비자들의 의식이 높아지는 데다 재산의 상당부분을 투자하는 만큼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주택정책은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다. 좋은 취지라고는 하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후 경직되게 운영되다보니 오히려 소비자들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다.

정부당국이 규제 위주의 제도를 만들어놓고 계속 이를 지키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주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주택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난 2005년 도입한 '주택성능등급제도'는 대표적인 공급규제 정책의 하나로 지목된다. 등급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분양가를 더 올려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지만 공급주체인 건설사들마저 손을 젓는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요즘 같은 시대에 분양가를 누가 올려 받으려고 등급을 잘 받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등급을 잘 받으면 소비자들에게 호소력은 높아지겠으나 비용만 들이는 수준이라는 인식이 적잖다.

더욱이 소비자들도 불만이다. 분양공고문에 등급 평가서를 공지토록 의무화돼 있으나 1000가구 이상 단지에만 적용될 뿐이다. 1000가구 미만의 단지의 평가는 사업주체가 자율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1000가구 이상 대규모 단지는 성능등급 평가를 받아 한 차원 높은 아파트가 만들어지고 있을까? 최근에 분양된 아파트 중 1000가구 이상 단지들의 공고문을 살펴본 결과, 도입초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량 바닥충격음 등의 구조 관련 항목은 벽식구조 등의 건설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쉽게 개선할 수 없다"며 "제도도입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중량충격음의 경우 2006년이나 지금이나 모두 대부분 최하위 등급을 받고 있다.

이렇다보니 주택성능등급제도의 효과가 소비자들의 피부와 와 닿지 않는다. 최모씨(45세)는 "대부분의 아파트단지 성능등급은 일부 항목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했음을 의미하는 별 한개(4등급) 표시로 돼있다"며 "주택의 질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취지를 살릴 의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힐난했다.

최 씨처럼 유심히 등급표시를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런 제도 자체가 있는 지도 잘 알지 못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알 정도로 작은 글씨인 데다 견본주택 등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서다.

이에 대해 한 건설사 분양관계자는 "주택성능등급제 취지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분양가격을 높이겠다는 식으로 오해를 받아 아예 마케팅 대상에서 제외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돈 들여 등급을 평가받아놓고도 무용지물인 셈이다.

그런데도 제도를 도입한 정부 관계자는 홍보 일색이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건설공급과장은 "주택성능등급제도는 입주민들이 거주할 주택의 질을 높이고 등급 평가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정책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내년 이후에도 현재의 틀을 계속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진 기자 tj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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