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난민 시대, 일자리 없나요?]"고용 없인 성장도 없다".. 일본 '새로운 공공성'에 올인

도쿄 | 특별취재팀 2010. 9. 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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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일자리 확충, 반성과 새 기운 ③고용파괴 뒤늦은 반성 - 일본

일본은 우리보다 '빠르다'. 경제성장도, 고통도 빨리 맛봤다. 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1990년 말 거품 붕괴로 경제위기가 닥쳤다. 정글자본주의 가치관이 횡행하면서 사회는 양극화로 치달았다. 경제성장기 입도선매됐던 청년세대들은 일자리가 없어 프리터 등 고용난민으로 내몰렸다. 현재 일본의 청년실업률은 한국보다 높다. 세계 최장수 국가지만 은퇴자들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 일본 사회는 그동안 고용 문제를 자기책임론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개념이 바뀌었다. 불안정 노동과 빈곤으로 일본경제가 활력을 잃었다는 진단이 등장했고, '사회 책임'이라는 자각도 생겨났다. 일자리 안전망을 확충하고 파견노동을 규제하려는 노력들이 진행됐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당사자 운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의 일자리 문제 해결 노력을 들여다봤다.

정권교체 이후 '인식 전환'

니시우라 겐지(42·가명)는 5년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중소기업 과장이어서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의 삶이 바뀐 것은 회사 창고에서 작업을 하던 중 실족하면서부터다. 사고로 불면증이 심해져 18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생활비에 병원비까지. 통장은 갈수록 비어갔다. 결국 돈이 바닥나면서 삶은 홈리스로 바뀌었다. 거처 없이 떠돌다 보니 재취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살면서 크게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는데도 왜 이렇게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그는 현재 비영리단체인 '홋토포토'의 도움으로 장애인 활동보조 자격증을 따 하루 4시간씩(시급 800엔)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1990년 거품이 붕괴되고 경제가 악화되면서 일자리 찾기가 어려웠던 시절 일본에서는 '자기책임론'이 득세했던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나 파견근로 같은 노동은 자신의 선택일 뿐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국내에도 낯익은 프리터를 비롯해 프레카리아트가 유행했던 시절이다. 자민당 정권은 '거품은 꺼졌지만, 빈곤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 같은 시각은 2008년 금융위기 뒤 파견노동자들이 대량해고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대기업들은 금융위기 뒤 불황에 직면하자 고용조정 수단으로 파견근로자에 대한 계약을 일시에 파기하면서 40만명가량을 해고한 바 있다.

하지만 2009년 야당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사정은 바뀌었다. 일본 정부는 요즘 고용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핵심은 '고용은 성장의 토대이며, 고용불안은 경제 활력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고용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후생노동성 고용정책연구회는 지난 7월 '지속가능 사회실현을 위한 고용·경제시스템'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비정규직 증가→소득감소·저출산→내수부족 및 경제활동인구 감소 등 경제활력 저하'라는 구조가 경제 침체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일본 경제에서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내수가 침체된 데는 '불안한 고용' 영향이 컸고, 결국 내수회복 없이 수출에 의존해온 일본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다시 직격당했다는 것이다.

저출산 현상도 고용문제와 관련이 크다는 진단을 내놨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급여도 적기 때문에 비정규 근로자들이 결혼을 기피하면서 저출산을 가속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2007년 현재 30~34세의 노동자 중 배우자가 있는 비율이 정규직은 59%인 데 비해 비정규직은 28%에 그쳤다. 급여수준의 정체도 내수부족을 야기했다. 2009년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00.3(2005년=100)인 반면, 현금급여총액은 상용근로자 30인 이상 사업장이 94.8(2005년=100)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밑돌고 있다.

보고서는 고용안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개념은 '새로운 공공성'이다. 일본이 활기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나 지역조직, 기업, 정부 등의 자발적인 협력을 통한 '새로운 공공성'이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 정부가 신성장전략으로 환경·건강·관광분야를 주력 산업으로 삼겠다는 정책목표와도 맞물린다. 이를 위해서는 NPO와 사회적 기업 확충,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통해 공공분야에서 전문적 지식이나 실천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일본 임금통계에 따르면 전체 산업의 상용일반 근로자의 평균 급여는 월 29만5000엔인 데 비해 복지시설 종사자는 20만2000엔이다.

보고서는 기업에 대해서도 고용증대 등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고용친화적인 세제개편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특히 24시간 영업 등 과도한 편리성을 추구하는 소비행동이 악순환을 가져왔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라는 양면성을 감안해 소비·기업활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 같은 인식을 토대로 한 실업대책은 사회안전망 확충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1안전망인 '사회보험'과 최종 안전망인 '생활보호' 사이에 제2의 안전망을 만든 것이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 격인 생활보호와 사회보험의 두 축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점을 감안해 고용보험 수급자격을 완화했다. '1년 이상 계속 고용될 전망'이 있어야 하는 보험가입 요건도 지난 4월 '31일 이상'으로 대폭 낮췄다. 실업급여 자격조건도 '고용보험 가입기간 12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구제가 어려운 취약계층들이 적지 않고 또 이들이 모두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제2사회안전망을 도입했다. '취직안정자금융자'가 대표적이다. 주택수당과 취업훈련 생활비를 대출방식으로 빌려주되 수급자가 취업에 성공하면 대출금 상환을 대부분 면제해준다. 상환이 어려울 경우에는 노동금고에서 낮은 금리로 일부를 지원해준다. 일자리와 주거지를 동시에 잃은 이들에 대해 주거를 안정시킨 뒤 재취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후카와 히사시 시즈오카 대학 교수는 "고용정책을 성장이나 규제완화와 연계했던 자민당 정권과 달리 민주당 정부의 고용대책은 고용안정과 취업연계 및 생활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일용 및 등록형 파견에 대한 규제와 제조업 파견금지 등을 뼈대로 하는 파견법 개정작업도 추진 중이다.

파견노동은 일본형 고용난민의 상징이다. 일본 산업계의 상징인 도요타가 위치한 아이치에는 오키나와나 규슈 같은 변방에서 올라온 근로자들이 많다. 이들의 거처는 회사가 제공하는 기숙사다. 하지만 해고될 경우 당장 갈 곳이 없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재계 등 기득권층의 반대를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건이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의 엔도 가즈오 노동정책본부 주간은 "파견법안 내용 중 등록형 파견과 제조업 파견금지 등은 국제경쟁이 격화되는 상황 등을 감안해 유연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문제 재원마련을 위해서는 소비세 인상 등 재정 개혁이 필요하지만 부정적 여론이 크다. 엔고 현상에 따른 경영압박으로 기업들의 공장 해외이전 움직임도 불안요소다.

특별취재팀

= 서의동·권재현·김지환(경제부), 전병역(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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