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대란> ① 대량해고 위기 눈앞

입력 2009. 6. 7. 20:22 수정 2009. 6. 8.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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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학.병원선 벌써 '계약해지' 통보 노동계 "법개정 기대감이 전환 발목잡아"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임수정 기자 = 다음 달로 비정규직 보호 관련법 시행 2년을 맞으면서 한 직장에서 2년간 일했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바라볼 수 있게 됐지만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들의 불안감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금융권이나 일부 대기업 등에서 2년간 고용했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비정규직들이 언제 날아올지 모를 '계약해지' 통보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더라도 또 다시 2년 뒤면 재현될 '해고 악몽'에 시달려야 하는 탓에 법시행 2년을 맞는 비정규직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 "2년 돼가니 그만 쉬라네요…"서울 한 사립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A(48.여)씨는 최근 학교로부터 2학기부터는 더 이상 강의를 맡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는 경영여건이 어렵다는 점을 계약해지 이유로 내세웠지만 시간강사로 일한지 2년을 앞둔 A씨에게 학교의 '해고' 사유는 너무도 뻔했다. 자신을 계약직으로 다음 학기까지 고용할 경우 정규 교원으로 채용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A씨는 "경영상의 이유라고 하는 데 다 핑계다. 법시행 2년을 앞두고 나같은 사람들을 다 정리해 버리려는 것 아니겠냐"고 따져 물었다.

A씨가 일하는 학과에는 비슷한 처지의 강사들이 4명이나 더 있다. 이중 일부는 A씨처럼 다음 학기 강의배정이 안 됐고 어떤 강사에게는 한 학기만 쉬면 강의를 주겠다며 일시적 계약해지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A씨는 전했다.

그는 "비정규직법이 우리같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 요리조리 (고용을) 회피하게 만들어주는 법은 아니지 않나"라며 "4년 연장법안도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비정규직법의 맹점이 너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종합병원에서 의무기록사로 일하는 B(25.여)씨도 이달로 일을 그만두게 된다.그동안 병원과 2-4개월씩 고용계약을 연장해왔지만 최근 병원으로부터 더 이상 고용계약을 맺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받은 것이다. 그는 이달까지 일하면 2년을 채운 계약직이 돼 정규직 전환을 내심 기대할 수 있었지만 대답은 정반대였다.

B씨와 함께 근무했던 안모(23.여)씨는 "2년을 근무하면 계약직이더라도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 계약직들은 늘 계약 연장이 될 수 있을까라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푸념했다.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C(40)씨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2007년 2월부터 계약직 조리사로 일해왔으니 정규직 전환을 기대해봄직 하지만 회사에서는 기다리라는 말로 대답을 피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이번에 정규직 전환이 안되면 다른 업체와 다시 고용계약을 해야 한다. 이왕이면 일하던 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4년 연장 법안은 차라리 통과가 안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대량 해고사태 오나사용자 입장에 있는 기업들도 고용기간 2년이 되는 정규직 대상자들의 고용 연장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계약해지로 한꺼번에 정리하자니 사업장이 흔들리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니 비용이 증가하는 탓에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법 개정안 통과를 내심 기대해온 터라 계약 만료대상자들의 고용 연장 결정을 여태껏 보류해왔지만 일부에서는 법 통과가 사실상 물건너 간 것으로 보고 이들을 '정리'하는 쪽으로 이미 방향을 잡는 분위기다.

7월 전에 모종의 결론을 내야한다는 점에서 이런 움직임이 기업체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될 경우 대량 해고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잿빛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한 인력 업체는 직원들을 파견한 회사들로부터 근로 계약이 만료된 사람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4월까지만해도 파견 직원들의 고용 연장이 점쳐졌지만 비정규직법 개정안 통과가 불투명해지면서 사용 사업주가 계약해지로 마음을 돌린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 직원을 썼던 회사들이 근로계약이 만료된 사람들을 내보내고 신규 채용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들이 이렇게 입장을 정리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 일각에서는 법 개정안 통과여부를 떠나 계약직 사용기간 연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사업장 전반에 정규직 전환을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때에 맞춰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했던 사업장의 발목마저 잡았다는 얘기다.민주노총 관계자는 "자체 조사결과 법 개정안이 나온 이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약기간을 연장하도록 법을 바꾼다고 하니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늦춘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어 "법 제정 당시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누누이 얘기를 했지만 정부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대량 해고를 우려하며 사용기간 연장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배경을 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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