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착한 생닭'에 당신은 속았습니다

2011. 3. 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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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호덕 기자]

몇 년 전, 뒤늦게 온라인 오픈마켓 시장에 뛰어든 한 대형 쇼핑몰이 처음 몇 달 동안 '통큰 세일(?)'을 실시했다. 보통은 입점 업체가 제시한 가격에 대형 쇼핑몰의 입점 수수료라는 마진 6∼8%가 더해져 소비자에게 팔린다. 20만 원 19인치 LCD모니터의 경우 20만 원+1만4000원(편의상 7%로 계산)=21만4000원으로 소비자에 판매되는 것이 오픈마켓 구조다.

그런데 이 쇼핑몰 업체는 처음 얼마간 21만4000원에서 15% 할인을 해 18만2000원에 팔았다. 7%대 입점 수수료인 쇼핑몰 수입은 고사하고 한 대를 팔 때마다 1만8000원씩 적자를 본 것이다. 시장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상인들조차 대리점이나 총판점이 아니라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서 소비자에게 되팔았다.

광고 수수료조차 소비자에게 직접 돌려준다는 적자 마케팅. 시장은 대혼란을 겪었지만 쇼핑몰은 몇 달 만에 국내 최고의 온라인 쇼핑몰로 이름을 알렸다. 내가 직접 겪은 무서운 자본의 힘이었다.

홈플러스에서 한 마리에 1000원 한다는 '착한 생닭' 판매 첫날, 개장 전부터 길게 줄을 늘어서고 그래도 사지 못한 사람들이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아침 7시부터 두세 시간을 기다려 '착한 생닭'을 차지한 주부의 함박진 웃음과 한 시간을 기다렸으나 허탕친 고객의 항의까지 전한 3월 25일 SBS 뉴스는 정가 5980원에 팔던 생닭 20만 마리를 24일부터 30일까지 1000원에 판다는 소식을 전했다. 원가 3100원 20만 마리를 1000원에 팔면 4억4000만 원이 손해라고 한다.

이 뉴스대로라면 원가 3100원의 생닭을 지금까지 5980원에 팔아 왔다는 이야기인데, 평소 닭 한 마리를 팔면 2880원의 마진이 남으니 마진율이 48%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48% 마진을 보면서 생닭을 팔다가 한 마리당 2100원의 손해를 보면서 한시적으로 하는 행사. 이것을 물가폭등에 지친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걱정하는 행사라고 할 수 있을까? 4억4000만 원을 손해 본다는 '착한 생닭' 할인 행사. 홈플러스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얻으려는 행사일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닭을 2100원 밑지고 팔든, LCD를 1만8000원 손해보면서 적자 마케팅 하든 상관없는 일이다. 5980원하는 생닭을 1000원에 살 수 있다면 이건 횡재에 가깝다. 횡재를 잡으려고 두세 시간을 기다리는데 허탕친 사람의 심사는 뒤틀릴 수밖에 없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가격의 물건이 있다면 지르고(?) 보는 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다.

그렇다면 생닭 가격이 왜 1000원이 되었는지 알 필요는 없는 것일까? 남들보다 일찍 줄 서서 내 뒤에서 끊기는 한정판매의 스릴과 닭 한마리 쟁취감을 느끼는 것이 소비자의 권리인가? 소비자는 고객이고 왕이라는데, 이런 것이 왕의 모습일까?

삼성, LG, SK 동물원... 대형마트는 서커스단?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지난 22일 서울시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포럼에서 동물원 비유를 들어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꼬집었다고 한다. 그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이 국가경제에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면서 "신생업체가 삼성이나 LG, SK 등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불공정 독점 계약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맺게 되는데 그 순간 삼성 동물원, LG 동물원, SK 동물원에 갇히게 되며 죽어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불공정 계약 관행은 안 교수가 지적한 IT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다. 특히 대형마트에서 중소 납품업자와의 불공정 계약은 여러 차례 사회 문제화되고 언론에 지적된 관행과도 같은 문제였다.

"동생의 시신은 냉동 창고에 보관 중입니다. 20여 일째 하늘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고 있는 불쌍한 저의 동생의 원혼을 달래 주세요." "사고소식을 인터넷에서 본 후 이마트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를 두고 (이마트가) 장난을 쳤다는 사실이 너무 증오스럽습니다." - <여성조선>(2008. 3. 18)

이마트와 거래를 하다 20억 이상의 손해를 보고 2008년 1월 21일 서울 응암동 이마트 앞에서 차아무개씨가 분신을 시도했다. 오랜 투병 끝에 숨졌는데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망자의 형과 아들의 하소연.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반복된 납품업자와 대형마트의 불공정 관계가 표면으로 드러난 사건에 불과하다.

롯데마트에서 시중 크기의 3배에 달하는 통큰두부가 1500원에 팔린 지 3일 만에 이마트 측은 두부제조업체인 삼영식품 측에 거래를 끊겠다고 통보했다. 삼영식품 측이 롯데마트와 같은 가격으로 납품하겠다는 제안했지만 끝내 거절 당했다고 한다. 30억을 대출받아 공장증설까지 한 이 식품회사는 직원의 절반인 80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삼영식품 임원의 말이다.

"울면서도 제가 얘기해봤어요. 봐주면 안 되냐고 그런데 그렇게 못한데요." - SBS 뉴스(2011. 2. 19)

이런 것을 두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할까? 단지 이런 문제가 통큰두부의 문제였을까? 통큰 시리즈와 이마트 피자. 거기에다 착한 생닭까지. 이 끝도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단지 죽어 나가는 건 주변 영세 상인들뿐만이 아니다. 이 싸움에서 실탄이라고 할 수 있는 보다 싼 가격. 보다 좋은 조건을 맞추어 납품해야 하는 납품업체들도 죽어나가기는 매한가지다.

안 교수가 말한 삼성 동물원, LG 동물원, SK 동물원은 유통업계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동물을 혹독하게 훈련해 관중의 박수와 돈을 얻어내는 서커스단. 납품업체를 쥐어짜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대형 유통마트들도 서커스단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단지 동물원이 아니라 서커스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저가를 지탱하는 불공정 거래와 저렴한 노동

저렴한 상품은 저렴한 원자재와 저렴한 공급, 그리고 저렴한 노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우리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조금이라도 싼 제품을 찾기 위해 중국 등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오고 납품업체에 보다 싼 가격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대형마트가 판 사탕에서 철사가 나온 사실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또 반품 소동이 일어난 착한 LED 모니터만 해도 그렇다. 애초 스피커가 장착된 모델로 광고했으나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 반품이 일어난 소동에 대해 홈플러스는 생산업체인 대우루컴즈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 가장 기본적으로 검사해야 할 제품의 사양조차 인지하고 못하고 '최저가' 광고에만 매달린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과연 대형마트가 현재와 같은 인력 수급 구조가 없다면 존립이 가능할까?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직원으로 채워진 값싼 노동력은 최저가를 지탱하는 핵심요소다. 몇 년 전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로 개선되었지만 마트 계산원들은 온종일 서서 일했다. 그러면서 받는 돈이 시간당 4000원 정도. 대형마트의 잠식에 문 닫은 동네 피자집, 두부집 사장님과 그의 아내들이 대형마트 비정규직으로 줄서야 하는 것은 이제 특별하지도 않다.

이마트의 직원 4188명 중 60%(2497명), 홈플러스 고용인원 3378명 중 51%(1720명), 롯데마트 534명 직원 중에 41%가 협력업체 직원(납품업체 직원으로 등록되고 납품 업체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은 마트에서 하는 직원)이라고 한다(WOW 한국경제TV 2011. 3. 2). 계산원 등 단순 판매원은 비정규직으로 유지하고 직원의 50% 이상을 협력업체 직원으로 채우는 구조가 있기에 최저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최저가를 고집하는 대형마트의 상술은 고용 효과를 높이고 좋은 일자리 만들자는 정부나 사회적 노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고용효과는 전통시장에 비해 31%에 불과하다고 한다.

1000원의 착한 생닭, 5000원의 통큰 치킨. 1만1500원의 이마트 피자. 통큰 두부. 반값 삼겹살. 1+1행사. 이런 것들이 폭등한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가 폭등에 몇가지 품목을 내세워 물가 안정의 첨병임을 자처하는 대형마트의 농간이 아닐지.

그 농간에 속은 것인지 아니면 진짜 대형마트가 물가안정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명박 정부는 물가대책과 유가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대형마트 주유소 설치를 들고 나온다. 상생도 고객사랑도 아닌 대형마트의 최저가격 전쟁. 그 전쟁에 주변 상권이 죽어 나가고, 실탄이나 다름없는 납품업체들이 죽어나가고, 하루 10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강도 높은 노동과 저임금 구조에 몸살을 앓고 있다.

1000원 생닭 위해 줄 서야 하는 우리 아이의 미래

"저렴한 상품이 있으려면 저렴한 노동이 있어야 하고, 저렴한 노동이 있으려면 저렴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국가는 우리 아버지들이 건국한 국가도 아니고, 우리 아들들이 지켜나가고자 하는 국가도 아니다." - <완벽한 가격>(랜덤하우스)

미국의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가 미국에서 마트 상권 문제가 본격화될 때 남긴 말이다. 대형마트의 최저가 전쟁에는 저렴한 노동과 값싼 물건을 제공해야 하는 납품업체 피눈물이 있다. 최소한 1000원의 '생닭'이 어떻게 만들어져 내 앞에 올 수 있는지 한 번쯤 고민이 필요한 때다.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1000원 생닭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대형마트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비참하지 않은가? 저렴한 상품이 있으려면 저렴한 노동이 있어야 하고, 저렴한 노동이 있으려면 저렴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런 것인가? 고객이 왕이 아니라 최저가격이 왕이 된 사회에서 1000원의 생닭을 찾아 휩쓸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아니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착한 생닭보다는 착한 논의가, 통큰치킨보다는 통큰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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