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벼랑 끝 사람들]<4>생계 떠맡은 엄마 가장

2008. 10.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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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실직·사업실패·주식 쪽박에 생활전선으로식당·청소일 등 고용 불안한 일용직이 대부분"아이와 얘기할 시간 없어 엇나갈까봐 노심초사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새벽 4시. 행여 아들이 깰세라 조심조심 대문을 나선 최모(47)씨는 캄캄한 새벽길을 밟아 일터로 간다. 13층짜리 빌딩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쓸고 닦기를 3시간 여.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거슬러 귀가한 그는 곤한 몸을 잠시 누일 틈도 없이 어지러운 집안을 치우고 다시 집을 나선다. 식당 일이나 파출부로 또 '낮일'을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6개월 전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남편이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뒤, 전업주부였던 최씨의 삶은 곤두박질쳤다. 꼭두새벽부터 밤까지 2, 3곳을 돌며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140만원. 남편 병원비 대기도 빠듯하다.

최씨는 요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사교육 안 받고도 공부를 곧잘 하던 아들(고1)의 성적이 최근 중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자리에서 야단을 좀 치자 아들은 "학원도 안 다니고 과외도 안 받는데 좋은 성적이 나오겠냐"고 전에 없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는 "속상함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했다.

생계 전선에 내몰린 여성들

엄마 가장들이 늘고 있다. 남편의 죽음이나 질병ㆍ장애 등으로 떠밀리듯 생계 전선에 뛰어든 이들은 물론, 최근 극심한 불황으로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세 자녀를 둔 정모(40)씨는 시급 4,100원에 식당 일을 한다. 남편이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고 사채 포함 9,000만원의 빚을 지자, 채무를 면하려 위장이혼을 했다. 일자리 알아본다며 나가 가끔 얼굴을 비치는 남편과는 멀어진 지 오래다. "아침마다 울며 매달리는 돌쟁이 막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려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요."

고깃집 '사모님' 소리를 듣던 문모(32)씨는 4월 파출부로 나섰다. 매출 급감에 허덕이던 가게 문을 닫고 남편이 택시기사로 뛰었지만, 집 장만에 든 대출금 이자도 내기 힘들었다. 생활비는 문씨의 몫. 세 살과 돌쟁이 두 아이는 친정 엄마에게 용돈 한 푼 못 드리고 맡겼다. 그는 "아직 젊은데 사업 한 번 실패했다고 이리도 깊은 수렁에 빠질 줄 몰랐다"고 한숨지었다.

박모(39)씨는 10개월차 보험설계자다. 신혼 초 골프장 캐디로 일하며 제빵사 남편과 부지런히 돈을 모아 5년 전 시장 어귀에 제과점을 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유명 제과점에 치이고 불경기까지 겹쳐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부잣집에 시집 갔다며 부러움을 사던 대학 동창이 나처럼 신참 보험설계사가 된 걸 알고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노후요? 하루 앞도 모르는데…"

여성 가장들의 삶이 누군들 고달프지 않을까마는, 중년 심지어 황혼기에 접어들어 갑자기 생계를 떠맡게 된 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몸은 쇠해 일자리 잡기도 쉽지 않고, 졸지에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서울 모 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박모(58)씨는 "몇 해 전 남편이 주식에 손대며 모아둔 돈을 다 날렸을 때도 노후가 이렇게 힘들어질 줄 상상도 못했다"며 말했다. 개인 용달 트럭을 몰던 남편(61)이 재작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일손을 놓은 뒤 박씨는 난생 처음 취직이란 걸 했다. 새벽 6시30분부터 9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72만원. 관절염이 도졌지만 병원 갈 엄두도 못 낸다.

이모(60)씨는 환갑 날에도 학교 급식용 식재료를 다듬었다. 퇴직한 남편이 5년 전 주식 투자로 큰 손해를 보고 주저앉은 뒤, 30여년 전업주부 생활을 접어야 했다. 집을 줄여도 생활비 감당이 어려웠다. 토요일 빼고 주 6일, 하루 9시간 중노동의 대가는 월 85만원. 이중 45만원이 월세로 나간다. 그래도 이씨는 "나보다 어려운 이웃이 많다는 걸 마음에 새기고 늘 감사하며 산다"고 했다.

고용 불안에 가사부담까지 '이중고'

사립 중학교 교사 출신인 나모(42)씨는 올해 초 남편을 잃고 재취업에 나섰다. 10년 이상 교단을 떠났던 그의 교직 경력은 무용지물이었다. 동네 보습학원에서조차 냉대를 받은 뒤 눈을 낮춰 학습지 방문교사로 나섰다.

기혼 여성들을 맞아주는 일자리는 매장 계산원, 식당 종업원, 가사 도우미, 간병인 등 저임금 임시ㆍ일용직이 대부분이다.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엄마들의 불가피한 선택인 경우도 있지만, 경력이 있어도 살리기 어렵다.

취업을 해도 발밑이 늘 불안하다. 남편 가게가 어려워져 식당 일에 나선 정모(41)씨는 1년 동안 일터를 세 번 옮겼다. 한 번은 주인이 바뀌고, 한 번은 식당이 문을 닫았다. 지금 일하는 식당도 매출이 떨어져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 지난 8월 서울 모 대학의 미화원 65명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사전통보 없이 단체 해고됐다가 여론에 힘입어 복직했다. 김모(58)씨는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까지 생계를 짊어진 엄마들을 내쫓는 몹쓸 세상"이라고 혀를 찼다.

엄마 가장들은 돈 벌며 가사와 자녀 양육까지 챙겨야 하는 이중고에 허리가 휜다. 특히 성장기 자녀를 둔 엄마들은 행여 아이들이 엇나갈까봐 노심초사한다. 정씨는 밤 11시가 넘어 파김치가 돼 집에 가면 아이들 얼굴 보기도 어려워 점차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중학교 2학년 큰 아들이 요즘 부쩍 귀가 시간이 늦고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날 때도 있다"면서 "사춘기에 혹시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윤재웅기자 ju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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