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백수, 12년 백수에게 생존법을 묻다

입력 2008. 12. 27. 11:01 수정 2008. 12. 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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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갑선 기자]나는 '백수'다. 사람들은 나를 백수라 부른다. 백수 생활이 대략 일 년 반이 넘었다.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백수라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불만도 불편도 없다. 내 의견을 밝히자면 백수라기보다는 예술가 지망생에 가깝다.

나는 문예창작과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공군 사병으로 입대했다. 졸업식에는 빡빡머리로 휴가 중에 참석했다. 2년 반 복무를 마치고, 말년 휴가 나왔을 때 일자리를 구해 전역 다음날부터 일했다. 첫 번째는 새벽시장 도매직원, 두 번째는 소매상, 세 번째는 온라인쇼핑몰 운영까지, 정신없이 일을 했다. '했다'라고 과거형으로 끝났듯 이제 하지 않는다.

거리예술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전공을 살려 글 쓰는 일을 한다. 주로 2007년 여름 요시토모 나라(奈良美智, 일러스트레이터)의 영향을 받아 미술 유학을 목적으로 유럽을 다녀왔던 여행기를 쓰고 있다.

대략 대학 2년, 군대 2년 반, 일 3년, 무적 1년 반, 아~ 어느덧 29세다. 또 한 해가 넘어간다. 연말이면 왠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느낌에 더 허전해진다.

그러던 중 문득 다른 백수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백수 생활 12년차 고수, '전국백수연대'(이하 전백련) 주덕한(39) 대표를 만나기로 했다. 남들은 반년도 못 견디는 백수 생활을 10년 넘게 했다니 뭔가 특별한 생존법이 있을 것 같았다.

▲ 전국백수연대

전국백수연대 대표 주덕한씨. 벌써 프로 백수12년차다. 한 세계에서 프로경력 12년을 기록하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 주덕한

사전 조사에 의하면 주덕한씨는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자동차 회사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유학을 가고 싶어서 영국에 갔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부분에서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후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취직을 했다. 1996년 직장을 그만뒀다.

배곯지 않는 정도만 버는 아르바이트 인생을 살았는데 총각 파출부, 인구조사원, 방송국 방청객 등 수많은 단기 일자리를 경험했다.

IMF 구제금융 위기 직후 '전백련'(전국백수연대)를 만들었다. 하자센터 소개로 선진국 사례 조사를 위해 몇 차례 여행을 다녀왔다. 주로 일본 프리터와 교류를 시도했고, 여행 중에 프리터 체험을 했다.

최근 잠깐 취직을 했다. 서울시와 실업극복활동을 하는 '희망청(청년실업네트워킹센터)' 소장을 맡았었다. 전국백수연대는 비영리단체(NGO)로 등록됐다.

우리는 12월 중순 어느 날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의 책을 미리 읽고 싶어서 먼저 도착했다. 안타깝게도 재고가 없었다. 시간이 남았다. 일어 소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청춘 표류>라는 책을 소개받았는데, 제목이 왠지 요즘 내 상황과 어울리는 것 같아 찾아봤다. 책을 거의 찾아갈 때쯤 전화가 울렸다.

나는 다시 자리를 옮겼다. 인터뷰 기사들을 이미 충분히 검색했던 터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기사 속 차림보다 복장이 훨씬 캐주얼해서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패딩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동년배에 비해 십년은 어려 보였다.

주덕한씨는 만나자마자 자리를 옮겼다.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상설 매장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산 후, 조용하게 얘기하기 좋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능숙했다. 도착한 곳은 기업이 운영하는 재즈 카페였다. 음악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조용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달 수입 10-20만원 VS 한 달 수입 50만원

- 나는 2007년 봄부터 백수생활을 했다. 여행기를 쓰느라 일을 안 한다. 자영업자가 몇 달 적자 났다고 해서 백수로 분류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백수'라고 하기 좀 억울하다. 학생은 16년 동안 수익 없이 투자만 하는데도 직업에 포함시키는 것에 비하면 더 억울하다. 언제부터 백수생활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했을 때부터다. 그해 8월쯤 회사에서 퇴사했다. (정갑선씨는) 백수생활 6개월 이하는 백수계에서는 신입회원으로 생각한다. 1년 반 정도 하셨으니까 신입은 갓 넘으신 셈이다."

- 한 달에 10~20만 원 정도 번다. 일은 가끔씩 생긴다. 한 달 수입은 얼마인가.

"50만 원 정도. 출연료나 인터뷰, 정책 자문 비용으로 들어온다."

- 한 달에 쓰는 돈은 대략 얼마인가. 나 같은 경우 통신비와 주거비가 가장 큰데, 가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도움 받는 것까지 모두 포함하면 실제 생활비는 30 ~4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다. 지난 한 달간 쓴 돈은 7만원이었다."25만 원 정도. 활동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드는 비용이 있다. 나머지 25만원은 돈 못 벌 때를 대비해서 저축한다. 주거비는 월 10만원씩 하숙비를 낸다. 누나와 함께 산다."

- 백수는 돈을 아껴야 한다. 나는 의식주부터 분수에 맞게 살려고 하고, 모든 욕심과 욕구를 줄인다. 가능하면 최대한 불편하게 산다. 소비를 해야 한다면 신중하게 생각한다. 모든 낭비를 줄인다. 예를 들면 다음 열 가지 정도다. ▲TV 드라마를 적게 본다 ▲생활을 D.I.Y화 한다 ▲가격 대비 좋은 옷을 입고, 소유를 줄인다(너무 싼 옷도 좋지 않다) ▲소식한다. 가능하면 주로 집에서 먹고 할 수 있다면 도시락을 싼다 ▲좁은 집에서 산다 ▲독립 전이라면 가족을 위해 주부 역할과 집사 역할을 열심히 한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불필요한 만남을 줄인다 ▲적게 움직이고, 짧게 움직인다 ▲돈 문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나 연인을 만난다. 주 대표는 어떠한지?"돈을 아끼는 최고 방법은 서점에 가는 것이다. 거기서 책 읽다보면 시간도 잘 간다. 초보 백수들은 밖에 잘 안 나가려고 한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나가서 책이라도 보는 게 낫다. 밥은 가능하면 집에서 먹고, 나갈 때는 싸서 나간다. 계란을 삶아 먹으면 유용하다. 든든하다. 새로 건물이 생기면 구경하러 간다. 정보 개발이 된다. 장소 정보를 주면 건물주나 쓰는 사람이나 양측이 다 좋아한다. 찾아다닌 정보가 현금으로 돌아오지는 않지만 종종 밥이나 물건으로 돌아온다.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경품을 노린다. 예를 들어 이런 것(빨간 모자, 아프로 헤어 가발을 들어 보이며)을 쓰고 가면 남들보다 눈에 띄니까 진행하는 사람이 뽑기 쉬워진다. 튀면 된다.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세상이 좁다 보니, 기회가 많이 생긴다. 그러려면 빠른 정보와 약간의 댄스 실력은 기본이다. 길을 다닐 때는 게시판을 열심히 보고 다닌다. 그러면 일자리가 보인다."

▲ 프리터

그는 일본 여행을 통해 알게 된 프리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의 백수들도 일본의 프리터처럼 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었으면 했다.

ⓒ 주덕한

- 취직한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일단 취직한 친구를 축하해 주지만 모든 축하가 같지는 않다. 애사심이 있고, 끝까지 일하기 바라는 회사에 입사한 경우에는 최고 축하를 보낸다. 정년이 어느 정도까지 보장된 회사라면 말이 필요 없다. 그런 직장은 거의 없어서 안타깝게도 축하해준 적이 별로 없다. 다들 마지 못해서 일한다."내 친구들은 취직할 나이는 아니다. 이미 취직 중인 친구들은 은행지점장, 부지점장, 증권회사 간부, 군대 대령 등 직업이 다양하다. 이제는 직장에서 위기를 느낄 나이다. 오히려 백수는 그런 위기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백수는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서 나쁘지 않다."

- 직장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우리 세대는 평생직장 개념이 없다. 퇴사가 어렵지 않다. 들어가자마자 회사가 싫다고 우는 소리 하는 친구들을 볼 때 답답하다.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고 싫다고 한다. 아니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입사했거나. 그런 소리 하는 친구한테는 그만 다니라고 한다. 진짜 일하고 싶은 다른 사람 밥그릇 뺏는 일이다. 백수 친구 만나서 그런 말 하는 친구는 문제다. 돈 때문에, 회사가 유명해서, 나오면 별 달리 할 일이 없을까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답답하기까지 하다. 어쩔 수 없이 일한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돈'을 위해서 다니면 된다. 징징거릴 필요가 없다. 돈은 많이 벌고 많이 써도 되지만 적게 벌고 적게 써도 된다.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굶지는 않는다. 일단 회사에서는 해고 전에 사인을 주는데 그 사인을 미리 잘 파악하고 있다가 먼저 준비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이제는 그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처지다."

- 모임 초대를 받으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 환영받을 수 있는 곳에만 간다. 그게 서로 좋다. 서로 스트레스 안 받고. 나와 가치관이 다르거나,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곳에는 나가봤자 분위기만 흐린다.

"나는 적극 참가한다. 백수라고 해서 기죽어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백수가 당당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이 방면으로 유명해져서 친구들도 다 이해한다. 동창회 같은데 나가면 회비도 깎아준다. 파티도 적극 참가하고 주최한다. 가서 신나게 놀아주는 것은 우리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백수들이 좀 더 유쾌해졌으면 좋겠다. 파티라고 해서 꼭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집에 모여 요리 해먹으면 별로 비싸지 않다."

- 백수생활은 가족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가족회의를 통해서 회사를 다니지 않기로 결정하고 장사를 배웠다. 회사원보다는 자영업자가 되기로 했다. 단 한 번도 진로를 혼자 결정한 적은 없다. 항상 가족과 상의하는 편이다. 우선 돈을 모으고 그 다음에 예술인이 되고 싶었다. 수익이 있다면 예술도 자영업의 한 형태로 봤기 때문에 어쨌든 나는 자영업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을 빼고는 다들 적극 지지해준다.

"사실 가족들이 백수 생활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조사 때가 위기다. 친척들을 만나면 방송에서 봤다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가능한 가족들한테 폐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비하 뜻 '백수' 싫다" VS "백수 노하우 익히면 쉽게 망하지 않는다"

- 솔직히 '백수'라는 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백수'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백수' '실직자' '지망생' '구직자' '예술가' '프리랜서' '프리터'는 모두 다른 경우다. 비하와 희화화의 뜻으로 쓰이는 '백수'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백수는 앞으로 사회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 걱정된다. 많은 백수들이 다단계에 빠진다. 그게 다 일하는 것만 배웠지, 노는 것은 못 배워서 그렇다. 주식을 공부해 보면 팔 때가 중요하다는 게 나온다. 망하는 사람들 보면 그걸 잘 모르고 달려든다. 백수 생활의 기본을 익혔으면 그렇게 망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망하지 않고 살 수는 있다.

- 나보고 "평생 백수가 될 생각 있느냐"고 물으면 "없다"고 할 것이다. '평생백수'가 생계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살기에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데 이직 중 백수상태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하기 싫은 사람은 아니다. 다만 어디에 적을 두지 않고 생활비 도움을 받고 있어 그렇게 불릴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취직에 목매고, 취직을 위한 삶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건이 안 좋은 편이다. 조건 맞추기가 쉽지 않다. 나이 제한이 많은 나라에서 회사가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 주지는 않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는다. 스스로 능력을 쌓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주 대표는 어떤가.

"모르겠다. 12년을 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창업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다. 처음 단체를 만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외로운 백수 생활을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반쯤은 재미 삼아 만들었다. 그게 커졌다. 커지다 보니 못 관두는 면도 있다. 운영자로서 먼저 취직해서 다른 백수들을 배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하다 보니 목소리를 내는 무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실업 정책을 낼 때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피드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임을 지킬 필요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당당히 요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 나도 꿈이 있다. 글 쓰는 일로 돈을 버는 게 목표다. 큰 돈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생활이 가능할 정도면 충분하다. 일확천금의 꿈 같은 것도, 사치심도 없다. 그저 지금의 삶을 가능하면 최대한 즐기다가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직업연구소를 만들어서 개인에게 맞는 직업을 맞춤해주고 싶다. 그 사람을 키워주고 적당히 자리 잡는 것까지 도와주는 것. 나중에 그 사람이 성공하면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효과까지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아이템을 연구 중이다. 아직 많지는 않다."

▲ 전국 백수 연대

백수들도 모여서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

ⓒ 주덕한

그는 보통 백수라 하기에는 너무 바빴다. 이번 주에만 인터뷰가 7개라고 한다. 백수라기보다 전문 자문가, 활동가, 인디라이터라는 명함을 갖는 것이 더 적절해 보였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답답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과 '백수생활'에 대해 한 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백수, 어차피 할 거면 즐겁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하다. 백수들이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자의든 타의든 기왕 백수가 됐다면 자신이 가진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유익하게 사용할까 생각해볼 만하다. 남는 시간 동안에 책 읽고, 생각하고, 사업 기획서도 짜보고, 프리젠테이션하고, 판로 찾아보려면 할 일이 많다.

이렇게 바쁜 사람을 옛 시각만으로 가볍게 '백수'라고 규정짓기에는 현대사회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만큼 너무나도 복잡해졌고, 개념어도 세세해졌다.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남는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이다. 백수뿐만 아니라 예비 졸업생, 심지어는 위태로운 직장인들도 추운 계절이다. 역시 연말이라 춥다.

비록 직장이 나를 버릴 수는 있지만 나도 나를 버릴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일하길 바란다.

[못다한 이야기] "청년 실업, 외국인노동자 내보낸다고 해결되지 않아"

▲ 세계 실업문제: 세계 모든 나라에서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심지어 복지가 가장 잘 돼 있다는 유럽의 실업문제도 심각하다. 얼마전에 일어난 그리스 폭동 원인은 청년 실업이었다. 터키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불만이 민족주의로 발전했다. 청년 실업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세계 경제 구조가 변하면서 제조업에서 정보화 사회로 간다. 일자리는 줄 수밖에 없다. 백수 양산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업은 사람을 덜 뽑고, 기존 인력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뽑더라도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 일자리 나누기: 프랑스에서 4시간 노동을 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일자리 나누기는 실패했다. 그리고 사르코지 당선으로 이어졌고 후퇴했다. 우선 성장부터 하자는 논리로 돌아섰다. 프랑스인 친구 중에 한 명은 일자리가 너무 없어서 한국까지 일자리를 찾으러 왔다.

▲ 실업과 외국인 노동자: 한국은 외국인 입장에서야 어렵다고 느끼겠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들어올 수 있는 편이다. 이미 건설 노동의 경우 조선족이 너무 많이 진출해서 임금이 10년째 비슷한 수준이다. 결국 한국인들은 자국 건설현장에서 번 돈만으로는 치솟는 물가 때문에 생존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그게 외국인노동자 때문이 아니다. 임금이 안 오르고 고용을 하지 않는 것은 분야별 사양 산업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처럼 외국인 인력 유입을 막으면 우리나라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이 진전이 있을 거라고 하는데, 틀린 생각이다. 가구공단을 예로 들면 한국인들 기피현상이 심하다. 먼지를 먹으면서 일하고 싶어 하는 한국인이 별로 없다. 외국인 노동자는 필요하다.

▲ 비정규직: 전백련에서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줄고 있기는 하다. 노동부에서 비정규직종 관련 조사하는 일을 1년 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패스트푸드 업체와 급식업체를 방문했다.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실제 더 많이 일했다. 게다가 뜨거운 불 앞에서 장시간 일해야 할 만큼 근무환경도 열악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가 뭔지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이 쉽지가 않다. 일본에서도 비정규직은 사회 문제다.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이 그 예인데, 왕따 기질과 은둔형 외톨이 기질이 있던 비정규직 청년이 사회 비관으로 일으킨 살인사건이다. 시내 한 복판에서 8명이 죽었다. 굉장히 심각했었다. 일본은 한국 비정규직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주간 금요일>이라는 곳에서 취재를 나왔었다. <성난 서울>이라는 한국 청년 실업에 대한 책도 출판됐다.

▲ 실업과 사회 문제: 실업이 장기화되면 사회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자영업자가 망하는 것이 큰 문제다. 그들이 망하면 주식이나 사행성이 큰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어 더 큰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발전한다.

▲ 백수 이유는 개인 무능력?: 현재 청년 백수는 370만 명~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업이다. 그런데 아직도 '젊은 것들이 배고픈 거 몰라서', '네가 게을러서'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백수 문제는 이제 과거 틀로 볼 수 없다. 백수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 개인 무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초수급자 외에는 대책이 없다. 특히 자영업자들이 사업에 실패하는 데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결국 잠정적인 실직자가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자의든 타의든 백수는 양산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88만원 세대에 동의할 수 없다. 실업은 전 세대 전 업종에 걸친 문제다.

▲ 전국백수연대: 재미있는 백수 생활이 가능한 사람은 적다. '어쩔 수 없이' 백수 생활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 스스로 못 견뎌한다. 먹고 사는 문제 이전에 그런 상태 자체를 못 견딘다. 사회적 단절을 느끼고 소외감으로 이어진다. 가족 불화나 여러 가지 무리가 생긴다. 주어진 시간, 노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배운 적이 없어서 그렇다. 게임이나 경마 등 시간 허비로 이어진다. 만약 국가나 사회가 백수 문제를 책임질 수 없다면 가만히 있을 거냐? 스스로 아무런 준비없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그것이 숙제다. 백수 생활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1만 4천 명의 회원들 중에서 정부의 혜택을 받은 회원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실효성이 없는 제도에 대한 회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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