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업종도 싹쓸이.. 대기업만 컸다

박병률 기자 2010. 10. 28. 22: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출총제 등 폐지 후 3년간 도·소매·운수 등 전방위 진출출자액 85%·계열사 44%↑.. 대주주 우회 지배도 심화

학교와 기업 식당에 도매로 식자재를 납품하던 이홍재씨(40)는 몇 해 전 사업을 접었다. 대규모 급식소가 잇달아 대기업 계열로 바뀌면서 대기업들이 식자재 납품을 전담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카센터에 투자했지만 카센터도 조만간 대기업에 허용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투자액을 빼냈다.

이씨는 "대기업들이 온갖 것을 다하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다"며 "대기업 일가들이 '떡고물'조차도 싹쓸이하고 있어 자영업으로 가계를 꾸리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삼성, SK 등 대기업들이 부동산, 도·소매, 여행·운수, 교육 등에 전방위로 진출하면서 서민업종을 크게 위협한 것으로 분석됐다.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규제완화를 이유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등 친대기업 정책을 강화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2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총자산 상위 15대 재벌의 출자액과 계열사수 변동을 분석한 결과 출자액은 올해 4월 기준 92조8400억원으로 2007년(50조2520억원)에 비해 42조5880억원(85%)이 늘어났다. 기업별로는 SK가 7조6600억원을 투입해 가장 많았고 삼성(6조9310억원), 금호아시아나(6조2760억원)가 뒤를 이었다. LG(4조8040억원), 한화(3조3370억원)도 많았다. 출자액이란 계열사나 비계열사의 주식을 취득하기 위해 회사 자금을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데 쓴 비용을 말한다.

이에 따라 대기업 계열사는 크게 늘어났다. 대기업 소유 계열사는 2007년 472개에서 2010년 679개로 3년간 207개(44%)가 증가했다. 포스코가 25개 늘어 가장 많았다. LS(24개), LG(22개), GS(21개), SK(18개), 롯데(16개)도 계열사를 많이 늘렸다.

특히 대기업들은 주력업종이 아니라 서민업종을 집중 공략했다. 신규편입된 계열사 332개 중 제조업은 80개사(24.1%)에 그쳤다.

반면 비제조서비스업은 252개사(75.9%)나 됐다. 건설·부동산·임대업에 55개사가 진출해 가장 많았고 교육·전문·과학·기술·사업지원(43개), 출판·영상·방송통신·정보서비스(40개), 여행·운수·창고업(38개) 순이었다.

또 대표적인 서민업종인 도매·소매업도 32개의 대기업 계열사가 새로 생겨 시장을 급속히 잠식했다. 국내 대기업의 주력 업종인 전기·전자·통신기기(17개)나 기계장비·의료·정밀기기(16개) 등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대기업들이 기업 간 경쟁이 격한 주력업종을 피하고 손쉬운 서민업종으로 진출하면서 서민상권은 위축됐고, 부동산·건설분야에 집중 진출하면서 최근 부동산 시장의 폭등과 거품을 조장하는 데 앞장섰다는 게 경실련의 판단이다.

실제 이 기간 삼성은 개미플러스유통(신발유통업), 보나비(음식점업), LG는 지오바인(주류소매업), 롯데는 부산하나로카드(전자화폐 발행관리), GS는 상락푸드(집단급식소 위탁경영업) 등을 새 계열사로 편입시켜 중소기업과 서민영역에서 세력을 확장했다. 또 SK는 온라인 교육학원인 이투스를 사들였다 비난을 받자 재매각했다.

정부는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이유로 대기업 진출을 독려하고 있어 이런 상황은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안경점, 이발소 등에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그렇다고 대기업 총수들이 직접 자신의 돈을 내놓고 계열확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올 4월 기준 35개 대기업집단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4.40%로 지난해보다 더 감소하는 등 기존 계열사에서 자금을 끌어와 새 계열사를 우회 지배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은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던 대기업들이 막상 출총제를 풀어주니 서민업종에 기다렸다는 듯 투자하고 있는 것은 우리 경제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성과 책임성을 망각한 행위"라며 "제조업 등 2차산업 역량을 강화해 당당하게 해외 대기업들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