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치대란'에 모두가 한숨을 쉬다

2010. 10. 3. 06: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배추 농가·김치제조업체"사 먹을 엄두가.." "값 올라 봤자.." "공장 돌릴수록 손해"

(서울·정선·횡성=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1일 저녁 서울 성수동 이마트 신선식품 매장 진열대 앞에서 배추 한 포기를 들어 살펴보던 주부 이상교(64) 씨는 도로 배추를 내려놓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옆에 놓인 무도 살펴보고 얼갈이배추와 열무도 잠시 만지작거리기만 했을 뿐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한창 비쌀 때보다 값이 조금 내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부담스럽네요."

이 씨는 김장철이 다가오기 전에는 채소값이 예전 수준을 회복해야 할 텐데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비자 "김치 담글 수도, 살 수도 없네" = 1일 저녁 이마트에서 배추는 한 포기에 6천450원, 무는 1개에 4천150원, 얼갈이배추는 1봉지에 3천680원, 열무는 1봉지에 2천980원에 팔리고 있었다.

하나로클럽 양재점을 비롯한 여러 소매점에서 지난주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원을 훌쩍 넘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내리기는 했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턱없이 높은 가격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농수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고랭지 배추 소매가는 상품 기준으로 작년 평균 2천674원, 2008년 2천201원, 2007년 3천425원이었다.

이마트 성수점 농산물 매장의 한 직원은 "요즘 배추값이 비싸서 손님들이 많이 사가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가져다 놓았다"며 "손님들이 배추를 들여다보다가도 그냥 발길을 돌리곤 한다"고 말했다.

배추가 비싸다고 가격 변화가 없는 포장 김치를 대신 사먹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포장 김치 진열대에는 열무김치와 나박김치 몇 봉지가 듬성듬성 남아 있었을 뿐 배추김치는 단 한 봉지도 찾을 수 없었다.

매장 직원은 "포장 김치 중에서도 배추김치는 가져다 놓는 족족 손님들이 순식간에 가져가 버려 남은 제품이 없다"며 "배추가 비싸니 값이 그대로인 포장 김치를 사려는 손님이 몰린다"고 말했다.

그나마 포장 김치 가격마저 곧 오를 예정이다.

대상FNF, CJ제일제당, 풀무원 등 김치 생산업체들은 원가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조만간 가격을 상당폭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배추 농가 "시장에서 값 올라 봤자..." = 2일 오전 강원도 정선군 북면의 한 고랭지 배추밭에서는 작업 인부 아홉 명이 바쁘게 손을 놀리며 배추 수확에 한창이었다.

"그나마 이쪽은 배추가 실한 편이네."

"그래도 예전보다 한참 작지!"

"저쪽 산 건너편 밭은 배추를 거의 못 건졌다던데."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 사이에 올해 배추 농사가 시원찮음을 짐작게 하는 말들이 주로 오갔다.

2만9천㎡ 면적의 이곳 밭에서는 예년에 7만∼8만 포기를 수확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4만5천 포기만 수확됐다고 한다.

올해 강원도 고랭지 배추의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은 이상기온 때문이다.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무덥다가 불볕더위가 끝나자마자 비가 쏟아져 배추가 녹아버리거나 병충해 피해를 봤고 그나마 수확한 배추도 예년보다 크기가 작고 속이 비어 상품 가치가 낮아졌다.

이찬옥 농협 강원도 고랭지채소사업소 소장은 "고랭지 채소는 여름철 날씨가 18∼25℃로 유지돼야 잘 자라는데 올해는 30℃까지 치솟는 날이 30일 가까이 지속됐다"며 "그러다 보니 배추 물량이 30∼40%가량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소매점에서 배추값이 1포기당 1만원에 육박한다고 하면 농가 소득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농가 상당수가 파종 직후에 평당 일정금액을 받고 산지의 중간유통인에게 배추를 넘기는 포전거래(밭떼기) 계약을 한 뒤에 배추 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농가가 수확하기 한참 전에 밭떼기 거래를 하는 것은 시세가 어느 정도에 형성될지 정보가 부족하고 직접 유통에 나서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또 파종 이후에 들어갈 비료 값이나 수확 비용 등을 농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점도 밭떼기 거래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하나의 원인이다.

정선군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박모(74) 씨는 "앞으로 값이 얼마가 될지도 모르고 농사를 계속할 돈도 없어 밭떼기로 넘겼는데 배추값이 폭등했다는 뉴스가 나와 속상하다"며 "이미 계약을 해 넘겼으니 이제 우리 밭이더라도 배추 한 포기 못 가져다 먹는다"고 말했다.

중간유통인들도 할 말이 적지 않다.

파종 이후의 영농 및 유통 비용을 모두 중간유통인이 부담하기 때문에 폭리를 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중간유통인은 "농가와 해마다 계약을 하는데 배추값이 폭락하는 해에 손해를 감수하는 것도 중간유통업자"라며 "올해는 시세가 올랐지만 계약할 때보다 수확량이 줄었으니 폭리를 취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치공장도 "돌릴수록 손해, 생산량 3분의 1로" = 김치를 찾는 사람은 급증했는데 포장 김치 생산업체도 웃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2일 오후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대상FNF 종가집의 김치공장.

배추절임 작업대는 '절일 배추가 없어' 멈춰 서 있었고, 돌아가는 배춧속 넣기용 작업대도 곳곳이 비어 있었다.

김장철이 오기 전 10월까지 포장김치 시장은 성수기이므로 활발히 돌아가야 할 공장이 배추 공급량이 급감한 탓에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딱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평소 대상FNF 횡성과 거창 공장을 합쳐 하루 180t씩의 배추가 공급되지만 지난달 30일에는 50t, 1일에는 90t만 들어왔고, 횡성 공장에는 지난달 30일 배추가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배추값 폭등으로 생산원가가 훌쩍 뛰어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대현 공장장은 "작년만 하더라도 포기당 600원 정도에 배추를 공급받았는데 올해는 추석 전에 3천원까지 뛰었다가 요새는 4천500원까지 올랐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격이 올랐지만 산지 수확량이 크게 줄어 필요한 만큼의 배추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추가 들어오지 않으니 생산량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공장에선 하루 60t씩 출하되던 배추김치 제품의 출하량이 최근 들어 20t까지 줄었다.

대형마트나 슈퍼에서 포장 김치가 금세 동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요가 많아졌기도 하지만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의 양이 최근 들어 급감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김장철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있어 소비자들의 근심은 커지고 있다.

김장철 배추가 주로 나오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 농가들의 작황도 낙관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중국산 배추 수입 물량도 시장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가격을 낮추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농가와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주부 정영숙(60) 씨는 "배추가 비싸서 포장 김치를 사볼까 했더니 그나마 다 나가고 물건이 없었다"며 "담근 김치도 떨어져 가는데, 김장철에도 배추값이 계속 비쌀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cherora@yna.co.kr

< 뉴스의 새 시대, 연합뉴스 Live ><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 포토 매거진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