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 다 내면 바보?'..반값시대 현실화

백인성 기자 2010. 8. 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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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연극을 보거나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을 제값 내고 이용하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됐다. 반값 할인쿠폰을 공동으로 구매하는 사이트가 속속 생겨나고 있어서다. 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 커머스 사이트'가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 것이다.소셜 커머스 사이트는 반값 이하로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쿠폰을 공동구매하는 쇼핑몰을 뜻한다. 소비자는 할인 혜택을 받고 판매자는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사이트 주인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정보통신(IT) 업계의 '윈윈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구매 상품이나 서비스가 다양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이트가 난립해 자칫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영 중인 소셜 커머스 사이트는 티켓몬스터와 딜즈온, 위폰, 키위 등 30여곳에 이른다. 이들 사이트는 레스토랑이나 공연, 스파 등 다양한 종류의 쿠폰을 하루에 한가지씩 팔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라면 수백에서 수만 종류의 물품을 취급하는 게 상식이지만 이와는 다르다. 그러나 한 종류를 파는 대신 가격은 반값 이하다.

'소셜'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반값 할인'을 받기 위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이용해 최소 인원을 모집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인원이 모이지 않으면 할인 혜택이 없어 최소 신청인원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가입한 SNS를 통해 물품 구매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다.

이들 사이트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미투데이 등 SNS 버튼이 눈에 띠는 자리에 마련돼 있다. 버튼을 클릭하면 자신의 트위터와 싸이월드, 미투데이, 페이스북 등에 'XXX 미용실 53% 할인가, 마감까지 3명 남았습니다. 도와주세요'처럼 해당 제품을 소개하는 문구가 자신의 계정에 올라가는 식이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광고료를 들이지 않고도 앉아서 마케팅을 할 수 있다.

와튼스쿨 졸업생 셋이 창업해 화제가 된 '티켓몬스터(ticketmonster.co.kr)'도 비슷한 시스템이다. 5월 문을 연 티켓몬스터는 국내 소셜 커머스 사이트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얼마전 하루 매출 1억5000만원을 돌파했다. 회원은 5만5000여명에 이르며 매일 30만여명이 이 사이트를 찾는다. 최근 상품으로 올린 10만원짜리 '오페라의 유령' 티켓 반값쿠폰 1400장은 1시간 만에 동이 났다.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는 "24시간에 단 하나의 서비스만 반값으로 팔되 최소 구매인원이 모이지 않으면 경매 자체가 무산되는 시스템"이라며 "자신이 가지고 싶은 물품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서비스를 살 수가 없는 만큼 즐거운 '협력 구매 게임'이 된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새로 문을 연 '원데이플레이스(onedayplace.com)'는 최근 미피의 즐거운 미술관, 서래마을 이탈리안 레스토랑,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 등의 쿠폰을 반값으로 팔았다. 메이저 펀드 두곳으로부터 이미 20억원 이상을 투자받은 '쿠팡(coupang.co.kr)'이란 사이트도 있다.

소셜 커머스 사이트의 가장 큰 장점은 판매자(또는 서비스업자)나 소비자, 사이트 운영자에게 모두 이득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사업자들은 업소를 홍보해 입소문을 내고 소비자는 이들 서비스를 50% 이상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거래를 중개하는 소셜 커머스 사업자는 거래금액의 10~20%를 현금으로 챙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델이다. '구글 이후 최고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셜 커머스의 원조는 1년 반만에 연매출 3억5000만달러를 올린 미국 사이트 '그루폰닷컴(groupon.com)'이다. 회사 이름은 '그룹(group)'과 '쿠폰(coupon)'에서 따왔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미국과 유럽지역 세계 최대 소셜 커머스 회사로 성장했다. 하루 매출규모만 100만달러가 넘는다. 현재 기업가치는 13억5000만 달러로 추산되며 올해 매출은 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는 아예 그루폰 사이트를 통째로 베낀 사이트들이 지역마다 세워지고 있다.

국내에선 다수 업체들이 단기간에 난립한 탓에 소비자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업체의 경우 충분한 자금과 인력을 갖추지 못한 채 급하게 서비스를 시작해 판매상품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도산하는 일도 발생했다. 먹거리나 공연 등 아이템이 한정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적어도 하루에 한가지씩 상품을 돌려야 하는데 이마저도 확보를 못하는 사이트들이 있다"면서 " '단골 네티즌'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인데 매일 상품을 보여주지 못하면 신뢰도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이트들이 난립하다 보니 이들 사이트가 선보이는 쿠폰을 매일 소개하는 '다원데이(daoneday.com)'라는 사이트도 생겼다.

허진호 인터넷기업협회장은 "장래성이 있는 사업 모델이지만 단기간에 많은 이들이 뛰어들어 국내에서도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면서 "소비자와 상품확보라는 필수요건을 채우지 못한 사이트들이 빠르게 도태되고 일부 유망한 사이트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백인성 기자 fxma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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