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빅데이터, 16조원 新藥 탄생시키다 .. 10년 넘게 걸리는 임상시험 기간 6~7년으로 단축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로 유명한 미국 제약 회사 길리어드는 지난 2011년 C형 간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던 제약 회사 '파마셋'을 약 110억달러에 인수했다. 파마셋을 주가보다 무려 90%가 넘는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한 탓에, 길리어드 주가는 발표 직후 크게 출렁였다. 파마셋이 보유한 C형 간염 치료제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은 입증됐지만, 임상시험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확산 과정에서 핵심 유전자형이 수시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완치 가능한 치료제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고, 임상시험 역시 복잡하고 오래 걸릴 가능성이 컸다. 투자자들은 길리어드의 모험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길리어드는 불과 2년 만인 2013년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를 선보였다. 이어 2014년에는 파마셋과 길리어드의 신약 물질을 결합해 개발한 C형 간염 치료제 '하보니'도 출시했다. 이 두 약은 치료가 어려운 C형 간염 완치 효과가 입증돼 한 알에 1000달러가 넘는 가격을 인정받았다. 하보니의 2015년 처방액은 143억달러(약 16조원)로,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약으로 기록됐다.
길리어드가 예상보다 빠르게 C형 간염 신약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임상시험을 전문으로 하는 IT 기업 '메디데이터(Medidata)'의 첨단 기술 덕분이었다. 메디데이터는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헬스케어 분야에선 인정받는 IT 기업이다. 미국 화이자, 프랑스 사노피, 스위스 로슈, 독일 베링거잉겔하임, 한국의 한미약품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제약 회사가 모두 이 기업의 고객이다.
글렌 드브리스(De Vries·44) 메디데이터 글로벌 대표는 의과대학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인터넷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면 복잡한 임상시험을 간소화해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1999년 메디데이터를 설립했다. 임상시험은 제약 회사가 약효를 검증하기 위해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연구다. 신약을 개발한 제약 회사가 병원에 임상시험을 의뢰하면 의료진이 환자를 모집해 시험하는데,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에 적합한 환자를 찾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통상 신약 개발에 10년이 넘게 걸리고, 수조원이 투입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브리스 대표를 만났다. 브리스 대표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활용해 환자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비용이 적게 들고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임상시험 설계를 돕는 것이 메디데이터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약 개발은 시간과 비용 싸움"이라며 "전체 연구·개발비의 60%에 해당하는 임상시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제약 회사가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빅데이터 분석으로 제약업계 연구개발비는 연간 700억달러(약 78조원) 가량 절감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브리스 대표는 "각종 모바일 기기와 웨어러블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환자들과 관련된 정보 수집이 더 쉬워졌다"며 "헬스케어 분야에서 빅데이터의 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2009년 나스닥에 상장한 메디데이터는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지난해 선정한 '가장 가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 25'에 꼽혔다.
수억달러 규모 시장 선점 돕는다 ―1999년 창업 당시 빅데이터와 헬스케어 산업을 접목한 비즈니스 모델은 매우 생소했을 것 같다.
"임상 연구를 오래 한 경험이 많은 도움을 줬다. 과거 컬럼비아대학 의과대학에서 항암 연구를 했는데,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마침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기였다. 당시 의사, 간호사, 제약 회사, 연구원들은 일반인보다 더 먼저 인터넷을 접했다. 그리고 제약 산업 흐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세계 제약 시장의 주력이 기존 화학 합성 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으로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분자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인체 내부에 있는 단백질을 활용한 바이오 의약품 개발이 이전보다 쉬워졌기 때문이다. 바이오 의약품은 화학 합성 의약품보다 약효가 뛰어나지만 더 복잡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이 임상시험 분야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더 부각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회사에 더 큰 시장이 열린 것이다."
―임상시험에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집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신약 개발 성공 여부는 위험 요소에 대한 관리에 달렸다. 신약 후보 물질은 대부분 초기에 실패한다. 안전성 문제도 있지만 임상시험에 필요한 정보를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 요소를 초기에 감지하지 못하고 임상 연구를 진행하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약물에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게 된다. 의약품 시장을 얼마나 일찍 선점하느냐에 따라 제약 회사가 가져가는 수익도 크게 달라진다. 신약으로 시장을 선점한다는 것은 제약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수억달러 매출을 올릴 기회를 잡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제약 회사들은 임상시험 기간을 줄이려고 애쓴다.
그러자면 임상시험에 적합한 정보를 빨리 찾아야 한다. 과거에는 각 나라의 특정 도시를 정해 환자들의 데이터를 먼저 수집 분석해 필요한 환자를 찾았지만, 지금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한다. 이렇게 하면 임상시험 중간에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상위 바이오 제약사 25곳이 임상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3상 임상시험 계획 단계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사용한 결과, 환자 1인당 비용이 이전보다 4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 기간도 30~40%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데이터의 데이터 분석 기술이 어떤 신약 개발에 도움이 됐나.
"길리어드의 C형 간염 치료제 '하보니'와 '소발디'가 대표적이다. 비밀 유지 계약이 있어 구체적인 이름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글로벌 매출 상위 의약품(2014년 기준) 10개 중 8개가 메디데이터의 솔루션을 거쳐 개발됐다. 글로벌 매출 상위 25제약사 중 17곳이 메디데이터의 고객이다. 한국에서는 작년 8조원대 신약 개발 기술을 수출하며 대박을 터뜨린 한미약품을 비롯해 셀트리온, 종근당, 보령제약 등이 메디데이터의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제약 회사가 임상시험에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래야 해외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신약은 사람 목숨하고 연관되기 때문에 어떤 나라를 가더라도 관련 규제가 엄격하다. 미국만 해도 한국보다 규제가 훨씬 까다롭다.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면 개발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기준에 맞춰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약효를 증명해야 한다. 국가별 제도와 법률, 규제에 대해서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클라우드를 이용한 정보 수집은 매우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신약 개발에 필요한 환자 정보를 고객사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국가별 규제와 관련된 자료도 자연스럽게 축적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약업계 전체적으로 임상시험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있다."
진료실 밖에서 환자 정보 수집 ―헬스케어 산업계는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환자 정보 수집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흐름이 산업 판도를 어떻게 바꿀 것으로 보는가.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손목 밴드 같은 웨어러블 기기 등 환자들이 다양한 모바일 의료 기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진료실 밖에서도 지속적으로 환자들에 대한 의료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됐다. 환자들이 움직일 때 생성되는 데이터도 꾸준하게 모니터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데이터는 임상시험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과거에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신체적, 생리적 지표를 체크했지만, 이제는 집에서도 환자의 혈압이나 수면의 질 등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환자들의 동선, 근무 패턴처럼 종전에 수집되지 않았던 데이터도 포함된다.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이 축적되면, 신약을 개발할 때 약제의 효능, 안전성 등을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 약효가 뛰어난 신약 개발에 도움이 된다. 환자들과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의료 분야의 혁명이 될 것이다."
―신약 개발과 관련해 한국 제약 회사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별 환자의 차이를 고려하는 '정밀 의학'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에게 처음 혈압약을 처방할 때, 한 가지 약물을 처방하고 일정 기간 살펴본 뒤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면 다른 약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국 제약 회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정밀 의학에 필요한 신약을 만들어야 한다. 정밀 의학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신약을 만들려면 특정 환자에 대한 정보가 더 많아야 한다. 환자 개개인을 대상으로 충분한 기간에 걸쳐 치료 효과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적인 IT 강국이다. 한국의 제약 기업들이 IT를 접목해 어떻게 환자들과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고리를 잘 만든다면, 한국에서 제2, 제3의 길리어드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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