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쌍 사태'가 보여준 상가법의 오늘

전혜원 기자 2016. 8. 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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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서윤수씨는 2년짜리 임대차 계약을 하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건물 1층에 곱창집 ‘우장창창’을 열었다. 1년6개월이 지난 2012년 5월 건물주가 힙합 듀오 리쌍으로 바뀌었다. 리쌍은 서씨에게 6개월 뒤 1층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서씨는 거부했고, 리쌍은 명도소송(부동산의 인도를 거절하는 경우 제기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리쌍 손을 들어줬고, 2심 과정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이 합의에 따라 2013년 9월부터 서씨는 건물 지하와 1층 주차장 공간을 이용해 영업을 시작했다.

이 주차장 영업이 문제가 되면서 다시 소송전이 시작됐다. 1심은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2심은 리쌍 쪽 손을 들어줬다. 2013년 새로 맺은 2년짜리 계약이 2015년 9월로 끝나서다. 결국 2016년 7월7일 1차 강제집행이 시도됐고, 7월18일 2차 강제집행이 마무리됐다.

ⓒ연합뉴스 : 지난 7월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해 2차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세입자·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원들과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이 충돌했다.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법)에 따르면 최소 5년간은 세입자가 계약 갱신 요구를 하면 건물주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서씨의 경우 세 들어 있는 건물의 환산보증금(월세×100+보증금. 세입자의 자금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기준액(상가법이 보호하는 보증금 최대 한도)을 넘는다. 상가법은 환산 보증금이 일정액을 넘는 건물의 세입자 권리를 일부 제한한다. 이 경우 내용증명을 보내 계약 갱신 요구를 6개월 전에서 1개월 전에 했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 사실상 법적으로 서씨의 완패다.

사건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순간은 2013년 8월 합의다. 우장창창이 리쌍의 건물 지하와 1층 주차장 공간에서 영업을 하도록 하고, 이에 따른 모든 법적인 책임은 우장창창이 지는데, 우장창창이 건축을 포함해 1층 주차장을 용도변경하고자 할 때는 리쌍이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리쌍은 합의 당시 우장창창에게 1억8000만원을 주었다.

당시 법은 이랬다. 새로 바뀐 건물주는 세입자가 옛 건물주와 맺은 계약 기간에 상관없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었다. 세입자가 권리금 등을 얼마나 투자했든 새 건물주가 이에 대해 보상할 의무도 전혀 없었다. 세입자가 현저히 불리한 당시 법을 고려하면, 2013년의 합의는 건물주 리쌍이 이례적으로 ‘배려’를 한 것이다.

사업 초기에 권리금 2억7500만원과 시설투자비 등 약 4억원을 투자한 서씨는 이 합의에 응해 1층에서 나왔다. 이 2013년 합의에서 파생된 요소, 곧 주차장 불법 시설에 대한 구청의 철거 명령과 주차장 용도변경 합의를 둘러싼 양측 이견이 다시 분쟁으로 이어졌고, 그러던 중 계약이 만료되면서 세입자는 2016년의 법정 싸움에서 지게 됐다.

하지만 그 3년 동안 한국 사회는 상가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입법적 전진을 했다(위 그림 참조). 서씨를 비롯한 상가 세입자들이 낸 목소리에 한국 사회가 반응했다. 첫째, 5년간 계약 갱신을 요구할 권리와, 건물주가 바뀌어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대항력’을 모든 세입자에게 확대했다. 각각 2013년과 2015년의 법 개정에서다. 법 개정 전에는 환산보증금이 일정액을 초과하는 세입자는 5년간의 계약 기간도 보장받지 못했고, 바뀐 건물주가 나가라면 나가야 했다. 개정 후, 이 계약갱신요구권과 대항력이 모든 세입자에게 확대됐다.

개정 상가법이 그때도 있었다면…

만약 이번 사건의 시작부터 현행법대로 계약갱신요구권과 대항력이 모든 세입자에게 적용됐다면, 우장창창은 새로 바뀐 건물주 리쌍에게도 최초 계약이 이뤄진 2010년부터 5년간 계약 갱신 요구를 할 수 있었다. 이 경우 건물주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서씨가 계약 갱신을 꾸준히 요구했다면, 건물 지하와 주차장에서 영업하지 않고 애초의 1층에서 최초 계약부터 적어도 5년간 장사를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랬다면 2013년 합의도, 2차 법정 싸움의 발단이 된 ‘주차장 영업’도 없었을 것이다.

둘째, 2015년 법 개정으로 ‘권리금’을 법제화했다. 권리금이란 점포의 영업시설, 노하우, 위치상 이점 등 유·무형 가치에 대한 대가로 새로 들어올 세입자가 기존 세입자에게 주는 돈이다. 임대 시장에서 관행으로 자리 잡았지만, 법에 없는 개념이다 보니 세입자가 이를 회수할 기회도 못 얻고 건물을 나가야 하는 ‘약탈’ 사례가 빈번했다. 건물주가 그 자리에 들어와 장사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개정된 상가법은 세입자가 주선한 신규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회수하는 것을 건물주가 방해하지 못하며, 이를 방해하면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다. 만약 이 같은 조항이 2013년 합의 당시에 있었다면, 우장창창은 ‘법에 따라’ 새 세입자를 구해 권리금을 받고 나올 수 있었다. 건물주에게 직접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법적으로’ 받을 수도 있었다(실제로 이를 받았지만 당시 법에는 없는 돈이었다).

세입자 서씨를 대리한 김남주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현행법은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하면 권리금 회수 방해 행위로 본다. 만약 리쌍이 지금처럼 리모델링을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절했고, 당시 현행법이 있었다면 리쌍에게 권리금에 상당하는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권리금 액수는 임대차 계약 종료 시점에 감정평가를 받아 산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리쌍이 준 1억8000만원보다 높았을 수도 있다.

물론 법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2001년 만들어져 2002년 처음 시행된 상가법은 종전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차용한 법이다. 사인 대 사인의 자유롭고 동등한 계약은 민법에 맡기면 되지만, 주택 세입자는 거래 관계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국민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민법에 특례를 규정한 게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1981년 시행됐다.

ⓒ시사IN 이명익 : ‘우장창창’의 강제집행이 완료된 지난 7월18일 세입자 서윤수씨(오른쪽)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씨는 가게를 열고 1년 반이 지나 바뀐 새 건물주 리쌍과 법적 다툼을 벌이다 결국 패소했다.

고도 경제성장기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자영업자는 사회경제적 약자이므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상가 건물주와 세입자 간 거래 역시 민법에만 맡겨두기에는 주택 거래만큼이나 비대칭적이라는, 즉 세입자가 구조적으로 불리하다는 문제의식이 커졌다. 이를테면 세입자는 권리금이나 인테리어 비용의 형태로 적지 않은 금액을 초기에 사업장에 투자한다. 이 때문에 협상력에서 건물주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입법으로 반영된 게 상가법 제정이었다.

없던 법을 새로 만드는 만큼 건물주 쪽 반발이 심했다. 당시의 한국 사회는 ‘비싼’ 상가 건물 세입자는 법 적용 대상에서 아예 배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알아서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굳이 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 기준이 되는 환산보증금 기준은 서울시의 경우 △2002년 2억4000만원 △2008년 2억6000만원 △2010년 3억원 등으로 확대돼 왔다.

이 환산보증금 기준을 쉽게 넘기는 주요 상권 대부분에서 법적 보호에 공백이 생겼다. 서울 홍대 앞, 강남 등지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2015년 상가법 개정 논의에 참여했던 김철호 변호사(법무법인 이공)의 설명이다. '주요 상권의 세입자라 해도 건물주에 비하면 약자다. 이런 곳이 오히려 권리금도 세고 시설비도 많이 든다. 어지간하면 환산보증금 기준을 넘어버리는데, 이 기준으로 법적 보호에서 제외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청원이 많이 제기됐다.' 국회가 입법으로 2013년 계약갱신요구권을, 2015년 대항력을 모든 세입자에게 확대한 배경이다.

2013년 법 개정 때는 또한 건물주가 세입자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때 내미는 철거 또는 재건축 사유도 △사전에 고지했거나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경우 △다른 법령에 따른 경우로 한정했다. 2013년 환산보증금 기준도 또 한 차례 조정되었다(서울시의 경우 4억원, 2014년 1월1일부터 적용). 이런 진전에도 권리금 약탈 사례가 빈번하자 2015년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를 법제화했다. 시민단체의 노력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도 2014년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에서 의지를 밝혔다.

일련의 법 개정 과정은 건물주와 세입자의 거래 관계가 비대칭적이라는 인식과 이를 교정하려는 노력이 확산되어온 과정이다. 이런 비대칭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상당한 투자를 하고 들어온 세입자는 건물주의 일방적 계약 해지에 따른 예측 불가능한 손해에 취약해진다. 이러면 사인 간 거래에 맡겨두는 것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세입자 보호는 시장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미국 20년·프랑스 30년 보장되는 임대차 기간

우장창창은 법적으로 패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전히 사회적 의제가 된다. 상가법의 발전 궤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세입자와 건물주 간 비대칭을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개선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환산보증금 기준을 초과하는 세입자는 임대료 인상률 제한 등 각종 법적 보호에서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세입자의 피해 액수가 더 클 수 있다. 유동인구가 풍부한 서울시내 상위 5개 상권의 평균 환산보증금은 7억9738만원으로 4억원을 훌쩍 넘는다. 환산보증금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5년이라는 계약 갱신 요구 보장기간이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기에 부족한 것은 아닌지도 토론 대상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태규 전문위원의 2014년 검토 자료를 보면 △일본 10년 △영국 7년 △프랑스 기본 10년, 최장 30년 △미국 최장 20년 등 외국에 비해 한국은 임대차 기간이 짧은 편이다. 권리금 회수 기회가 여러 예외조항으로 인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권리금이라는 제도가 합리적이며 꼭 필요한 것인지도 이야기해볼 수 있다. 임대차 분쟁은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게 보통인데, 2015년 법 개정 때 보류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역시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다.

어디까지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면 상가 임대시장이 최적의 균형에 도달할까. 또 이를 건물주의 재산권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한국 사회가 균형점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여전히 그걸 찾으려는 중이다.

전혜원 기자 /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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