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이 공기 더럽히든 말든 값 싸면 그만"

이민석 기자 2016. 2. 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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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만 질주] 배기가스 조작해 전세계서 고전.. 국내 소비자는 왜 몰리나 - 대대적 할인마케팅 먹혀 모든 차종 60개월 무이자 할부, 현금 내면 최대 1700만원 할인 외제차 선호하는 심리도 한몫 - 폴크스바겐, 美엔 고개 숙이면서.. 120만원 보상에 무상수리 약속, 한국선 아무런 계획도 없어

"환경요? 자동차가 연비(燃比) 높고 주행 능력 좋으면 최고 아닌가요."

지난 31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에 있는 폴크스바겐 수입차 전시장.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씨에도 차를 보기 위해 매장을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문제로 시끄럽던데 차를 사도 문제없겠냐?"는 한 30대 남성 고객의 질문에 매장 딜러 최모씨는 "조사해 보면 문제없는 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평소보다 수백만원 싸게 살 수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고 권했다.

폴크스바겐이 일부 디젤차 모델의 배출 가스 저감(低減) 장치를 조작한 사실이 작년 9월 밝혀져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디젤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 이후 폴크스바겐 차량의 전 세계 판매량도 급감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한국에서는 폴크스바겐이 승승장구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폴크스바겐 디젤차는 배출 가스 장치 조작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인 지난해 8월 5898대가 팔렸다. 하지만 디젤게이트가 터진 직후인 작년 10월(3111대)만 주춤했을 뿐 한 달 뒤인 11월(7585대)엔 배 이상으로 판매 대수가 증가했다. 2014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60% 늘어난 수치다. 같은 달 미국(-24.7%), 영국(-20%), 일본(-32%) 등지에서 폴크스바겐 판매 대수가 급감한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날 본지가 서울 강남의 폴크스바겐 전시장 세 곳을 돌아본 결과 1시간 동안 매장당 평균 20여 명이 들러 차를 구경하거나 시승했다. 상당수 손님은 매장을 찾은 이유로 폴크스바겐의 대대적 '할인 마케팅'을 꼽았다. 폴크스바겐은 작년 11월 모든 차종을 대상으로 60개월 무이자 할부 행사를 시작해 현재도 일부 차량에 대해 무이자 할부를 해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현금 구매 고객에게 최대 1700여만원을 깎아주는 등 현재도 현금 할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한 폴크스바겐 전시장 관계자는 "할인 행사 직후엔 고객이 몰려 상담을 받느라 10~20분씩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33)씨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이런 할인 가격을 모른 척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건설 회사를 운영한다는 전모(54)씨도 "솔직히 도로에 나가면 내 차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줄 누가 알겠느냐"고 했다.

디젤게이트 이후 유독 한국에서 폴크스바겐이 잘 팔리는 현상을 두고 누리꾼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한 자동차 동호회 인터넷 사이트에는 "다른 대형 메이커 자동차도 기준치를 넘는 배출 가스를 내뿜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폴크스바겐을 산다고 환경을 무시한다고 하는 건 과민한 것 아니냐"는 등 폴크스바겐 구매를 옹호하는 의견과 "대한민국 국민과 소비자의 권리를 염가(廉價)에 팔아넘기는 행위"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폴크스바겐이 한국 시장에서 선전하는 건 파격적 할인 마케팅 덕분이란 게 대체적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고객들이 첫째로 꼽는 평가 기준은 환경 같은 윤리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이득"이라며 "두 기준이 상충할 땐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고객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도 "비슷한 값이면 국산차 대신 외제차를 살 것이라는 한국인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폴크스바겐의 할인 정책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폴크스바겐은 디젤게이트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선 리콜 대상 1대당 1000달러(120만원)를 보상하고 3년간 무상 수리를 약속하는 등 보상안(案)을 내놨다. 하지만 한국에선 보상 계획이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한국 소비자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 '호갱(호구 고객)'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공익적 가치를 훼손한 기업에 대한 견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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