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싸이월드 창업자 이동형의 못다 한 이야기

박혜민 2011. 1. 22.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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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혜민]

박혜민경제부문 기자

여기 공부 잘하는 학생 둘이 있다. 한 학생에게는 독지가가 나타나 마음껏 공부하며 박사까지 딸 수 있게 해줬다. 그 학생은 나중에 훌륭한 교수가 돼 이름을 날렸다. 반면 다른 학생은 돈이 없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해야 했다. 죽을 힘을 다했지만 야간대학을 간신히 졸업했을 뿐이었다. 두 번째 학생에게 '너는 왜 교수가 못 됐느냐'고 묻는 게 합당할까.

 이동형(46·사진) 나우프로필 대표의 비유다. 그는 토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싸이월드의 창업자다. 그에게 '왜 당신은 싸이월드를 페이스북처럼 키우지 못했느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이동형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 기사(1월 21일자 E1면)가 나간 뒤에도 할 말이 많았다. 그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별다른 수익 없이 수년간 버티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미국의 벤처생태계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 실리콘밸리의 에인절투자자들은 될 것 같은 사업엔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성장을 지원한다. 하지만 국내엔 아직 그런 생태계가 조성되지 못했다. 많은 투자자가 단기적인 수익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대부분의 벤처사업가들이 그랬듯이 이 대표도 한국의 열악한 벤처생태계에 둘러싸였다. 2001년 미니홈피 서비스를 시작해 인기를 끌었지만, 가입자들이 늘면서 운영비가 늘었다. 빚도 17억원이나 됐다. "인터넷데이터센터에서 밀린 3개월치 네트워크 사용료를 내라며 30분간 인터넷 연결을 끊어버리더군요."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대기업을 찾아다니며 싸이월드를 사달라고 사정했고, SK커뮤니케이션즈가 인수했다. 그는 "딸 같은 싸이월드를 팔고 싶었겠는가.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으려면 별 도리가 없었다"고 술회했다.

 돌아보면 국내에도 지난 10년간 세계적 흐름을 앞서가는 선도적 서비스가 많았다. 가령 1999년 등장했던 아이러브스쿨은 아이비리그(미국 동부 명문 사립대를 통칭) 네트워크로 시작한 페이스북처럼 학연 기반 네트워크 서비스였다. 2000년 나온 다이얼패드는 세계 최초의 인터넷 무료 전화 서비스였다.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글로벌 서비스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글로벌 서비스들이 밀려오는 스마트 시대에 내수용 서비스들이 설 곳은 줄어들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모자란 적은 없었다. 여전히 혈기 넘치는 젊은 벤처 창업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열풍을 통해 한국은 공유와 개방이라는 세계적 트렌드도 경험했다. 앱스토어는 소프트웨어 경쟁력만으로도 세계 시장을 평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정부와 기업, 투자자들은 이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젊은 창업자들을 어떻게 육성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앞으로 10년 후 오늘을 돌아보며 "그때 그 서비스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는데"라며 한숨짓지 않으려면 말이다.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 < acirfajoongang.co.kr >

▶박혜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acir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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