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러운 TV냐, '잡스'다운 TV냐

김세희 기자 2011. 11. 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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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영화를 고르고 컴퓨터로 받은 다음 아이팟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구입한 대형 평면 텔레비전은 어떻습니까? 대형 TV에서 보려면 셋톱박스가 필요하겠죠. 그 셋톱박스는 어떻게 컴퓨터와 연결할까요? 온 집 안에 전선을 깔아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콘텐츠를 컴퓨터에서 셋톱박스로, 셋톱박스에서 텔레비전으로 연결하기 위해 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방식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 2006년 말 첫 애플TV를 선보이며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잡스의 이 제품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7년에 상용화된 첫 번째 애플TV는 안방에서 TV와 컴퓨터를 연결해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되었지만, 기존 TV에 비해 설치와 사용이 불편하다는 단점 때문에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3년 뒤인 2010년, 스티브 잡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애플TV 신제품을 공개했다. 가격은 99달러로 이전 애플TV 모델(2백29달러)보다 저렴해졌고 사용 방식에도 변화를 주었다. 각종 영상을 다운받는 대신 콘텐츠를 '빌려 보는' 스트리밍(실시간 시청) 방식을 도입했다. 고화질급 개봉 영화는 4.99달러, 각종 TV 프로그램은 99센트에 빌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전세계적인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애플이기에 TV에서 고전하는 모습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애플TV가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는 콘텐츠를 강제로 가져올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애플 소프트웨어의 심장인 아이튠즈에는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IPTV처럼 다양한 콘텐츠는 없다. 인기 TV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되기는 하지만 TV·영화 제작사 쪽에서는 자신들의 콘텐츠를 싼값에 공급하기를 꺼리고 있다. 케이블TV 업체의 반대도 있지만 케이블TV를 통해 가정에 공급되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고정 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지난 10월27일, 음성 명령 기술인 '시리(Siri)'가 탑재된 애플TV가 2012년 말에 발표되고 2013년 초에 출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TV가 던지는 세 번째 도전장이다. 애플TV는 최근에 발간된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에도 언급된 바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서전 집필자 월터 아이작슨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사용해 통합형 TV를 개발하려고 했고, 마침내 이를 구현했다"라고 말했다. 잡스의 유작이기도 한 애플TV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일단 외형이 변했다. TV 옆에 놓는 셋톱박스의 옷을 벗었다.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 재프리의 애플 담당 애널리스트 진 먼스터는 "지금까지 나온 셋톱박스형 애플TV와 달리 완전한 형태의 애플TV는 생방송 중계와 함께 아이클라우드에 저장해놓은 기존 방송을 결합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TV의 기능에 아이클라우드 기능을 얹은, 일종의 '통합 TV 세트'이다. 실제로 잡스는 생전에 아이작슨에게 "정말 쓰기 쉬운 통합형 텔레비전을 만들겠다. 이 텔레비전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컴퓨터 등 모든 애플 기기와 연결되고 아이클라우드도 쓸 수 있는 제품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에 따르면 모든 애플 제품이 무선 네트워크로 공유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애플TV로 소파에 앉아 영화 < 완득이 > 를 본다고 하자.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싶지만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더는 집에서 영화를 볼 수가 없다. 그럴 때에는 아이패드를 들고 나간다. 애플TV를 종료하는 순간부터는 아이패드로 < 완득이 > 를 마저 볼 수 있다. 아이폰이나 아이팟 등 기기가 달라도 상관없다. 아이클라우드 인터넷 서버에 < 완득이 > 가 공유될 수 있도록 다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외에도 사진이나 음악 등 모든 콘텐츠는 이와 같이 공유될 수 있다.

언뜻 스마트TV의 기능과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스마트TV에서는, TV는 물론이고 TV와 연동하고자 하는 기기에 각각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클라우드 서비스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인터넷 서버에 콘텐츠도 미리 저장해야 하는 등 과정이 복잡하다. 스마트TV용 리모컨만 보더라도 버튼이 많게는 100개가 넘는다. '단순함'을 상징으로 하는 잡스가 이를 지나칠 리 없다. 잡스는 "더는 복잡한 리모컨을 붙잡고 끙끙댈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세계 TV 시장 전망과 애플TV 참여 후 예상되는 변화 규모

(단위 : 100만대, %)

TV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평판TV 규모

150

180

200

220

230

240

연간 성장률

20

11

10

5

4

인터넷TV 비율

8

18

35

48

54

60

인터넷TV 규모

12

32.4

70

105.6

124.2

144

인터넷TV 연간 성장률

170

116

51

18

16

애플TV 규모

1.4

2.5

4.32

연간 성장률

81

74

인터넷TV시장 점유율

1.3

2

3

평균 판매 가격

$1,800

$1,600

$1,400

매출(100만 달러)

$2,471

$3,974

$6,048

(자료: 파이퍼 제프리, 2011)

"TV에 사용자 환경이 전부 아닌데" 지적도

사용자 환경의 단순함을 추구했던 잡스의 결과물은 '시리'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먼스터는 "각종 프로그램의 제목이나 출연자의 이름 등을 음성으로 입력하면 작동되도록 아이폰4S에 적용된 음성 인식 기능 '시리'를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음성 인식 기술이 정확히 구현된다면 리모컨의 존재 가치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관건은 '얼마나 정교하게' 음성을 읽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권희원 LG전자 부사장은 "TV 사업은 영원하다. 소비자들은 밖에 있을 때 모바일 기기를 필요로 하는 만큼 집에 있을 때 편한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스마트폰, 태블릿PC, TV가 서로 연동되는 트렌드가 조만간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결국은 TV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이것이 구글, 애플이 TV 사업에 뛰어들려고 하는 이유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디스플레이를 주요 산업으로 하고 있는 국내 업계는 애플이 통합형 TV를 들고 나올 경우 긴장할 수밖에 없다. 국내 환경에 얼마나 녹아들지에 대한 의구심은 있지만 완전한 TV 제품으로서의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TV 역시 약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스크린의 크기이다.

IT전문지 지디넷의 칼럼니스트인 아드리안은 "심플함이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TV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한다. 가격과 크기이다. 도시바 LCD TV가 22인치에서부터 55인치까지 스무 가지 다른 종류의 TV를 출시하고, 삼성이 22인치에서 65인치에 달하는 스물한 가지 다른 LED TV를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TV에 대한 만족감과 직결된다. 아드리안은 "(적어도) TV에서는 편리한 사용자 환경이 전부는 아니다. 애플이 굉장히 깔끔한 TV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면 그저 크기만 다른 아이맥(iMac 컴퓨터)을 갖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세희 기자 / luxmea@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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