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 13자리의 '무서운 진실'

입력 2011. 9. 21. 10:49 수정 2011. 9. 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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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

한국 정부는 내게 관심이 많은가 보다.

커피숍에서 무료 인터넷이 된다고 해서 컴퓨터를 켜고 와이파이에 접속한다. 환영 메시지가 나오더니, 이윽고 '네가 너임을 입증하라'는 철학적인 지시문이 뜬다.

한국에서 무료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실명확인을 거쳐야 한다. '실명확인'과 '인터넷 실명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비민주적이고 위험한 제도다. 사진은 스타벅스 무선인터넷의 개인정보입력창.

ⓒ 강인규

국영 찻집이 아닌데도 국가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의 오묘한 세계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겁이 덜컥 난다. 그, 그것만은...

그리하여 나는 생년월일, 성별, 출생지, 가족관계, 혈액형, 범죄기록 등 내 100여 가지 정보가 관리되는 식별번호를 입력한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신비로운 온라인 세상을 보여주는데, 기껏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되겠는가. 이제 '추가정보'로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란다.

다행히 이날 어머니 전화를 빌려가지고 나왔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정말 잘했다. 안 그랬으면 휴대전화도 없는 내가 사이버 공간을 들여다볼 꿈이라도 꾸겠는가. 어머니 번호를 입력하고 커피잔을 기울여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인다. 아, 드디어 황홀한 인터넷 세계가 열린다.

'본인확인제도'에 담긴 철학 혹은 멍청함

잠깐. 어머니 전화번호를 입력해도 된다면 어떤 번호를 넣어도 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누구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도 '본인'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아버지, 형, 동생, 조카, 조금 전 나를 기분 나쁘게 한 친구 등 누구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본인확인'이라는 심오한 철학적 난제의 실마리는 라캉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인터넷 없이 못 사는 나로서는 '정치성향'이나 '성적 취향'에도 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정부는 위치정보 수집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강조해 오지 않았던가. 지난 8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애플과 구글이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해 온 방식을 문제 삼으며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이처럼 국민들의 권리 보호에 민감한 정부가 왜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려 하는 것일까? 단말기 이동경로가 밝혀지는 건 위험하지만 주민등록번호 입력으로 개인의 위치가 포착되는 건 괜찮다는 말인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는 창 옆에는 '와이파이를 통한 인터넷 접속은 특성상 보안이 취약하다'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떠 있다.

정부는 대체 뭘 알고 싶은 것일까? 내가 어떤 커피숍에서 몇 시간이나 죽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내가 어떤 음험한 사이트를 돌아다니는지 알고 싶어서?

정부가 강요하는 실명확인을 유지한 채 와이파이 존을 늘린다면 '무료인터넷'은 거대한 감시망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사진은 'T모바일'의 실명인증 및 '추가정보' 창.

ⓒ 강인규

'본인'이 어디 있는지 본인도 모르는 나라

2010년 4월, 방통위는 전국적으로 와이파이 존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까지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장소를 10만 곳으로 늘려, 세계 1위인 미국을 누르겠다는 것이다. 신나는 일일까?

전국이 와이파이 존으로 덮이고, 접속할 때마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면, 정부는 개인의 움직임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조카의 주민등록번호를 쓰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네이트 계정에서 빼낸 내 번호를 입력하지 않는 한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처럼 기구한 팔자가 최소한 3500만 명이 넘으니 말이다. 분실된 '본인'이 전 세계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는 한국인들 말이다. 잃어버린 번호가 무료 인터넷 접속 정도로만 쓰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13일 방통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는 경악할 만하다. 올해 1월부터 7월 사이만도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 치명적 신상정보가 15개국 7500개 이상의 웹사이트에 노출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제 이론적으로 전 세계 누구라도 '본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욕먹어 싸고 소송 당해 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물어야 한다. 정부가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국민 개인의 정보 수집을 법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은 이 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제적 조롱거리인 한국 실명제

'세계적 추세' 좋아하는 한국 정부에 한마디 하자. '본인확인' 같은 촌스러운 것 안 하는 게 인터넷 탄생 이래로 쭉 세계적 추세다. 특히 미국 좋아하는 한국 정부 아닌가. 미국 전역의 커피숍, 공공도서관, 공원에 가 보라. 무료 무선 인터넷이 널려 있지만, 어느 곳도 '본인확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제발 의료 민영화 같은 것 말고 이런 걸 본받자.

지메일이나 핫메일을 이용하면 사용자 실명이나 본인확인 없이 무제한으로 계정을 만들 수 있다. 야후 같은 포털, 유튜브 등의 동영상 사이트, < 뉴욕타임스 > 같은 언론사 사이트에 의견을 쓰거나 게시물을 올릴 때에도 '실명,' '확인,' '인증' 따위는 필요 없다. 세계 최대 인터넷 상점인 아마존에서 물건을 살 때도 그런 귀찮고 까다로운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해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실명인증'이라는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은 미국 스타벅스의 무료인터넷 화면. 서비스이용약관에 표시를 한 뒤 '연결'만 누르면 인터넷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 실명을 밝힐 필요도, 이메일 주소를 입력할 필요도 없다.

ⓒ 강인규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길 바라는가? 경쟁력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본인확인제나 실명제는 세계에서 '해외 토픽'감으로 보도되는 희한한 제도다. 이달 초 < 뉴욕타임스 > 는 실명제라는 '한심한 발상'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의 이 제도는 포털 사이트나 인기 사이트에 글을 남기는 사람에게 익명 대신 실명을 쓰도록 요구한다. 지난달, 대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후, 한국 정부는 실명제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해커가 인터넷 사용자 3500만 명의 주민등록번호를 훔쳐간 탓이다. 한국 사용자들은 웹사이트 회원 가입 시 본인확인을 위해 의무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이 정보 유출 사건은 소위 '실명제'가 얼마나 한심한 발상인지를 보여준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아랍 세계의 민주화 시위가 보여주었듯, 온라인의 익명성은 정치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데 꼭 필요하다. 기업 내의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인해 미국 대법원은 익명성이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 < 뉴욕타임스 > 9월 4일 "인터넷에서 이름 달기"

한국 정부라고 이 사실을 모르겠는가. '온라인의 익명성이 정치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데 꼭 필요'함을 알기에 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기술이 도입되고 활용되는 방식은 사회문화적 조건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인터넷 실명제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주민등록번호체계가 한국에 도입된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련된 것이었고(국민에게 고유번호를 붙여 관리하는 나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실명제 역시 온라인상의 발언을 규제하고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이 온-오프라인의 두 축을 연결하는 한국 사회의 비민주성을 해결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는 무료로 쓸 수 있는 공공무선인터넷이 흔하다. 사진은 뉴욕시의 매디슨 스퀘어 공원의 무선인터넷 안내 화면. 이메일 주소 하나만으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이메일 계정을 만드는 데에도 실명확인을 거치지 않는다.

ⓒ 강인규

주민등록번호의 원시성

1968년 주민등록증을 받아 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 당시에는 주민등록번호에 생년월일이 기록되지 않았다. 현행 주민등록제도는 1960년대보다 퇴보한 셈이다.

ⓒ < 한국일보 >

'민주국가' 운운할 것도 없다. 도대체 어떤 문명국가에서 한눈에 생년월일, 성별, 본적지가 드러나는 원시적인 식별번호를 부여한단 말인가? 1968년, 한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12자리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할 때에도 생년월일은 적혀 있지 않았다(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번호는 '110101-100001'이었다).

1975년부터 13자리로 바뀌면서 앞 6자리를 생년월일로 채웠다. 이유는 뻔하다. 군사독재정부가 국민들을 손쉽게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오래전에 폐기하거나 대폭 손봤어야 할 식별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한심한데, 이 무지막지한 번호를 온라인상에서 수시로 입력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정부나 기업이 '본인확인'을 요구하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없다. 대다수 나라가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가 있지만, 이 번호는 세금이나 신용거래 등 지극히 한정된 목적으로만 사용된다.

미국의 사회보장번호는 개인 정보를 담고 있지 않으며, 신분 증명 목적으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이 흔히 신분증으로 쓰이는데, 여기에는 사회보장번호가 기록되지 않는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사회보장번호는 주민등록번호와 달리, 본인확인용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회보장번호를 신청하면 '막종이'에 인쇄된 카드가 하나 배달된다. 여기에는 사진도, 생년월일도, 주소도 들어 있지 않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인터넷에서 사회보장 번호를 입력할 일은 일 년에 딱 한 차례 있을 뿐이다. 세금을 신고할 때다. 온라인으로 신고하지 않는 사람은 이마저도 입력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사회등록번호 카드. 9자리 번호에는 개인의 어떤 정보도 기록되지 않으며, 이 카드를 본인확인용도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 공개자료

주민등록제 폐지가 정답이다

최근 네이트/싸이월드와 삼성카드 등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실명제 폐지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고 있다. 정부도 마지못해 실명제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앞으로 포털이나 게임사이트 등의 회원으로 가입할 때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르면 내년부터'('이른' 게 내년이면 늦으면 언제가 될까?)라는 불길한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기업과 정부가 수집한 개인정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유출되고 있는 국민들의 신상정보는? 해커들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불안한 건 해커만이 아니다. 국정감사 결과, 정부가 국민들의 신상정보를 외부에 팔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2008년부터 5000만 건이 넘는 개인정보를 1건당 30원씩 받고 민간기업에 넘겼다는 것이다.

폐지할 것은 실명제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없애야 할 것은 주민등록제다. 국민들의 온갖 정보가 통합된 주민등록번호가 유지되는 한, 온-오프라인에서 이 '만능번호'를 수집하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나 치명적일 것이다. 개인정보가 이윤과 권력의 핵심이 되고, 정보 수집 수단이 날로 첨단화하는 상황에서 주민등록제는 국민들을 손쉬운 먹잇감으로 만들어 왔다.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아이핀(I-PIN)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 번 포장했을망정, 기본적으로 주민등록번호와 연결된 식별체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일 국정감사에서 아이핀이 단 3분 만에 해킹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도 행안부 웹사이트에서 말이다. 이렇게 해킹된 정보로 남의 주민등록등본을 떼고 은행 사이트에서 인터넷뱅킹으로 돈까지 빼낼 수 있었다.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비밀번호는 무용지물이었다.

주민등록제는 어차피 그대로 둘 수 없는 제도다. 이제 더 이상 털릴 것도 없을 만큼 노출된 식별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국민 보호 의무를 저버리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지난 세기 권위주의 정부가 도입한 식별번호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줄 뿐이다.

주민등록증 없이 어떻게 신분을 증명하느냐고? 이런 걱정 자체가 한국이 얼마나 세계적 상식에서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민등록제는 국민들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듯, 지방자치정부가 발행하는 신분증으로 충분하다. 식별표시에는 개인의 신변정보가 담겨서는 안 되고, 개인의 여러 정보를 통합하는 용도로 쓰여서도 안 된다.

'한국신분증번호생성'으로 수백만 개의 사이트가 검색된다.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면 아래 사진처럼 생년월일만으로 유효한 주민등록번호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생성 알고리즘은 초보자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 강인규

한국 인터넷 황폐화의 주범

한국 정부와 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여러 차례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게 진심이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망가진 인터넷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웹 표준 준수와 실명제 폐지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에 따르면 인터넷은 '익명성'과 '탈규제'의 공간이다. 한국은 정반대로, 엄격한 실명과 규제의 공간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본인확인'과 '인증절차'를 사업자와 사용자에게 모두 법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처럼 다른 나라와 완전히 동떨어진 환경 속에서 프로그램을 짜고 서비스를 하는 업체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는 없다. 다른 나라보다 낫지는 못하더라도 유사한 인터넷 환경은 경험해야 한국 밖에서도 통할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꿈이라도 꿀 게 아닌가. 금칙어 설정법, 블라인드 처리법, 이메일 감청용 소프트웨어 수출이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미래가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에서 책 한 권 주문하려면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티브엑스 부가 프로그램을 잔뜩 깔아야 한다. 물론 사진처럼 에러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칠 시간이면 아마존 같은 곳에서 주문을 서너 번은 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사실상 강요해 온 비표준 인증절차가 한국 인터넷 업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 강인규

웹 표준 문제도 그렇다. '액티브엑스'로 대표되는 비표준 기술 남용은 실명제와 더불어 한국 인터넷을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시킨 주범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액티브엑스가 악성코드 유포의 주범'이라면서 '대체방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상황이 얼마나 나아졌을까? 시험 삼아 방통위 웹사이트의 '통합민원센터'를 파이어폭스, 크롬, 사파리로 접속해 보았다.

화면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거나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다. 익스플로러로 접속하니 액티브엑스를 설치하라는 지시가 뜬다. 웹 표준 문제를 앞장서 책임지겠다던 방통위 사이트가 이러니, 다른 정부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아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지금 경쟁에 치여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만은 참 쉽게 사는 것 같다. 이처럼 경쟁력 없는 집단이 국민들에게 경쟁력을 주문하는 건 아이러니다.

그러니 이제 나에 대한 관심은 꺼 주시는 게 좋겠다. 제 할 일도 못하면서 남의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은 분수에도 맞지 않는다.

한국방송통신위원회의 사이트에 접속하면 아래와 같이 액티브엑스를 설치하라는 안내문이 뜬다. 설치를 거부하면 화면조차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

ⓒ 강인규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방통위의 웹사이트. 그 '상상의 현실화'는 오직 익스플로러로만 가능하다. 파이어폭스, 크롬, 사파리로 접속하면 사진처럼 화면이 깨져 표시되거나 서비스에 필요한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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