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2.5배, 휴대폰 값의 비밀

2011. 9. 1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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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조사가 전략 모델을 밀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제조사 보조금' 때문

소비자 선택권 줄이고, 선불요금제 서비스 출현 막아…공정위 조사로 새 국면

 한국은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생산국이지만, 정작 국내 소비자들은 자국산 휴대전화를 국외 소비자들보다 훨씬 비싸게 구입하고 있다.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의 휴대전화는 국내 출고가가 국외시장 평균 판매가의 2.47배에 달한다. 국내 전자업체들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세계 시장보다 약 2.5배 높은 값으로 공급하고 있어, 자국 소비자가 '봉'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은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 값이 비싼 이유는, 제조사가 가격을 실제 원가보다 높게 책정하고, 대리점 등에 주는 제조사 장려금(리베이트)을 늘려 가격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제조사 장려금의 현실화를 통해 국내 소비자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하고, 휴대폰 출고가 인하로 가계통신비를 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식경제부가 이달 초 공개한 바에 따르면, 올 2분기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한국은 출하량 기준 1억110만대를 판매해 점유율 28.3%를 기록해 1위를 차지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2450만대를 판매해 23.1%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1920만대로 17.5%, 엘지(LG)전자가 62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해 시장점유율 5.6%였다.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생산국에서, 세계 평균 판매값보다 2.5배에 제품 출고가가 형성되는 '미스터리'한 현상은 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 매장에서 스마트폰은 '공짜', 일반폰은 '기기값 10만원'

복잡하고 불투명한 휴대전화 유통 구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을 찾았다. 주5일 영업으로 토요일은 개통 업무가 불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상당수 매장이 문을 열고 있었다. 값싼 스마트폰을 보여달라고 하자, 갤럭시A를 비롯해 월 4만5000원 약정 조건으로 기기값을 따로 낼 필요가 없는 이른바 '공짜폰'을 여럿 내밀었다. 일반폰(피처폰)을 구입하고 싶다고 말하니 직원은 한 모델을 보여주면서 "최신 모델도 아닌데 월 4000원씩, 2년간 9만6000원의 기기값을 내야 한다"며 "차라리 공짜 스마트폰을 쓰라"고 권한다.

"아이폰4 주세요""갤럭시S2 주세요" 라는 식으로 고객이 특정 모델을 요구하지 않으면, 흔히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휴대전화 판매점이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로부터 지급받는 각종 보조금(리베이트, 수당)은 줄잡아 20여가지, 휴대전화 기기값이 종잡을 수 없고 변화무쌍한 이유다.

■ 20종 넘는 유통망 리베이트중 '제조회사 보조금'은 '역기능'뿐

 판매 촉진 명목으로 유통망에 지급되는 숱한 보조금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제조사 장려금(리베이트)'이다.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가입자는 이통사가 약정기간과 요금제에 따라 제공하는 약정 할인, 단말 보조금 그리고 이와 별도로 제조업체가 따로 제공하는 보조금을 받게 된다. 제조사 보조금은 제조사가 모델별로 소비자에게 직접 값을 깎아주는 형태가 아니다. 제조사가 일괄적으로 단말별로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라면, 출고가 자체를 내리면 될 사항이다.

 제조사 보조금은 제조사가 이통사나 휴대전화 유통망에 특정 모델별로 보조금을 지급하면,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이를 구매 고객에게 '임의로' 적용하는 구조다. 휴대전화 판매점이 동일한 모델을 고객에 따라 다르게 팔고 있는 이유이고, 휴대전화 살 때 다리 품을 팔고 매장 여러곳을 다니면 싼 값에 구매할 수 있는 배경이다. 그래서 제조사 단말 보조금은 특정 모델 판매에 따른 리베이트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올해 '우리나라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연구보고서를 펴낸 성낙일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통사 보조금과 달리. 제조사 보조금은 휴대전화 시장에서 순기능이 거의 없고, 경쟁과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역기능이 훨씬 많다"며 "휴대전화 출고가 현실화를 통해 제조사 보조금을 철폐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특히 제조사 보조금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국내에만 고유한 현상"이라고 연구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그는 "제조사 보조금은 국내 폐쇄적 휴대전화 유통구조에서 생겨나서, 제조사의 유통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변질됐다"며 "결국 대리점 중간마진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아, 제조사 보조금이 늘어날수록 휴대폰 소매값이 인상되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제조사 보조금은 출고가를 부풀려 놓은 뒤 제조사, 이통사, 판매점이 상황에 따라 특정 모델과 특정 고객에 각종 '할인''혜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통사의 전략에 따라서, 휴대전화 값이 춤추는 구조엔 제조사 보조금이 있다.

■ 옴니아 국내 출고가 91만3000원, 국외 판매가 36만5000원

성 교수가 올해 1월 말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13개국에서 팔리는 삼성전자, 엘지전자, 애플 등 8개 업체 20개 모델을 한국시장 가격과 비교한 결과를 보면, 국내 휴대전화 값의 왜곡 현상은 명확하다. (표 참조) 조사대상국에서 이통사 단말 보조금 없이 판매되는(unlocked) 모델들의 온라인 가격을 평균한 값을 국내 출고가와 비교한 수치다.

 이 자료에서 삼성전자 옴니아의 국내 출고가는 91만3000원인 데 비해, 국외 판매가는 36만5000원으로, 국내 출고가가 2.5배 높았다. 엘지전자의 쿠키폰은 무려 3.9배 높았다. 대조적으로 애플 아이폰4(32GB)의 국외 평균가는 103만9000원으로, 국내 출고가인 94만6000원으로 국내 가격이 오히려 쌌다. 에이치티시(HTC)의 넥서스원도 국내 출고가가 국외 평균가보다 낮았다. 20개 모델 조사결과,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모델(9종)의 국내 출고가는 국내 온라인매장 평균가보다 2.47배 높았고, 애플·에이치티시 등 5개 국외 제조업체의 모델 11종의 국내 출고가는 1.27배 높았다.

 이 조사를 두고 제조사들은 일부 국내 모델의 디엠비(DMB) 기능이나 추가 배터리 등이 포함돼 가격 차이가 생겨난다고 하지만 제조 원가에서의 비중은 미미하다. 또한 성 교수가 비교한 국외시장의 온라인 판매 평균가가 실제 매장보다 낮은 가격임도 감안해야 한다.

 국내 출고가가 유난히 비싼 현상은 갤럭시S 같은 최근 모델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시민모임이 2010년 세계 25개국에서 52개 주요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국내 판매가인 93만원은 중국, 브라질, 스페인에 이어 조사대상국에서 4번째로 높았다. 아이폰4(32GB)는 17위로 나타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이경재 의원에 따르면, 제조사 보조금은 지난 2000년 초반 2만~5만원이던 게 지난해에는 약 25만원 수준으로 지속상승하고 있다. 성낙일 교수는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유통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조사 보조금을 활용하고 있다"며 "아이폰 등 외산 스마트폰에 맞서 국내 시장을 방어하기 위한 배경이 있다"고 지적했다.

■ 제조사 보조금, 공정위·방통위 조사로 새 국면 

 제조사가 특정 전략 모델을 밀기 위한 용도로 쓰는 제조사 장려금은, 다양한 모델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을 차별하거나 그 권리를 제약한다. 또한 단말기 시장에서 이통사와 제조사의 영향력이 커지게 만들어 그만큼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게 되고, 선불요금제나 회선재판매(MVNO) 서비스 출현을 구조적으로 막아 통신요금 저하를 막는 구실도 한다.

 출고가를 부풀려 놓은 뒤 보조금 형태로 '깎아주는' 방식은 소비자를 약정에 발목을 잡아 선택권을 제한한다. 약정을 중도해지할 경우에 부풀려진 출고가를 기준으로 위약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휴대전화 제조사의 단말기 출고가 부풀리기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공정위는 지난 15일 "단말기 공급가 및 출고가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조성된 재원을 이용하여 지급되는 제조사 보조금의 위법성 여부를 검토해 왔다"며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엘지전자·팬택 등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고, 의견서를 요구한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제조사 보조금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지난 6월 이동통신 3사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이용자 차별행위에 해당하는지 조사에 착수해, 곧 제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에 고유한 제조업체의 보조금으로 부풀려진 휴대전화 출고가의 거품이 꺼질 수 있을지가 세계 시장에서의 단말기 가격 공개와 당국 조사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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