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진화 한국IT '갈라파고스' 될라

2009. 7. 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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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넷실명제·사이버모욕죄…국제표준과 거리

"모바일 강국 착각에 빠져 고립상황 인식 못해"

세계 이동통신과 인터넷 업계에선 '갈라파고스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남미 에콰도르 서쪽 동태평양의 16개 섬으로 이뤄진 갈라파고스는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유종이 많아 '자연사의 보고'로 불린다. 하지만 이곳에 외부 생물들이 들어오자 이들 고유종 가운데 다수는 멸종했다. 갈라파고스에서 벌어진 수많은 생물들의 부침 현상이 정보기술(IT) 산업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일본 휴대전화 제조업계는 세계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일본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던 자부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일본의 휴대전화, 세계진출 실패 이유'를 다뤘다. 일본은 일찍부터 세계 최고 성능의 휴대전화를 만들어왔다. 탄탄한 내수시장과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샤프, 파나소닉, 일본전기 등 8개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열띤 성능 경쟁을 벌였다. 1999년 이메일 송수신 기능, 2000년 카메라폰, 2002년 음악 내려받기, 2004년 전자결제, 2005년에는 디지털티브이 수신 기술 등이 일본 휴대전화에서 처음 개발돼 상용화됐다. 2000년대 들어 에릭슨과 손잡은 소니가 유일하게 '글로벌 빅5'에 들어 있긴 하지만, 올해는 소니-에릭슨마저 삼성전자, 엘지전자, 모토롤라에 밀려 5위로 추락하며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2세대 통신망의 독자표준을 내세우고, 고성능 하드웨어에 수준 낮은 인터페이스 등으로 '독자 진화'에 치중한 결과가 세계시장과 단절을 가져온 요인으로 꼽힌다.

프랑스는 요즘 유럽에서 인터넷 이용환경이 나쁜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프랑스는 600만가구에 정보통신 단말기와 전용망이 깔려, 정보통신 환경이 어디보다 앞선 나라였다. 정부 주도로 보급된 비디오텍스 단말기 '미니텔'로 각종 정보 검색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고 이용률도 높았다. 문자 메시지는 물론, 게임과 채팅, 전자상거래에 이어 각종 표 예약과 은행거래도 어디보다 앞서 도입됐다.

21세기를 앞두고 다른 나라들이 앞다퉈 초고속망을 깔고 인터넷을 보급하던 때도 프랑스에선 여전히 '자국 기술'인 미니텔이 대세였다. 1990년대 후반 피시와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자, 미니텔은 인터넷 단말기로도 쓸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됐지만 여전히 주된 기능은 프랑스 내부네트워크(인트라넷)였다. 결국 2000년대 들어서는 피시(PC)가 각 가정의 미니텔을 밀어냈다. 프랑스는 현재 서유럽 국가 중에서 인터넷 콘텐츠가 유독 적고,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인터넷기업이 드문 나라가 됐다.

올들어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의 휴대전화 판매는 괄목할 실적을 과시하고 있다. 노키아나 모토롤라, 소니-에릭슨 같은 경쟁업체들의 부진과는 대조적이다. 단말기 제조회사의 이런 성공과는 달리 국내 이동통신산업은 요즘 우울하다.

통신 선진국 대부분이 3세대 이동통신 환경으로 이전하면서 매출에서 데이터통화 매출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과 반대로 한국은 오히려 데이터 매출이 줄고 음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통사의 높은 요금과 폐쇄적인 무선인터넷 서비스 때문에 국내 이용자는 무선인터넷을 차단하고 있고, 결국 게임을 빼곤 모바일 콘텐츠의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지난 4월엔 한국 무선인터넷 표준 '위피'(wipi) 의무탑재가 사라져, 외국산 단말기가 일부 들어오고 있지만 각종 규제는 여전하다. 노키아의 내비게이터폰(6210s)는 지도 국외반출 금지 조항 때문에 내비게이션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로 도입됐다.

인터넷 분야에서 '독자 노선'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98~99%대에 이르는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와 익스플로러의 점유율 등 특정 업체의 독점적 구조는 액티브엑스만을 통한 공인인증서 발급 등 정책적으로 뒷받침되는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강화된 인터넷 통제 정책은 국제표준과 동떨어진 '한국적 인터넷'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를 비롯해 저작권 위반에 대한 3진아웃제, 사이버 모욕죄, 포털의 모니터링 의무화 등 선진국에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입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갈라파고스 현상은, 지리적 국경이 별 의미가 없는 인터넷 환경에서 국내 업계의 생존위기로 작용한다. 허진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한국의 인터넷업계도 점점 갈라파고스가 되어가는 듯하다"며 "더 큰 문제는 업계와 정부 모두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다는 인식을 못하고 여전히 '인터넷과 모바일강국'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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