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구냐?' '인증 받았냐?'고 제발 묻지 마세요

입력 2009. 9. 10. 12:19 수정 2009. 9. 1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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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최근 들어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은 특정 지역의 기술이 다른 곳과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온 현상을 일컫는다. 올해 7월 < 뉴욕타임스 > 가 '국내전용 기술'로 전락한 일본의 휴대폰 산업을 보도하면서 일본의 전문가 말을 인용한 것이 유행의 계기가 된 듯하다.

2008년 3월 < 파이낸셜타임스 > 도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언급하며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곤경에 처한 이유를 분석하면서 세계와 동떨어져 '나만의 방식'으로 발전해 온 미국 자동차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배기량 높은 대형자동차 중심의 성장구조가 대표적일 것이다.

한국적 맥락에서의 '갈라파고스 중후군'으로는 흔히 한국 웹의 폐쇄성, 규제중심주의, 국제표준 기술사용 거부 등이 거론된다. 이런 특이점 때문에 한국의 정보통신기술이 미국 자동차나 일본 휴대폰처럼 국제적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인터넷의 '특이성'은 미국과 일본이 겪는 '갈라파고스 증후군'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 휴대전화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품질과 기능, 디자인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국 시장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역시 1999년에 '아이모드'라는 혁명적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컴퓨터 기반 인터넷과 호환되지 않는 폐쇄성으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 모바일 기기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시장과 격리되어 발전한 탓에 국제경쟁력을 잃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기술의 국지적 진화를 '갈라파고스 증후군'으로 부르기도 한다.

ⓒ Sharp/Panasonic/NEC

한국의 인터넷 : '강요된 특이성'

진화론의 주창자인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 섬을 둘러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 섬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종들이 살고 있던 것이다. 다윈은 생물들이 그곳의 환경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분화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사실을 일반화해 진화생물학의 토대로 삼는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는 '갈라파고스론' 역시 '사회적 환경에 따른 진화'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여기서 '환경에 따른'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자동차가 기름을 길에 뿌리고 다니는 대형차 위주로 발전한 것은 싼 휘발유와 가족 중심의 여가생활, 그리고 업무와 주거가 분리된 도시구조 속에서 생겨난 요구 때문이지,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다. ('강함'에 대한 미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정도를 추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국의 인터넷 특이성은 한국적 환경에 따라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의해 사실상 강요된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늦은 컴퓨터 보급'과 '너무 앞서간 휴대폰 기술'의 결합으로 빚어진 결과였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도 컴퓨터가 가정에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컴퓨터는 사무용'이라는 통념도 있었지만, 소비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유행하기 시작한 문서작성 전용기에 매료된 탓도 컸다. 이런 환경에서 유선 인터넷 보급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부터 '인터넷 가입자'가 폭등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1999년 초에 시작된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 '아이모드(i-Mode)' 덕분이었다. 이미 많은 일본인들이 휴대전화를 쓰고 있었으니, 친숙한 기계를 통해서 '이메일'도 보내고, 기차시간도 확인하고, 좋아하는 식당의 쿠폰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 인기를 끌 만했다.

일본인들은 이미 10년 전에 '3세대(3G) 이동통신'을 도입한 셈이다. 그러나 불행히 '휴대전화를 이용한 인터넷'이라는 개념은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울 만큼 너무 앞선 기술이었다. 비록 문자 위주의 정보서비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일본의 무선 인터넷 기술이 기존의 웹과 호환이 안 되는 '폐쇄구조'를 지녔다는 점이다. 컴퓨터를 건너뛰어 휴대전화 중심으로 발전한 인터넷 서비스가 컴퓨터 기반 인터넷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일본 카시오가 내놓은 휴대전화로, 고해상도 광각 카메라와 촬영시 손흔들림 방지기능이 있다. 일본 휴대전화는 카메라와 텔레비전 수신기능은 물론, 방수, 지문인식, 얼굴인식 기능 등 다양한 최신 부가기능이 장착되어 있지만, 빈곤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 Casio

아이모드와 소니의 현재, 네이버와 삼성의 미래

비록 아이모드는 야심차게 진출한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모두 철수하는 실패를 맛봤지만, 일본 단말기 제조사나 서비스 업체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1억이 넘는 일본만 해도 만만찮은 수익이 보장되는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제조업체는 이미 오랫동안 고질적 '하드웨어 마인드'로 비판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큰 탈 없이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카메라,' '텔레비전,' '얼굴인식'처럼 휴대전화 기능을 하나씩 늘려가는 것만으로 새 고객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고, 장기침체의 늪이 깊어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 뉴욕타임스 > 가 7월 20일자 기사에서 인용했듯, 이제 일본의 휴대전화 업체는 '외국에 진출하든지, 아니면 사업을 접든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문제는 겨우 눈을 돌리기 시작한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이미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라는 점이다.

포털 서비스 등 한국 인터넷 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상황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일본 휴대전화 업계와 비슷하다. 국내시장만으로도 그럭저럭 성장을 해왔다는 점에서 말이다. 외형적으로는 삼성과 엘지 등 하드웨어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유례없이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성은 주식총액 면에서 이미 2002년에 소니를 추월했으며, 현재 인텔을 바짝 쫓고 있다. 삼성은 세계 최대의 액정텔레비전 생산업체며, 휴대전화로는 굳건히 세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엘지는 액정텔레비전 생산에서 세계 2위인 소니를 위협하고 있고, 휴대전화로는 삼성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들이 발 벗고 나서서 전해온 소식이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언론이 잘 모르거나 전하지 않는 소식은 한국 업체들이 안으로부터 병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과 엘지의 액정 텔레비전 판매량은 늘고 있지만, 수익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텔레비전 같은 하드웨어의 특징은 기술이 빠르게 평준화된다는 점이고, 이로 인해 상품차별화가 가격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정확히 한국 삼성이 일본 소니를 그처럼 짧은 시간에 따라잡은 이유고, 중국 하이어가 이토록 빨리 삼성을 추격할 수 있는 이유다.

애플과 다른 휴대폰 업체들의 영업 이익률 비교한 도표. 애플에 비해 매출은 몇 배나 높지만, 삼성과 엘지 두 회사의 휴대폰 영업이익을 모두 합해도 단일모델 아이폰 하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하드웨어에 기반한 기술격차는 쉽게 좁혀지며, 이로 인해 수익률도 쉽게 악화된다.

ⓒ iSmashPhone

판매율 2위의 저조한 수익률... 이미 시작된 위기

더 심각한 문제는 수익률 악화가 한국 업체가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춘 모바일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삼성과 엘지의 경우 매출은 높지만, 애플, 리서치인모션(RIM), 노키아에 비해 영업이익은 현저히 떨어진다. 한국의 두 기업은 미국의 애플이나 캐나다의 리서치인모션보다 훨씬 많은 단말기를 팔지만, 벌어들이는 돈은 훨씬 적다.

예컨대 < 아이스매시폰 > 이 지난 8월 추산한 영업이익률을 보면, 애플 40%, 리서치인모션, 20.7%, 노키아 11.3%인데 반해, 삼성은 10.5%, 엘지는 9.1%였다. 이 때문에 삼성과 엘지는 애플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올리고도 영업이익은 애플에 비해 삼성이 1.5배 이상, 엘지는 3배 이상 적다.

여기서 이윤이 높은 회사일수록 '스마트폰,' 즉 소프트웨어 중심의 단말기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삼성과 엘지도 스마트폰을 세계시장에 내놓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업체들의 스마트폰이 별로 '스마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기의 흐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동했지만, 한국의 업체들은 기껏해야 메모리를 더하고, 카메라와 스크린의 해상도를 높이는 '하드웨어적' 방식으로 대응했을 뿐이다. 사실 뾰족한 수도 없다. 인터넷은 모바일 소프트웨어의 중추가 됐지만, 한국의 인터넷은 모바일 기기에 동력을 공급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거래인증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만을 지원한다. 다른 웹브라우저를 쓰는 사용자들은 온라인 거래는 물론, 단순히 웹사이트를 둘러보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구글 크롬은 미국은행의 온라인 뱅킹을 문제 없이 해내지만, 한국의 은행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사용할 수 없다'는 게시문이 뜬다. 위로부터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 신한/국민/우리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한국에서는 액티브엑스(ActiveX)를 지원하는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가 아니면 은행 거래는커녕, 온라인 상점에서 칫솔 하나도 주문할 수가 없다. 이메일 계정을 만들거나 포털 사이트에 의견 하나 쓰려 해도 성별과 생년월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원시적 신원체계인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개인의 100여 가지 치명적인 신상 및 행적 정보를 관리하는 그 무시무시한 번호를 말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포털 사이트에 가입한다고 하자. '필수항목'으로 다음과 같은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외국인등록번호 또는 여권번호(외국인에 한함), 아이디, 비밀번호, 본인확인문답

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전화로 본인인증 확인을 거쳐야 한다. 외국 소비자가 무슨 대단한 서비스를 받는다고 이런 귀찮은 과정을 거치겠는가? 구글이나 야후 같은 곳에서는 '본인확인'은커녕, 실명도 쓰지 않고 계정을 원하는 수만큼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한국 인터넷은 국내용일 뿐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적 환경에 알맞게 진화해서? 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신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공기관 사이트 및 특정수 이상이 방문하는 웹사이트에 글을 남기려면 반드시 '본인확인'을 하게 되어 있다.

모바일 인터넷과의 호환은커녕, 자신이 고른 웹브라우저도 쓸 수 없게 만든 전자금융거래 공인 인증서 역시 (법적 근거도 모호한) '전자금융감독규정'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한국 공인 인증서 발급에 사용되는 보안체계는 10년 전, 즉 지난 세기에 만들어진 낙후된 기술에 기초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는 편리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낡은 인증기술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공인인증기술은 불편하고 위험한 액티브엑스(ActiveX)에 기반해 있다.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보안문제로 인해 액티브엑스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고, 최신 웹브라우저 역시 이 기술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만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 우리은행

한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21세기 '인터넷 강국'의 '공인인증서'에 20세기 기술이 쓰일 수 있으며, 언론탄압으로 악명 높은 중국정부도 시행하지 못하는 '인터넷 실명제'가 (현 대통령 말을 빌리면) '민주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은' 나라에서 강요될 수 있는지 말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정부가 본인확인 없이는 외국인조차 회원으로 받지 못하게 한 '비즈니스 언프렌들리' 법 규정을 고수하고 있는 현실은 또 어떤가.

구체적으로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지만, 핵심 두 가지를 말하면 이렇다. 첫째는, 한국이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이 '지나치게 효율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놀라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이 자본주의가 아니라니. 게다가 '효율적인' 사회라니.

한국의 정치권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한 단어로 되어있지만, 사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별 상관이 없는 별개의 개념이다. 한국 정부가 말하는 자유주의란 경제개념으로,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에서 자동으로 결정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자본주의'란 말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 이래로 현재까지 한국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정치경제학 교수인 앨리스 암스덴은 저서 < 아시아의 다음 거인 > 에서 한국의 산업화를 이해하는 열쇠로 "시장에서 가격이 잘 못 결정되도록 만든" 정부의 개입을 꼽는다. 다시 말해, 가격이 시장기제를 통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한국정부 입맛에 맞게 조절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기 어려운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해 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정부주도 산업화 정책 역시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국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답습되는 '5개년 경제계획'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억하는가? 'MB 물가지수,' '통신요금 인하,' '향후 5년간 189조 원 IT투자,' "국책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19억 지원 받는 < 괴물2 > 등. 물론 22조 원에 이르는 국가주도의 대규모 토목공사나, 경제사범으로 구속된 기업인들을 '투자 많이 하라'며 특사로 풀어주는 독특한 법의식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어느 정부보다 조직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대규모 계획경제를 주도하는 정부가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말한다는 점이다. 정부개입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오랫동안 의지해 온 낡은 개입방식이 현재와 미래의 경제환경에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실효성도 없는 '통신요금 인하'를 강제하면서도, 통신업체들의 독과점적 지위는 굳건히 보호해주고 있으며, 이 담합적 수입구조를 위협할 수 있는 아이폰 등의 신기술을 이런 저런 법적 이유를 대며 막아주고 있다. 한국의 계획경제구조는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통치자의 편익을 위해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국의 국가주도 대규모 투자는 예외 없이 세 가지 특성을 갖는다. '몰아주기,' '단기성과 집착,' 그리고 '밀어붙이기'. 시티폰, 피시에스(PCS),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줄기세포, 와이브로(WiBro)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시행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재앙이었다. (물론 당시 정부기관과 국책연구소는 어김없이 수십조의 '경제효과'와 수만의 '고용창출'을 예언했었다.) 이 모든 실패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반민주적 효율주의'다.

와이브로의 장밋빛 미래를 '받아쓰는' 한국의 언론. 정부주도로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한 이 기술은 시티폰과 같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한국언론의 고질적인 비전문성과 비판능력 결여는 정부의 비민주적 행정과 결합하여 재앙적 결과를 낳곤 한다.

ⓒ 강인규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다

민주주의는 대단히 비효율적 제도다. 몇 사람이 결정해서 밀어붙이면 될 일을, 공청회를 열고, 민의를 수렴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보고하고 평가받아야 하니 말이다.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군대다. 군대식 '명령체계'로 운영되는 한국 정부는 효율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시켜도 좋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한국 인터넷이 하나의 운영체제, 하나의 웹브라우저, 단일화된 '공인 인증' 제도를 지원하게 된 것 역시 '효율성'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터넷 본인확인제를 통해 개인의 발언을 통제하려는 것도 한국식 효율주의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고려대 법대의 김기창 교수가 저서 <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 > 에서 지적했듯, 본인확인제는 '본인확인'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남의 주민등록증번호와 이름만 손에 넣으면 누구라도 '본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본인확인제는 인터넷상의 신분위조를 부추기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유는 인터넷 실명제가 애초부터 '본인확인'을 진짜로 철저히 하여 악의적 공격자를 가려내고 그자들의 체포나 처벌을 쉽게 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다수의 시민들에게 막연히 겁을 주고,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의견표명을 '전반적으로'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 김기창, <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 > 120쪽.

한국정부는 '효율적 집행'을 위해 정책관련 공청회에 반대자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하고,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결정사항을 비밀에 붙이기도 한다. ('국론분열'은 한국정치의 왕조적 특성을 계승하는 독특한 언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특정 사안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가 결정한 내용을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나라를 '파시스트 국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비민주적 효율이 성공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리눅스, 오페라 등 현재 세계를 휩쓰는 신기술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 보라.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가장 발달된 민주적 소통양식, 다시 말해 매우 비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기반 최신 기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한다. 관료 몇 명이 밀실에서 모여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방식은 '효율적 실패'만을 낳을 뿐이다.

본인확인제와 실명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억압적이고 제도다. 이 정책은 중요한 개인정보가 담긴 주민등록번호를 일상적으로 입력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아이디 도난과 신장정보 유출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진은 한국의 주요포털이 외국인 가입자에게 요구하는 전화인증 안내문.

ⓒ Naver

비효율이 성공하는 시대

관리들의 밀실행정과 규제정책이 위험한 이유는 이들이 꼭 신기술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물론 많은 경우 그렇지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는 국민 개개인이 곧 기술과 '콘텐츠'의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것은 신기술의 발전방향을 놓치는 것이며, 이들의 입을 막는 것은 곧 기술과 콘텐츠의 발전을 막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제품으로 만든 것은, 소프트웨어의 확장 가능성 못지않게 모든 이에게 열린 '앱스토어'다. 이곳은 청소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용자들이 창의력과 재치를 발휘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제 2의 인터넷'을 구성하고 있는 페이스북에 풍요로운 정보를 채워 넣는 것 또한 일반 사용자들이 하는 일이다. 이 제품과 서비스들은 하나같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부러운가? 방법은 의외로 쉽다. 첫째 해야 할 일은 본인확인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인 동시에 인터넷 업체들이 한국 밖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둘째는 컴퓨터, 모바일 기기, 그리고 웹브라우저의 종류와 상관없이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인터넷이 특정 컴퓨터 기종이나 소프트웨어에 갇히지 않고 국제적 경쟁력과 다양성을 갖추게 하는 기본요건이다. 낡은 액티브엑스 기반의 인증 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세 번째는 '경쟁'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예컨대 한국 통신업체간에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독과점 체제를 깨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초등학생마저 자살로 몰아가는 '국내용 교육경쟁'은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미래의 국가경쟁력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글과 애플이 보여주었듯, 이제 경쟁력의 원동력은 창의력이지 줄 세우기식 암기교육이 아니다. 이제 '어떻게 공부시킬까'보다 '어떻게 놀리며 창의력을 길러줄까'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이 부분은 이어지는 기사 '명텐도는 왜 닌텐도가 될 수 없는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 오마이 블로그][☞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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