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센진" 놀림받던 소년, 日 데이터를 부산으로 대피시키다

도쿄=김희섭 기자 fireman@chosun.com 2011. 5. 3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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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KT 이석채, 日 데이터 센터 부산 근교에 설립

"저는 일본 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국적도 일본이지만 제 조상과 부모님은 한국 혈통입니다. 16세 이후에는 미국 으로 건너가 대학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도 있습니다."

30일 오후 1시 일본 도쿄 의 베르사르 이벤트홀.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연단에 서서 차분하고 나직한 일본어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는 사람들에게 '라이프 라인(life line·생명줄)'을 제공하는 공익적(公益的) 일을 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진정으로 돕고 싶다"고 말했다. 자선단체 관계자 같은 말을 한 이 사람은 재일교포 기업인 손정의 (孫正義·일본명 손마사요시·54)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다. 손 회장은 일본 최대의 인터넷 포털 야후재팬을 비롯해 초고속인터넷·이동통신 등으로 사업분야를 확장해온 세계 IT업계의 '거인(巨人)'이다.

그는 이날 이석채 (李錫采·66) KT 회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합작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두 회사가 총 750억원(KT 51%, 소프트뱅크 49%)을 투자해 오는 10월까지 부산 근교에 인터넷 데이터센터(IDC)를 세우고 일본 기업 전용으로 서비스한다는 것이다. IDC는 기업 전산망에 필요한 서버컴퓨터를 임대·관리해주는 곳으로, IT산업의 기반시설이다.

소프트뱅크는 일본 기업을 유치하고, KT는 데이터센터 운영을 맡는다. 이 데이터센터는 서버컴퓨터 1만대를 운영할 수 있는 규모다.

이번 합작사업은 일본 IT업계의 '구루(최고전문가)'로 꼽히는 손정의 회장과 한국에 스마트폰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석채 회장이 의기투합해 성사됐다. 이 회장이 먼저 한 달여 전 "일본 대지진으로 기업들도 힘들 텐데 우리가 도울 일이 없겠느냐"는 의견을 전달했다. 손 회장은 "기업들의 전산시설이 많이 파괴됐다. 일본 기업의 서버컴퓨터를 한국에 놓고 관리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통신 산업의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이석채 회장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흔쾌히 동의했고 이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기업의 중요 데이터를 보관하는 서버컴퓨터를 외국에 두는 것은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손 회장은 "일본 기업들이 지금까지는 '본사 내에 서버를 두고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건물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 되지만 전산시스템이 붕괴되면 사업 자체가 복구불능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보다 안전한 곳에 데이터를 보관하려는 욕구가 커졌다는 것이다. KT와 소프트뱅크의 합작으로 일본의 주요 데이터가 한국에서 저장되고 관리되는 것이다.

손 회장은 탁월한 사업가다. 경영철학의 핵심이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 적 '조센진'이라고 놀리는 일본 아이들에게 돌멩이를 맞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 통쾌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견뎠다고 한다. 대학 졸업 직후인 24세에 컴퓨터 유통사업을 시작한 이래 초고속인터넷 요금을 기존 업체의 반값에 제공하거나, 애플 아이폰의 독점 공급권을 따내는 등 늘 시장에 돌풍을 일으켜왔다.

이날 합작사업 발표회장에서도 그의 승부사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손 회장은 "데이터센터 이용료를 일본의 절반으로 낮추겠다"며 '가격파괴'를 선언했다. 24시간·365일 동안 일본 고객을 응대하는 전용 콜센터를 운영하겠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정규 업무시간 외에는 고객서비스를 중단하는 일본 업계에서는 파격적인 방안이다. 일본과 한국을 기반으로 해 아시아 전체의 IT산업을 주도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석채 회장 야망의 크기도 그에 못지않다. 이번 협력사업을 먼저 제안한 것도 이 회장 쪽이다. 이 회장은 "합작사업이 잘될 경우 한국은 글로벌 기업들의 서버컴퓨터를 유치하는 데이터센터 허브(중심축)로 성장할 수 있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를 가진 나라여서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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