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데이터, 보통사람 잡는다

김희섭 기자 fireman@chosun.com 2011. 4.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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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스마트폰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한 A씨는 5만5000원을 내고 지난 3월 한 달간 480GB(기가바이트)의 무선인터넷을 사용했다. DVD 영화 1편의 용량이 보통 2GB인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폰으로 영화 240편을 본 셈이다.

반면 B씨는 지난 3월 0.2GB(200메가바이트)의 데이터만 쓰고도 A씨와 똑같은 요금을 냈다. 갑자기 무선인터넷 속도가 떨어지고 음성통화가 중간에 끊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경우 A씨처럼 엄청난 데이터를 사용하는 사람이 근처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정 지역에서 한정된 통신망을 몇 사람이 독점하면 애꿎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용량이 줄어들어 통신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B씨는 "데이터는 다른 사람이 많이 썼는데, 왜 내가 요금을 똑같이 내면서 피해까지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용자 1%가 데이터 통신량 40% 차지… 독점현상 심각

정상적이라면 A씨는 무선인터넷 요금을 960만원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월 5만5000원 이상을 내면 무선인터넷을 아무리 많이 써도 추가 요금을 받지 않는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바람에 A씨는 요금 부담이 없다.

데이터를 많이 쓰는 사용자(헤비유저)가 통신망을 독점하는 실태는 심각하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상위 1%가 전체 데이터 사용량의 39%, 상위 10%가 87%를 차지한다. 이들이 거대한 '파이(데이터)'를 다 먹고 나면 일반 사용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쥐꼬리만한 13%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데이터를 많이 쓰는 사람이나 적게 쓰는 사람이나 요금은 똑같다. 소량 사용자가 헤비유저의 요금을 대신 부담하는 셈이다. 통신선만 더 깔면 얼마든지 용량을 늘릴 수 있는 유선 인터넷과 달리, 무선 인터넷은 주파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용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이석채 KT 회장은 "일반 사용자들이 데이터를 원활하게 쓸 수 있을 정도로 통신망을 설치했지만 소수의 헤비유저가 예상보다 10배, 100배 많은 데이터를 쓰는 바람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음성통화는 아무리 많이 써도 감당할 수 있지만 무선 데이터는 통신망 운영에 큰 부담이 된다. 스마트폰에서 무선인터넷 속도가 느려지고 음성통화까지 자주 끊기는 이유도 데이터 사용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통신사 제 발등 찍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스마트폰 요금제는 원래 데이터 사용량에 상한선이 있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작년 8월 월 5만5000원 이상 요금제(음성통화료 포함)에 가입한 사람을 대상으로 데이터는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주기로 했다. 유선인터넷처럼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주고받아도 추가요금이 없는 서비스다. KT가 독점 공급하던 아이폰 열풍에 맞서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당시 SK텔레콤은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는 무선데이터 요금제의 '완결판'"이라며 "앞으로 우리 스마트폰 고객은 일부러 와이파이(무선랜) 지역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자랑했다.

SK텔레콤이 공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자 KT와 LG유플러스도 뒤따라갔다. 기존 가입자들이 SK텔레콤으로 옮겨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가 통신망에 큰 부담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독배(毒杯)'를 마셨다.

통신사들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 작년 8월 무제한 요금제 도입 전까지 월평균 13% 증가하던 데이터 사용량은 이후 평균 31%씩 늘어났다. 게다가 스마트폰 사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통신망에 과부하가 걸리게 됐다. 1년 만에 데이터 사용량은 10배가 늘었다. 스마트폰 가입자 증가속도보다 더 빠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통신사들은 뒤늦게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없애려고 하고 있다. 월간 데이터 사용한도를 정하고 그 이상을 쓰는 사람에게는 추가요금을 물리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하기는 쉽지 않다. 사용자들은 "요금 걱정 말고 데이터를 마음껏 쓰라고 떠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사용량을 제한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과거에 유선 인터넷도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매기는 종량제를 추진했으나 사용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통신사가 과다 사용자에게 요금을 더 물리고 일반 이용자 대부분에게 데이터 요금을 깎아준다면 개편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통신사들이 평균 이하 사용자의 요금을 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과다 사용자에게 요금을 더 받을 생각만 하고 있다. 김정삼 방통위 주파수정책과장은 "시장상황이나 데이터 통계를 검증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신사들 요구대로 무제한 요금제를 없애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미국 통신사들은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하는 추세다. AT&T는 작년 6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없앴고, 버라이즌도 뒤따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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