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 강요하는 SW정책

입력 2010. 2. 8. 08:50 수정 2010. 2. 8. 10: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스마트폰 전자결제 서비스 공인인증 벽 막혀 잇단 차단

인터넷 실명제 등 국내 규제 외국과 기술경쟁 족쇄로

정부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범정부 대책을 내놓고 세계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국내 소프트웨어·벤처업계는 '국제적 표준'에 역행하는 각종 규제로 기껏 개발한 서비스가 사장되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일찌감치 스마트폰 전용 뱅킹시스템을 개발해온 하나은행은 '충분한 보안 수준'을 확보했다는 판단에 따라 아이폰 국내 출시와 함께 아이폰용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금융당국 요구로 이를 개편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금융감독원이 악성코드 예방대책과 전자서명 의무화 등 보안 수준의 강화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과 1월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예스24는 아이폰에서 직접 주문과 동시에 신용카드 결제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한달도 못 돼 이를 중단했다. 공인인증서 없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결제자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을 썼는데, 신용카드사와 금융당국의 '보안 우려'에 막혀 서비스가 차단됐다.

이는 업체별로 다양한 결제방식이 채택돼 서비스 경쟁과 기술 경쟁이 벌어지는 외국과 달리, 국내 금융거래에서는 공인인증서를 기반으로 하며 공인인증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통해서만 발급되고 있어 생겨나는 문제다. 이런 문제는 엠에스가 새 운영체제나 브라우저를 내놓거나 아이폰과 같은 새로운 기기가 등장하면 한국에선 늘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당국이 '기술표준' 제시 대신 특정 '기술방식'을 강제하는 탓이다.

'아이폰·아이패드 등장에서 보듯 세계 정보기술 산업의 경쟁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정부의 진단이 무색하게 국내에서는 아이폰용으로 출시된 각종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의 이용은 차단당하는 사례가 많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4일 소프트웨어 산업을 범정부 차원에서 육성한다는 방안을 내놓으며 "아이폰에서 보듯 제품 경쟁력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이명박 대통령은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 사례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와야 한다"며 "정부가 (소프트웨어산업 분야에) 파격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진흥 방침과 시장 현실과의 괴리는 공인 인증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서비스가 중심인 인터넷벤처 업계에선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인터넷 실명제, 포털의 모니터링 의무 같은 규제가 대표적이다.

국내 기업에만 적용되는 다양한 인터넷 규제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나 벤처기업의 서비스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인터넷 상거래 업체도 마찬가지다.

지마켓은 2008년 11월 싱가포르 시장에 진출한 뒤 국내와 전혀 다른 환경에 놀라, 국내에도 글로벌 환경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려 했지만 익스플로러 기반의 공인인증서에 막혀 방법이 없었다. 결국 '카드 수기결제'라는 방식으로 편법 모바일 결제를 도입했으나 최근 마찬가지로 차단됐다.

인터넷 실명제 등은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사회관계망 서비스 시장 강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뿐 아니라 세계적 서비스업체의 국내 진출 또한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구글의 유튜브다. 구글은 '국제적 관행'과 어긋나는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해 한국 국적 이용자의 유튜브 콘텐츠 등록을 차단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세계적 인기 서비스는 국내 진출이나 한글 검색 등 국내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트위터와 같은 서비스는 전세계 누구나 동일한 환경에서 이용할 수 있지만 국내 인터넷 환경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어내 세계인이 이용하게 하기 힘들다"며 "실명제나 모니터링 의무화 등은 한국에 기반을 둔 회사는 한국 외에서는 사업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불합리한 규제들을 정부가 먼저 제거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프트웨어 진흥을 위해서는 전자금융 거래에서 특정 기술을 강제하는 규정부터 없애야 한다"며 "개방된 환경에서 표준 준수를 독려하고 여러 주체들이 다양한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