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블랙홀' 생성될까
[한겨레] '빅뱅 머신' LHC의 도전
우주의 수수게끼를 푼다3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나 강해 아무것도 빠져나올 수 없는 시공간을 말한다. 천문학에서 블랙홀은 별이 거대 중력 때문에 수축할 때 만들어진다고 보는데, 실제 블랙홀 후보가 되는 여러 천체들이 100개 넘게 관측된 바 있다.
물리학자들은 곧 가동될 유럽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통해 원자 크기의 1억분의 1보다 작은 '미니 블랙홀'이 지구상에서 생성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강입자가속기에선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가 거의 빛의 속도로 가속하다가 반대 방향으로 똑같이 가속되어 날아오는 다른 양성자와 충돌하는데, 이때 양성자를 이루고 있는 소립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 충분히 강해지면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 있다.
얼마나 '충분히' 강해져야 할까? 기존 이론에 따르면, 강한 중력을 만들기 위해선 이른바 '플랑크 에너지'라 하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예측된다. 그 에너지는 양성자 질량의 1억배의 1억배의 1천배(10의 19승)에 이르는 엄청난 에너지다.
그런데 4차원 시공간에 더해 여분 차원이 존재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분 차원이 존재한다면(<한겨레> 7월24일 15면), 중력은 본질적으로 고차원의 속성을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관측하는 중력은 진짜 중력의 전체가 아니라 여분 차원의 방향으로 빠져나가고 남아 '약해진 중력'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만약 이번 가속기 실험에서 극미세계에서의 중력의 본래 세기가 그대로 드러난다면? 기존의 예측과 달리 비교적 낮은 에너지로도 블랙홀이 충분히 생성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제기돼 학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큰 여분 차원 이론'이나 '크게 굽어진 (warped) 여분 차원 이론'에 따르면, 강한 중력을 드러내는 에너지의 규모는 양성자 질량의 대략 1천배에 해당한다. 강입자가속기가 도달하는 에너지가 양성자 질량의 대략 1만4천배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블랙홀 생성 가능성이 제기되자, 엉뚱하게도 일부 아마추어 물리학자들은 지구 전체가 미니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로 미국 하와이법원에 거대강입자가속기 가동 중단을 요청하는 소송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 블랙홀이 지구를 삼켜 버릴 가능성은 없다. 우선 지구 대기권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우주 입자들이 대기 중의 공기 분자와 충돌할 때에도 똑같이 미니 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지구는 수십 억년 이상 건재하다. 우리가 지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블랙홀은 이른바 '호킹 온도'라 불리는 온도를 지닌다는 사실이 1975년 스티븐 호킹 박사에 의해 밝혀졌는데, 이 온도는 '사건의 지평선'의 반지름이 작을수록 더욱 높아진다. 이에 따르면 크기가 매우 작은 미니 블랙홀의 온도는 엄청나게 높아 태양 표면온도의 1조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순식간에 많은 입자를 방출하고는 '증발'할 것이다. 미니 블랙홀에서 발산될 입자들은 고차원 시공간의 차원 개수와 구체적 모양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 줄 것이다.
박성찬 박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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