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해진 NHN의장 등 창업자들 왜 은둔하나?

류현정 기자 2013. 5. 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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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정말 기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미국을 가로질러 온가족을 로봇 콘퍼런스에 데리고 갔습니다. 연소자가 입장할 수 있냐없냐를 두고 한참이나 실랑이가 벌어진 끝에 어린 아들도 콘퍼런스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는데, 그게 바로 나였지요. "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구글 개발자 회의에 래리 페이지 구글 CEO가 깜짝 등장했다. 예고없는 구글 창업자의 등장에 6000여명의 개발자들은 환호했다.

여전히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잃지 않은 페이지였지만 목소리만은 정말 특이한 저음이었다.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그의 양쪽 성대(聲帶)가 마비된 까닭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잠깐 잃은 탓에 지난해 구글 개발자 회의에 빠져야 했고 실적 발표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마치 잠에서 덜 깨어나 졸려 죽겠다는 듯한 목소리에 귓속말하듯 부정확한 음색이었지만 그의 메시지는 폭발적이었다. 페이지는 어릴 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직 우리는 1%밖에 이루지 못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의 메시지를 들으니 거의 매년 애플 개발자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했던 고(故) 스티브 잡스의 울림이 생각난다. 2011년 6월 6일 직접 기조연설에 나선 그는 "5200석 티켓이 두 시간 만에 매진됐다"면서 "항상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감사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클라우드 기술이 바꿀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다. 당시에 잡스는 암(癌)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설파한 혁신에 대한 갈망은 텔레파시처럼 실리콘밸리를 넘어 미국 사회 전역을 감염시켰다. 월가의 파생상품 놀이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미국 경제가 다시 꿈틀대는 데는 펄펄 살아있는 창업가 정신과 문화가 끊김없이 이어지고 전파되는 덕분이다. 그래서 전 세계는 또다시 미국에 '넥스트 빅씽(next big thing·차세대 성장동력)'을 묻고 있다.

이제 우리 이야기다.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 중 하나인 네이버(NHN)도 매년 개발자 회의를 한다. NHN이 주최한 개발자회의 '데뷰(Deview)2012'엔 3000여명의 개발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올해 6회째를 맞는 데뷰에서 여태 단 한번도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의장의 꿈과 혁신에 관한 고민을 들을 기회는 없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백과사전을 읽기를 좋아해 검색 회사를 만든 이야기, 창업 후 자본가의 공격으로 연간 100억원 수익을 내는 알짜 기업이 코스닥 등록 심사에서 2번이나 미끄러진 이야기, 2011년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에 NHN재팬 직원 안전을 챙기기 위해 남모르게 애썼다는 이야기, 모바일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이유에 이르기까지 이해진 창업자도 공유해야 할 경험, 들려줘야 할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그는 '얼굴없는 의장'을 자임하고 있을 뿐이다.

이해진 의장 뿐만 아니다. 한국 게임과 인터넷 분야 창업가들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은둔자(隱遁者)' 생활이 유행처럼 돼 있다. 한국 언론인들의 취재가 유별나서인지, 한국 정부가 성공한 기업가들을 각종 행사에서 오가라며 귀찮게 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개발자들이 모이는 개발자회의에서조차 창업가의 생생한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성공한 창업가가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은 왜 우리에겐 실리콘밸리 같은 환경이 없는지 만큼이나 아쉬운 일이다.

우리 사회 귀감이 될만한 창업가를 두고 언제까지 실리콘밸리 창업가의 입에만 귀를 기울여야 할까. 한국에 창업가 정신을 조금이라도 다시 불러일으키려면 은둔만 하는 창업 선배들이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것이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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