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의 미래세계] (4) 현실과 가상의 만남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 2016. 5. 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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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멀리 있던 사람이 눈앞에 맞이하라, 환상의 세계
ㆍ무엇이 진짜 현실인가 경계하라, 혼돈의 세계

현실 배경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증강현실’ 기술은 순간이동 등 이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사진은 증강현실 안경을 쓰고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동하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 <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의 한 장면. 매그놀리아 픽처스 제공

구글이 투자한 매직리프(MagicLeap)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눈으로 보는 세상에 가상현실을 접목해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가상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놀라운 데모를 연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3월25일 소개한 홀로포테이션(Holoportation, 홀로그램으로 순간이동을 했다는 의미)은 ‘사건’이었다. 홀로렌즈(HoloLens)를 이용해 마치 원격지에 있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이 기술은 영화 <스타트렉>에서 보았던 순간이동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떠올려 본다.

“거기 지금 한밤중일 텐데. 괜찮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민서였다. “에이, 그렇다고 선우 결혼에 빠질 수 있나. 그런데 자다 깨서 차려입느라 스타일이 좀 그렇다.” 성혼 선언문 낭독 뒤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계속 하품을 하던 민서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식장은 하객이 하도 많아 민서가 빠진 것은 티도 안 난다. 요즘 트렌드다. 홀로그램 통신을 통해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예식에 참석할 수 있다 보니 하객 1000명 정도는 기본이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연결하고, 인간의 감각 능력을 극대화하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이런 시나리오는 꿈이 아니다. 인간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라는 5가지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인간의 감각이 확장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센서는 카메라다. 컴퓨터나 마찬가지인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연결되다 보니 인간의 눈으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독특한 필터들을 이용해서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그뿐인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술을 이용할 경우 카메라에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에 설명이 붙거나 3차원의 가상 물체들이 동시에 보이는 다양한 혼합현실을 경험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포테이션 시연.

촉각과는 조금 다르지만 스마트폰에는 가속도 센서라는 것이 있다. 스마트폰을 흔들거나 기울이는 따위의 동작을 인식해서 여기에 어울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다. 주사위를 화면에 보이게 한 뒤에 흔들면 던진 것과 유사한 효과를 보인다거나, 스마트폰을 기울이면 자동으로 화면이 전환되는 것은 모두 이런 가속도 센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구현되지 않은 미각과 후각은 어떨까? 미각과 후각은 기본적으로 화학적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현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미각과 후각을 흉내낼 수 있는 화학센서들이 몇몇 개발되었기 때문에 액세서리 형태로 짠맛, 매운맛, 단맛 등을 느끼고, 그 정도를 수치화하는 센서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처럼 기술은 인간의 감각도 변화시킨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와 감각의 확대를 일으키는 혼합현실(Mixed Reality) 개념은 증강현실에서 출발했다. ‘현실을 증강한다’는 증강현실 기술은 1968년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가 발표한 논문을 시초로 꼽는다. 그의 논문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역사에서도 첫 번째 테이프를 끊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오늘날의 VR기기와 유사한 머리에 쓰는 HMD(Head-Mounted Display)를 이용한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당시의 컴퓨터 성능 문제로 매우 단순한 와이어 프레임 정도만 실시간으로 표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보다 현실적인 증강현실 기술은 1992년 톰 코델(Tom Caudell)이 ‘증강현실’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태동했다. 역시 HMD를 이용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가장 중요하게 취급했는데, 이를 응용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증강현실이 폭발적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휴대폰 같은 모바일 컴퓨팅 단말기의 성능과 웨어러블 컴퓨팅 환경이 상업화 가능성을 보인 최근의 일이다.

이반 서덜랜드가 개발한 최초의 HMD.

그렇다면, 증강현실의 정의는 무엇일까? 위키피디아는 “실세계와 컴퓨터가 생성해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결합해서 보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혼합현실이나 감각의 증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 다른 정의가 있다. 증강현실 컨소시엄(Augmented Reality Consortium)의 회장인 로버트 라이스(Robert Rice)는 이렇게 말한다. “증강현실은 현재 자신의 위치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또는 하고 싶은 일)의 맥락과 관련된 미디어가 자신의 현실(실체)을 증강하거나 더 낫게 보여주도록 하는 것이다.” 라이스의 정의에 따르면 증강현실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증강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 된다. 전통적인 정의가 전달 방식이나 3D 모델링, 사물의 인식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쳤다면, 이제는 현재 위치와 사용자가 하려는 동작 또는 의도 등을 모두 포괄한다.

6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

이처럼 감각과 능력을 증강시키는 기술을 잘 활용하게 된 인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1960년 맨프레드 클라인즈(Manfred Clynes)와 나단 클라인(Nathan Kline)은 <사이보그와 우주>라는 책에서 자체 조절이 가능한 인간-기계의 결합인 ‘사이보그’라는 용어를 썼다. 하지만 사이보그는 사실 로봇기술과의 관계가 더 밀접하기 때문에 증강현실이나 사용자 경험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급부상하는 개념이 증강휴먼(Augmented Human)이다. 증강휴먼이란 증강현실에서 육체적, 지적, 사회적 능력을 강화하거나 확장한 인간을 말한다. 인간의 오감을 능가하는 새로운 감각을 제공하는 다양한 기술들은 증강휴먼 기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에는 이미 인간의 오감을 능가하는 전혀 새로운 감각들이 들어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GPS라 불리는 위치센서다. 인간은 자신이 있는 위치가 지구상의 어디에 있는지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인공위성이 보내는 신호와 인터넷과 연결된 무선망 또는 무선전화망의 신호를 조합해서 현재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다. 버스카드나 지하철카드의 RFID 칩을 인식하는 것은 전기나 자기를 감지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스마트폰은 현재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위치, 전기, 자기 등을 느낄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이런 감각이 인간의 시각, 청각, 촉각 등과 연계되면 훨씬 많은 정보와 경험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위치센서를 통해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맛집 정보를 보여준다든지 하는 기술이 그런 경우다.

미래에 추가될 수 있는 감각과 증강휴먼에 대한 상상을 하는 데는 SF가 많은 도움이 된다. 필자가 어렸을 때 본 미드(미국드라마) 중에 최고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리 메이저스가 주연했던 <6백만불의 사나이>다.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은 우주선의 추락으로 생사의 위기를 맞는다. 그 상황에서 600만달러를 들여 한쪽 눈과 한쪽 팔, 양쪽 다리를 생체기계로 대체하게 된다. 다시 태어난 오스틴은 시속 60마일의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15미터를 점프할 수 있게 된다. 한쪽 눈은 20배로 확대되는 줌 기능과 적외선 탐지능력을 갖게 되고 한쪽 팔은 불도저의 파워를 넘어서는 몇 천 마력의 괴력을 발휘한다.

6백만불 사나이의 연인으로 등장한 <소머즈> 드라마도 있다. 그 역시 스카이 다이빙 사고로 사경을 헤매다가 500만달러를 들인 생체기계를 장착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가 드라마의 재미를 더했다. 제이미 소머즈는 오스틴과 달리 눈 대신에 귀를 생체기계로 대체해 인간이 들을 수 없는 한계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터무니없게 느껴졌던 스토리지만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카메라 센서 기능은 인간의 눈 이상으로 좋아지고 있다. 인공신경이 개발되어 사지가 마비된 환자의 욕창을 방지하는 용도로 실용화가 시작되었으며, 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칩도 개발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뇌파를 감지해 사지가 마비된 사람들이 손발을 대신해 사물을 조종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기술도 나오고 있다. 머지않아 영화에서처럼 머리에 뇌파조종기를 쓰고 스마트폰으로 원격지에 있는 물체를 조종하거나, 가상현실의 세계를 탐험하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간과해선 안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기본적으로 기기를 안경처럼 쓰고 빛을 눈에 투과시켜 영상을 봐야 한다. 그래서 시력의 안전성에 주의해야 한다. 지나치게 강한 빛을 망막에 오랫동안 비추면 시력저하나 이상한 것들이 보이는 현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적절한 임상실험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부작용으로 ‘사이버 멀미(Cybersickness)’가 나타날 수 있다.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기기를 오래 착용하면 멀미 증상이 나타나면서 메스꺼움과 구토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증상은 3D 영화나 TV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동물 실험에서는 가상현실 환경에서 뇌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소위 ‘먹통현상(brain shutdown)’이 발생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좀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콘텐츠에 의한 인지장애도 간과할 수 없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콘텐츠에 매혹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와 같이 가상현실 3D 콘텐츠가 증강현실의 형태로 현실과 섞여서 보이면 실제 사물에 대한 인지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막으려면 증강현실 또는 가상현실 장비를 착용하고 이동하거나,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를 하려고 할 때 경고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혼합현실과 증강휴먼은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가장 중요한 첨단기술이자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기술들이다. 이런 기술은 언제나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보급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파악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해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이 부각되도록 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정지훈



의공학자이자 미래학자, 정보기술(IT) 전문가, 융합지식인이다. 교수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인터넷과 IT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한다.<거의 모든 IT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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