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러더 시대'를 지나, 지금은 '빅 아더' 시대

심진용 기자 2015. 9. 2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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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인문학연구원 '디지털 시대의 사생활' 강연회국가·기업·자신에 의해 '자유의 요람'이 위협 감시의 형태로 변하면서서로가 서로를 감시 새로운 규약 만들어져야

미국 IT기업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설립자인 스콧 맥닐리는 1999년에 이미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사생활은 없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설정에 동의하는 순간 그가 지금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고스란히 노출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IT기업들은 가입자들의 사소한 정보를 긁어모아 ‘빅데이터’로 활용한다. 국가가 안보를 명목으로 시민들의 삶을 감시하기도 한다.

‘사생활의 종말’이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다. 맥닐리의 말처럼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연세대 인문학연구원이 프랑스문화원, 독일문화원과 함께 지난 18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디지털 시대의 사생활’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독일 SRH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울리케 아커만 교수와 프랑스 파리공과대학 안토니오 카실리 교수가 차례로 연단에 올랐다.

울리케 아커만 교수
아커만 교수는 “오랫동안 개인 자유의 요람으로 여겨졌던 사생활이 디지털 혁명 속에서 세 주체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번째는 국가, 두번째는 기업이다. NSA의 광범위한 도·감청이나 구글, 페이스북의 저인망 사용자 정보수집이 이에 해당한다. 세번째 주체는 다름 아닌 인터넷 사용자 자신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디를 방문했는지 등을 ‘셀카’에 담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전시한다.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국가 안보나 사용자 편의를 위해 어느 정도의 정보수집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안토니오 카실리 교수
카실리 교수는 “감시의 형태가 변하면서 사생활의 영역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국가가 중앙집중화된 형태로 시민을 감시했으나 오늘날에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포상금을 노린 다양한 형태의 ‘파파라치’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카실리 교수는 “조지 오웰이 말한 ‘빅브러더’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면서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빅아더(Big Other)’의 시대”라고 말했다.

두 교수가 내놓은 해법은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일정 부분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규범의 사례다. 인터넷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들도 활동 중이다. 미국의 전자사생활정보센터(EPIC)와 디지털민주주의센터(CDD)는 지난해 페이스북의 개인정보침해를 이유로 왓츠앱 인수·합병을 문제삼고 연방거래위원회(FTC)에 공식 항의했다. 한국의 현주소는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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