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빛과 그림자]下 비메모리, 실적부진·구조조정·특허공격 '삼중고'

설성인 기자 2014. 9. 2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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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해 미국에 이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처음으로 2위(시장조사기관 IHS)를 차지했다. 라이벌인 이웃나라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생산액의 75%를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의 활약 덕분에 가능했다. 반도체의 또다른 축인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는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이 5.8%로 5위에 그쳤다.

삼성전자(005930)의 시스템LSI 사업은 올 2분기에 이어 올 3분기에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올 3분기 삼성전자는 메모리에서 2조58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대신, 시스템LSI에서 44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전자는 올 6월부터 김기남 반도체총괄 사장에게 메모리와 시스템LSI를 지휘하게 하는 인사를 단행했지만, 아직 뚜렷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시스템LSI의 대표 제품으로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물량 감소가 컸다는 분석이다. 애플은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5S·5C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에 AP 생산을 맡겼지만, 이번 달 출시한 아이폰6·아이폰6 플러스의 AP인 'A8'은 대만 TSMC에 제조를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비메모리 산업을 이끄는 맏형 삼성전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내 비메모리 업계는 20년 만의 호황을 누리는 메모리와 달리 실적부진과 구조조정, 해외기업의 특허공격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 동부하이텍, 흑자 나자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

동부하이텍(000990)은 국내 유일의 파운드리(foundry) 전문 반도체회사다. 파운드리란 반도체 설계업체의 주문을 받아 생산을 대행해주는 업체를 말한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1997년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를 세웠고, 2001년 일본 도시바와 손잡고 비메모리 칩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동부하이텍은 계속 적자를 냈다. 2010년에는 3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 회사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동부하이텍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 올 상반기 11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연간 전체로도 흑자가 예상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격언을 실감하는 동부하이텍이지만, 동부그룹을 떠나 새 주인을 찾고 있다. 동부그룹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매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부하이텍 인수후보 중에는 중국 기업도 있어, 매각이 성사될 경우 비메모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한 중소 반도체회사 사장은 "한국 반도체산업을 위해 동부하이텍 같은 전문 파운드리는 꼭 있어야 한다"며 "단기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파운드리를 팔아치운다면 공들인 탑이 무너지는 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팹리스(fabless·공장이 없다는 뜻)로 불리는 중소 반도체설계 기업들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1년 SK텔레콤(017670)과 손잡고 합작사까지 세워 중국 진출을 추진했던 엠텍비젼은 올 3월 실적악화로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당한 뒤 현재는 법정관리를 받고 있다. TV에 들어가는 오디오 칩을 만드는 네오피델리티(101400)도 올 7월 창업자인 이덕수 대표가 티알인베스트먼트에 최대주주 자리를 넘겼다. 1999년에 설립된 오디오 칩 회사 펄서스테크놀러지는 어보브반도체(102120)에 개발 자산을 팔고 회사를 접었다.

◆ 특허공격 '무방비'…정부는 아직도 '국산화' 타령만

이달 초 미국 그래픽칩 회사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와 퀄컴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자사 그래픽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며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갤럭시S5는 물론 갤럭시노트4, 갤럭시노트 엣지 같은 최신폰의 미국 수입금지도 요청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와 퀄컴은 엔비디아로부터 라이선스를 얻지 않고 자신들의 제품에 기술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1년 초 인텔은 엔비디아와 매년 2억5000만달러(약 2600억원)씩 총 6년간 기술 사용료를 지불하는 계약을 맺었다. 삼성전자와 퀄컴 역시 특허협상을 통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엔비디아에 지급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회준 KAIST 교수는 "한국 시스템반도체는 특허전략이 전무하다"며 "메모리는 공정 특허가 관리되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 사업에는 비전이 없기에 특허대책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메모리에 이어 비메모리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수많은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선진국을 따라가는데 급급하고 국산화 추진 등의 정부 과제는 우리 반도체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5월 모바일 CPU(중앙처리장치) 코어 국산화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시스템반도체 국산화 정책의 일환이다.

한 국립대 교수는 "언제까지 정부가 수입대체를 논하며 예산을 낭비할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대만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기업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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