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3시간' 방학 특강에 갇힌 아이들

해달 2014. 7. 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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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웠던 기말고사 대비 기간이 마무리되고 있다. 시험 기간 내내 소진된 기운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가르치는 내가 이러할진대, 학생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학원에는 여름방학 특강이 기다리고 있다. 삶은 언제나 섭리의 자갈밭 어디쯤이라는데, 이쯤 되면 죽을 때까지 자갈밭만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우리 학생들, 다른 건 몰라도 인고의 가치 하나만은 잘 배우고 있다.

상상해본다. 계획 1.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한 당신 떠나라!'는 단체 문자를 보낸다. 하지만 이건 선동의 증거가 남으니까 취소. 계획 2. 적절한 휴식이 공부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학부모를 설득한다. 이 역시 학부모의 교육철학과 부딪칠 수 있으니 취소. 계획 3. 특강의 허구성에 대해 원장님과 다퉈 담판을 짓는다. 너, 학원 그만두고 싶니?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계획 4. 여름방학 특강을 격렬하게 준비한다.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왕 하는 것 최대한 도움될 수 있는 방향으로. 특강이 끝나면 또 중간고사 대비가 시작될 거라는 암담한 전망은 잠시 접어둔다.

하지만 정말 주변 상황 때문에 특강을 하는 것일까? 특강에 대해 요구하는 학부모가 없어도, 방학 기간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겠다는 학생들이 없어도, 과연 강사들은 특강을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라든가 '역전의 마지막 기회'라면서 특강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학생들이 놀고 싶어하는 이 시기에, 아이들과 같이 넋을 놓고 있다가는 매주 줄어드는 수강생 숫자에 초조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방학 특강이 언제부터 시작된 전통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역사에 걸맞은 '특별 강의'가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3년간 차근차근 배우면 될 지식들 중 그럴듯해 보이는 특정 부분을 도려내 특강으로 편성한다. 수요가 생길 것 같을 때 예정에 없던 수업을 급조하는 경우도 많다. 이 수업의 의미라고는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이 학원에 오는 시간으로 바뀌는 것 정도다. '특별한' 수업이 아니라 방학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춰진 값비싼 수업인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학생들은 지금 들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함정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수업은 '일단 들어두면 다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합리화된 채 강행된다.

ⓒ박해성 그림

많은 강사들은 말한다. '이번 방학이 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지만, 따라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고. 하지만 꾸준한 공부가 아니면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사가 모를 리 없다. 단지 돈벌이를 위해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학원에 학생들은 휘둘린다.

"방학이니까 놀아"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

며칠 전, '수능이 500일도 안 남았다'며 초조해하는 고2 학생들에게 '엄청 많이 남았다'며 농담을 던졌더니 이런 반응들이 돌아왔다. "학기 중엔 내신 공부하니까 방학 때 따라잡아야 하는데, 방학 이제 세 번 남았잖아요. 전 끝났어요." "선생님은 또 방학 때 국어 하라고 그러시겠죠, 수학에서는 수학 하라고 그러고, 영어도 하라 그럴 거고, 방학 때 더 바빠요." "기말고사 끝났는데 놀 수가 없어요, 이제 과학도 해야 해요. 방학 내내 학원에 13시간씩 있어요. 완전 끔찍해요."

학생들의 그런 반응을 보며 차마 "방학이니까 놀아"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다 하는데 혼자 안 하면 불안한 심정도 이해되고, 함부로 쉬라고 말했다가 저 아이의 인생을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나의 불안도 있기 때문이다. 특강이 허구인 것을 알고 있지만 '들을 필요 없다'는 한마디를 하기가 참 어렵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뭐라도 하면 노는 것보다는 낫겠지'라는 강력한 방어막에 자꾸 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방학 기간에 무료 특강을 진행하겠다는 학원도 종종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양심 있는 학원인 척 행동하는 부류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역시 수강생 수를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 수업임은 마찬가지다. 특강의 문제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요점은 방학 특강이 과연 학생들에게 필요하냐는 것이다. 학교가 공식적으로 쉬는 기간을 굳이 공부로 채워넣어야 한다면, 그렇게 3년을 채워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이 교육과정이 애초에 아이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일 텐데 말이다.

해달 (필명·목동 입시학원 강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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