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그렇다고 믿고 고고싱?

엄기호 2014. 6. 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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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대학에서건 청소년들을 만나는 자리에서건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토론을 해보자고 한다. 대다수 학생들은 좋은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답한다. 그럼 다시 무엇이 행복이냐고 물어본다. 여기에서 학생들의 반응은 반반 정도로 갈린다. 한쪽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머지 반은 그런 삶이 진짜 행복이지만 그건 이상적인 것이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그 행복을 한 단어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자유'라고 답한다. 전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자유라는 것이고, 후자는 돈이 많아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말한다. 행복한 삶이란 결국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이다.

다시 그들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혹시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억압되고 종속된 '노예의 삶'은 아닌지 물어보면 대다수 학생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어떤 학생들은 "아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합니까. 자기 좋아서 하는 것을 하면 행복한 거죠. 너무 피곤해요"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학생들이 고맙다. 그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다른 학생들이 비로소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도 이렇게 자꾸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 피곤하냐고 물어보면 대개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답한다.

ⓒ박해성 그림

"그래서 우리가 좋은 삶을 못 찾는 것입니다."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은 삶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힘이 결여되어 있다. 바로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힘이다. 좋은 삶에서 행복으로, 행복에서 자유로, 딱 3단계만 넘어가도 짜증이 나고 질문을 이어가는 걸 포기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에 판단을 맡겨버린다. 충분히 점검해보지 않고 그렇다고 믿고 그냥 '고고싱' 하는 것이다.

공부하느라 공부할 틈이 없는 학교

좋은 삶을 찾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질문을 지치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다. 교육은 그 질문을 이어가는 힘을 키워주는 과정이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질문을 다음 질문으로 이어가는 것이 피곤하지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느낄 때 질문을 이어갈 수 있다(배움은 재미가 아니라 기쁨의 과정이다). 교육적 관계란 서로 그 질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함께 겪고 더불어 하는 이 관계로 인해 또 기쁠 수 있다. 배움은 이처럼 기쁨을 두 배의 선물로 준다). 산에 들어가 도 닦는 게 아닌 다음에야 혼자서 이 질문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 공동체란 답을 공유한 공동체가 아니라 질문을 이어가는 힘을 가진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공동체란 세상을 쫓아가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멈추는 곳이다. 세상을 멈출 때만 비로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질문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는 세상을 쫓아가기에 바쁘다. 지난 학기에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깨달았어요. 생각만큼 피곤한 게 없어요. 그냥 살래요." 이 학생의 말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드러낸다. '무사유'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해서라거나 어떤 개인의 '게으름'과 같은 특성 때문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충분히 생각하려 하면 시간 낭비라고 질책한다. 빨리 답을 찾아야 하고 한번 찾은 답을 절대적인 답이라 믿고 미친 듯이 달려야 한다. 여기에 생각과 질문이 끼일 틈은 없다. 다른 한 학생의 말처럼 '공부하느라 공부할 틈이 없는 곳'이 학교다.

사정이 이런데 요즘 '아이'들 생각이 없다고 짜증을 내는 것은 무의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일이다. 그들이 생각하며 살기를 바란다면 '틈'을 줘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틈, 그리고 같이 생각을 이어갈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충분한 '틈' 말이다. 사실 학생들에게 가장 주기 싫어하는 것이 바로 그 '틈' 아닌가? '틈'을 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면서 말이다.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강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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