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원의 소름 돋는 새벽 2시 풍경

해달 2014. 6. 1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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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옮기는 이유가 뭐겠어요,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까 그렇겠죠?"

일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학부모와 학생의 퇴원 사유다. 아무리 아이에게 공을 들였어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때의 섭섭함은 온전히 강사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몇몇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을 쏟아봐야 시험 성적 한 번에 돌아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이미 알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정을 주지 않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사는 본인이 제공한 수업으로 수강생의 성적을 올려야 하고, 학생의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가차 없이 낙오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많은 강사들은 고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산다. 강사의 장점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 순간 단점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왜 강사가 애들하고 수다를 떠는지 모르겠네요. 사회적인 이슈는 대체 왜 이야기를 하는 거죠?" ㄱ강사는 한 해 동안 가르친 학생의 부모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문제나 잘 풀어주면 될 강사가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박해성 그림

"수업이나 잘 가르치면 될 것을" 이 대목에서 강사들은 완전히 무너진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온 어떤 노력도 무의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수업을 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강사가 수업 중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꼬투리 잡힐 빌미를 줬다는 사실이다.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질문을 삼킨다. 성적이 나오면 뭘 해도 되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뭘 해도 안 되는 걸까?

학부모만큼 절실하지는 않겠지만 성적을 제대로 내고 싶은 것은 강사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퇴원 쓰나미'가 두려운 것은 둘째 치고, 좋은 성적을 내는 친구들이 나와야 수강생 증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따라서 강사들은 가르치는 사람과 사업가 사이의 경계에서 종종 균형을 잃어버리곤 한다. 아이들 마음만 잡아두면 벌이가 유지된다며 수업을 시작할 때 매일같이 피자와 음료수를 책상에 올려놓는 강사가 있는가 하면, 빠른 시간에 성적으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을 과도하게 통솔하거나 지나치게 몰입교육을 시키는 강사들도 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새벽 2시에 불 꺼진 학원 복도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여자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주위를 살폈는데 불 켜진 데는 없고요. 소름이 쫙 끼쳐서 엘리베이터까지 막 뛰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학생들 목소리가 맞아요. 학원이 단속을 피하려고 빛이 나가는 틈을 테이프로 다 막고, 창문에는 나무 패널을 붙여놨던 거래요." 학생을 이렇게 압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 강사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시험 결과가 바로 나온다는 것만은 모두가 안다.

늘어나는 학원 건물에 가슴이 서늘해져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이런 방식의 학원들은 빠르게 성장한다. 제1관, 제2관… 무섭게 늘어나는 건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하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이 바닥의 진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때로 강사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어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간고사, 모의평가, 기말고사, 수능까지 고교 3년 동안 이뤄지는 최소 20번 이상의 평가 때마다 학원의 수강생들은 들고남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강사들은 계속 마음을 다치고, 어떤 가치를 포기했을 때 좀 더 빨리 실적을 낼 수 있는지 알기에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린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강사들은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아직은 팔아서는 안 되는 교육의 가치가 있다는 공통된 전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은퇴한 강사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원 강사로 살아온 삶이 남들 앞에서 떳떳했던 적이 없었다"라고. 그들 말대로 이 사회에서 '떳떳한 사교육'이 과연 가능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어른이 모여 함께 아이를 키워낸다는 교육의 전제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강사도 실적만으로 존재 가치를 평가받는 직업이 아닌, 교육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달 (필명·서울 목동 입시학원 강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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