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 한국교수 '네이처' 표지 장식하다

2012. 5. 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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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균열현상 역발상 연구로

나노채널 만드는 데 성공

반도체·생명공학계 눈길

부친 사업 망해 대학 포기

버클리대서 5년만에 박사

"자랑하고 싶어 혼났어요"

순탄치 않은 삶을 걸어온 30대의 젊은 교수가 과학계에서 일생에 한번 논문 저자로 등록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기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 표지논문을 실었다.

남구현(33·사진)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특임교수는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 석사과정 때, 어떤 물질에 규칙적으로 금이 간 것을 발견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물질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여기며 피할 방법에만 골몰하는 '균열' 현상을 놓고 발상의 전환을 했다. 균열을 일부러 만들고 원하는 방향으로 금이 가게 한 뒤 멈추고 싶은 곳에서 정지시키는 방법을 찾으면 유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5년이 흐른 뒤 그의 역발상 연구는 <네이처> 10일치 표지논문을 장식했다. 30대 국내 연구자의 <네이처> 표지논문 게재가 처음은 아니지만 33살은 최연소 기록이다.

남 교수는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고승환(38)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와 함께 균열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이용해 폭이 1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에 불과한 홈(나노채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자빔을 쬐어 깎아내는 기존 방식으로 지름 4인치 실리콘 웨이퍼를 나노채널로 채우려면 수천만원을 들여 수십년을 작업해야 하지만, 연구팀 방법으로 하면 몇만원으로 몇시간 만에 해낼 수 있다.

반도체와 생명공학업계의 눈길을 끌 만한 연구성과다. 나노채널은 차세대 반도체와 바이오칩 등에 쓰인다.

남 교수는 "처음 연구를 착안하고선, 당시 버클리대에서 함께 공부하던 고 교수에게 얘기하니 '미국의 다른 연구자에게 업적을 빼앗기지 말고 한국에 돌아가서 본격 연구를 하자'고 제안했다"며 "어차피 귀국할 생각이었기에 지도교수한테도 함구한 채 졸업 때까지 3년 동안 관련 자료만 찾아봤다"고 했다.

그는 일반고인 대구 능인고를 나왔다. 고3 때 외환위기로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빚쟁이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상위권 성적에 '멘사'(고지능자 모임) 회원이었지만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탈출구를 군입대에서 찾았다. 병역특례(산업기능요원)로 레미콘회사에 다니면서 각종 정보사 자격증을 땄다. 특례 3년차에 항공우주 관련 업체 일을 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위촉연구원 생활을 3개월 한 것을 계기로 3년 동안 항공 관련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그 인연으로 만난 고 황명신 한국항공대 교수의 권유로 200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년 동안 커뮤니티칼리지(단기대학)를 다닌 뒤 2005년 버클리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5년여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귀국한 그는 1년 먼저 고 교수가 몸담고 있던 카이스트에 지원했지만 실패하고 이화여대 박일흥 물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특임교수 자리를 제안했다.

지난해 8월 <네이처>에 투고할 때 연구팀은 수월한 심사를 위한 외국 유명교수 '끼워넣기'를 하지 않고 한국인 과학자 3명만을 저자로 올렸다. 지난 2월 <네이처>로부터 표지논문으로 채택됐다는 연락을 받고서 남 교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동안 대전 카이스트와 서울을 오가며 밤새워 연구하던 일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다. 누군가에게 마구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네이처'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네이트온에 무엇을 올렸다고?'라고 되물으시더군요. 아버지께 <네이처>에 논문을 낸 과학자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모습으로 패러디한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아 이메일로 보내드렸죠." 지난 8일 기자설명회를 마친 남 교수는 "속이 시원하다"며 활짝 웃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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