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살처분 본 뒤 돼지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김기범 기자 2015. 5. 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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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 다룬 다큐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

▲ 황윤 감독, 충격적 현실 영상으로정부 정책 생산성 높이기만 주목감금틀 이용한 사육 '학대' 규정동물복지적 축산 전환 지원해야

"돼지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젖을 찾는 게 아니라 엄마 얼굴로 가서 먼저 인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공장식 축산과 육식 위주 식생활에 대한 고민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 속 황윤 감독의 내레이션이다. 그는 돼지가 비교적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농장에서 태어난 새끼돼지가 어미 얼굴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저녁에 기온이 떨어지자 돼지들은 우리 속 짚을 모아 둥지를 만들었다"고도 했다. 고기를 생산하는 '비육돈'의 운명은 마찬가지였지만 폭 60㎝, 길이 200㎝의 공장식 스톨(금속틀)에 갇혀 살고 있는 돼지들보다는 평화로워 보였다.

공장식 축산이 한국에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계기는 2011년 전국적 대량 살처분이었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공장식 축산이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의문이 생겨난 것이다. 구제역과 AI가 동시에 발생했던 2011년에 살처분된 소·돼지는 348만마리, 닭과 오리는 647만마리에 달했다. 돼지나 소, 닭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앞서 '육식 권하는 사회'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반성도 나오기 시작했다.

황 감독의 고민도 대량 살처분에서 시작됐다. 구제역과 살처분 소식을 듣고 돼지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그는 먼저 공장식 축산 농장을 찾아갔고, 살아 있는 돼지를 구덩이에 밀어넣는 모습을 영상에 기록했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에 소개된 공장식 축산 방식의 돼지 축사 모습(위). 돼지가 자연스럽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농장 우리에서 어미 돼지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가운데). 황윤 감독이 공장식 축산 방식의 돼지 축사에서 돼지를 바라보고 있다. | 시네마달 제공

살처분은 누구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잔혹한 광경이다. 언론을 통해 살처분을 접한 시민 중에도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2013년 녹색당이 공장식 축산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에는 이런 살처분의 원인이 된 공장식 축산을 정부가 축산농가에 도입하도록 조장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녹색당과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지난달 3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소원의 핵심인 정부 축산정책에 위헌 요소가 포함돼 있다"고 추가 근거를 공개했다. 이들은 정부가 공장식으로 집적화된 축산 방식을 도입하는 농가에 예산을 지원하면서 소규모 자영 농가는 축산을 포기하거나 공장식 축산 업체에 편입되도록 내몰렸다고 밝혔다. 또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에 투입된 예산 1조1971억원 중 상당부분이 어미 돼지의 스톨 등 '동물 학대를 통한 생산성 높이기'에 지원되었다고 지적했다.

공장식 축산이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보상금만 최근 4년 새 1조8418억원에 달해 예산 낭비도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정부는 감금틀을 이용한 사육을 동물학대로 규정하는 동시에 축산농가들이 친환경적이고 동물복지적인 축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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