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스토리] 사생활 보호냐 알 권리냐.. 'Delete'의 딜레마

2014. 6. 7. 0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번 올린 글·사진 무한 확산.. 현대인 인터넷 기록 삭제 힘들어최근 SNS까지 가세 빠르게 퍼져

헤어진 애인과 함께 한 흔적, 성형수술 전 사진, 정치적 성향이 드러난 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런 내용이 인터넷에 퍼져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인터넷 시대에 현대인들은 기록을 남기는 것보다 지우는 게 힘들다. 한 번 올린 글과 사진은 인터넷을 타고 무한 반복, 확산한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가세해 더욱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를 지워 달라."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ECJ)에서 잊혀질 권리를 처음 인정한 이후 유럽 각국에서는 구글을 상대로 한 개인기록 삭제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인이 과거의 잘못을 감추는 데 악용될 수 있고, 알권리와 상충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 기록 삭제 신청 봇물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는 오스트리아 출신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가 2009년 자신의 저서에서 디지털 정보의 소멸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스페인의 한 변호사는 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깜짝 놀랐다. 1998년 빚 때문에 집을 공매에 내놨다는 내용의 기사가 검색된 것. 이 변호사는 구글 측에 삭제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13일 ECJ로부터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외신에 따르면 구글이 지난달 30일부터 유럽에서 개인기록 삭제 요청을 접수하기 시작한 지 4일 만에 4만1000건 이상의 신청이 몰렸다. 심지어 가족을 살해하려 했던 한 남성이 관련 기사를 지워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구글은 ECJ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삭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처럼 활발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잊혀질 권리를 둘러싼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여서 게시 글 삭제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고 글 삭제도 쉽지 않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 등은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명예훼손과 관련된 글의 삭제 요청이 있으면 글을 볼 수 없게 임시로 차단하는 블라인드 처리를 하고 게시자가 30일간 특별한 이의신청을 안 하면 삭제한다. 문제는 타자에 의한 명예훼손 외에 이미 사망한 사람의 데이터나 본인이 쓴 글, 옛 기사 등에 따라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신이 쓴 글이 어디에 얼만큼 퍼져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최근에는 고인이 된 아나운서 송지선씨의 미니홈피가 여전히 삭제되지 않았으며, 악플이 달리고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포털 업계 관계자는 "사망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가족관계가 입증된 유족들이 요청을 해 올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 데이터를 삭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 권리 Vs. 잊혀질 권리

유럽에서 잊혀질 권리가 뜨겁게 떠오르는 것은 전통적으로 프라이버시를 강하게 보호하는 측면이 작용했다. 여기에 유럽의 포털사이트를 점령한 구글에 대한 반발로 데이터 삭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 사회는 최근 개인기록의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관련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16일 '온라인 개인정보보호 컨퍼런스'를 열고 잊혀질 권리의 도입 검토 여부와 제도 마련 등을 짚어본다.

방통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잊혀질 권리의 도입 방향이 잡히지 않은 상태여서 현행 법률이나 제도 등을 통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차원에서 컨퍼런스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논의의 중심은 알권리와 잊혀질 권리의 상충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공인이 잊혀질 권리를 악용해 과거 잘못을 삭제하려 할 경우 유권자와 대중의 알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우 전과기록이 노출된 뉴스기사가 잊혀질 권리에 해당하는 영역인지도 논의가 필요하다.

잊혀질 권리와 관련해 법 개정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2월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개인이 인터넷 콘텐츠 삭제를 요청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위반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의무조항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부에서는 정치인이나 기업이 '정보 세탁'을 하는 데 이 개정안이 악용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경한 IT(정보기술)특허 관련 전문 변호사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잊혀질 권리의 핵심 논의는 명예훼손적 게시글이 아닌 적법한 정보를 대상으로 하는 데 있다"며 "이 정보의 삭제 여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적었다.

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