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왜 무선전화 사용자들은 범법자가 됐나

김수형 기자 입력 2013. 10. 12. 14:15 수정 2013. 10. 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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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1일부터 사용 금지..받기만 해도 과태료

'국민 전화기' 가정용 아날로그 무선전화기

맥슨, 바텔같은 브랜드의 가정용 아날로그 무선전화기는 한 때 TV광고에도 나왔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구불구불 꼬인 줄을 풀어가며 전화를 해야 하던 유선전화와는 달리 무선전화는 아늑한 집안에서 걸어 다니면서 할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런 전화기가 지난 2003년부터 작년까지 560만 대가 팔렸으니, 전 국민이 한 대쯤 갖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이 미래부에 요구해 받은 자료를 기초로 말씀드립니다.) 2008-2009년까지 대부분 단종이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정집에 안테나가 위로 돌출돼 있는 아날로그 무선전화기(디지털 무선 전화기는 안테나가 내장돼 있습니다.)를 갖고 있는 가정집은 상당히 많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미래부는 배터리 수명 등을 고려하면 현재 사용자는 많아야 10만 명은 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것보다는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난데없는 아날로그 무선전화기 '사용 금지령'

그런데 국민 무선전화기가 내년 1월 1일부터는 '불법 통신기기'가 됩니다. 아날로그 무선전화기에 할당했던 900MHz 대역의 주파수 사용기한이 올 연말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미래부는 지난 달 말, 느닷없이 올 연말로 사용이 끝난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공지했습니다. 처음 주파수 할당을 할 때 올 연말까지였다며 알고 있으라는 재확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불법 기기를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게 왜 이제야 발표가 된 건지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내년 이후 불법 통신기기가 된 아날로그 무선전화기를 계속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전파법에서는 혼신을 엄격하게 막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법 장비인 무선전화기를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과태료 폭탄을 맞을 수 있는 겁니다. 5만 원 남짓한 교통 딱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강력한 처벌입니다.

무선전화기는 충전기에서 분리해 사용하는 순간부터 전파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걸려온 전화를 받기만 해도 900MHz 대역 주파수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때릴 수 있는 겁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과태료 폭탄을 안고 사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석 달 남았는데 여전히 판매되는 무선 전화기

그렇다면 아날로그 무선전화기는 적어도 이미 몇 년 전에는 판매가 금지됐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에서 무선전화기를 검색해보면 900MHz를 사용하는 아날로그 전화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 리포트가 나간 이후, 아날로그 무선전화기를 두 달 전에 샀다며 분통이 터진다는 시청자의 메일을 여러통 받기도 했습니다. 무선전화기를 살 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자칫 석 달 뒤면 사용이 금지되는 전화기를 살 수도 있는 겁니다.

사용금지 홍보는 달랑 배너 하나… 참 친절한(?) 미래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정부는 최대한 국민들을 상대로 이런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관련 자료를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미래부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서 우하단 알림판에서 여섯 번째 소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참을성을 갖고 홈페이를 열심히 보지 않는 이상 관련 정보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래부 홈페이지 → 홍보용 홈페이지 접속 → 홍보 브로슈어까지 찾아들어가는 미로 같은 과정이 대국민 홍보 방법이라는 겁니다.

▲ 박대출 의원실 미래부 요구자료

주파수 주인 KT의 요구 "간섭 현상을 막아 달라"

900MHz 대역 주파수를 정부로부터 돈 주고 구입한 통신사가 있습니다. 바로 KT입니다. 지난 2010년 4월, KT는 당시 주파수 할당심사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며 2천5백억 원을 대가로 정부에 지불하고 900MHz 대역의 주파수를 받았습니다. 아이폰이 막나오고 스마트폰이 폭발적으로 신장하던 시기에 곧 닥쳐올 4세대 이동통신 LTE를 위한 예비용 주파수였습니다. 하지만 KT는 주파수를 할당받은 지 3년이 넘도록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날로그 무선전화기입니다. 주파수 대역이 바로 붙어 있어서 간섭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주파수 대역으로 LTE 서비스를 하면 전화가 끊어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지난 7월, KT는 자신들이 가진 900MHz 주파수 간섭 시연을 했습니다. 900MHz 대역 주파수를 LTE로 활용하는 스마트폰이 간섭을 받아 먹통이 되는 걸 눈으로 보여준 겁니다. 보통 통신사들이 서비스가 잘된다는 행사는 해도, 안 된다는 행사를 하는 거는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당시 행사를 진행했던 KT 임원들은 노골적으로 정부에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한마디로 돈 내고 산 주파수를 제대로 활용하게 해달라는 정부에 대한 항변이었습니다.

미래부 "LTE가 이렇게 빠르게 활성화 될지 몰랐다"

미래부는 규제기관을 향한 KT의 대찬 요구에 그다지 할 말이 없습니다. 주파수를 팔 때는 3G 서비스를 할 것을 전제로 간섭이 있나 알아봤는데 그때는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주파수 대역을 LTE를 하려고 하니 간섭이 생기더라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제기를 하는 사업자에 대해서 정부부처는 어떻게 AS를 해줘야할지 행정적인 판단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사업자를 편들 것이냐, 사용자를 편들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사업자를 편드는 손쉬운 길

미래부는 손쉬운 길을 택한 걸로 보입니다. 바로 사업자를 편들면서 아날로그 무선전화기를 조기 종료하는 것을 방향으로 잡은 겁니다. 자신들의 추정으로는 아날로그 무선전화기 사용자는 10만 명에 불과하니 연말까지 사용종료를 고지해 겁을 주면 더 줄어들 테고, 적당한 순간에 과태료를 때려 시범타를 보여주면 순식간에 사용자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용자들의 항의에 대비해 홍보 사이트에 "무선 전화기는 손실 보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원조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라고 못박아놨습니다.

영문도 모르게 무선 전화기를 잘 사용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낮에 날벼락을 맞는 일과 비슷한 일일 수 있습니다. 특히 전화기를 얼마 전에 산 사람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보상은 없다고 하고, 계속 쓰면 최고 2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맞을지 모르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아날로그 무선 전화기 문제를 심도 있게 조사했던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도 미래부가 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를 보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여당 의원에게도 미래부의 행태는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여줬던 겁니다.

무선전화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게 한다던 약속 지켜야

지난 2006년, 미래부의 전신인 정통부는 정부사이트인 인터넷 정책브리핑을 통해 아날로그 무선전화기의 사용 기한을 "기기수명이 종료될 때까지"라고 명시해놨습니다. 기기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사용하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미래부는 전신인 정통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을 다시 한 번 새겨봐야 할 거 같습니다.

( 정부 정책 공감 사이트)

주파수 정책은 국민의 재산을 정부가 위임받아 행사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주인도 국민이고 사용자 또한 국민인 독특하고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를 맞아 정부가 당장의 효율성에 집착하기 보다는 오랜 기간 동안 충분히 국민을 설득하는 장기적인 주파수 정책을 세우기를 기대해봅니다.김수형 기자 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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