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 코리아] 2억 SW를 500만원에..개발자 등골 빼는 '하청-再하청' 악순환

2013. 6. 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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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과학기술 인재가 답이다 (3) SW인재 키우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 "우리는 하청업자" 자조

열악한 대우에 인재 외면…기업 충원율 70% 맴돌아

최고 유망직업 美·日처럼 전문가 대접부터 해줘야

#1

. 지난해 한 공공기관이 개발에 2억원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발주했다. 관련 인력이 전무한 출판사에서 '싸게 할 수 있다'며 1억원에 수주했다. 이 출판사는 중견소프트웨어업체에 6000만원에 하청을 줬지만 소프트웨어 회사는 다시 중소개발사에 4000만원에 재하청을 줬다. 중소개발사는 운영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에 달랑 500만원짜리 하청을 줬다. 2억원의 예산으로 10명이 달려들어 6개월을 작업해야 할 일을 월급 250만원을 받는 스타트업 개발자 2명이 두 달 만에 마쳐야 했다. 이들은 매일 밤을 새웠지만 프로그램은 오류투성이였고 결국 기한 내에 일을 끝내지 못했다.

#2

. 2000년대 중반 한국의 한 IT대기업에 취직했던 K씨. 꿈꾸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됐지만 박봉에 거의 날마다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집에도 일을 가져가야 하는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다. 아내의 권유로 회사를 나왔지만 엔지니어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최근 외국계 기업에 입사해 미국으로 건너가 엔지니어로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월급은 훨씬 더 많았고, 일하는 시간은 줄었다. 일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엔지니어로서 한국에서 일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커뮤니티나 엔지니어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거의 매일 이런 현실을 고발하는 글이 줄을 잇는다. '창조경제'를 외치고 소프트웨어 강국 비전을 외치지만 이런 현실을 어떻게 할지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관련 정책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현장에 전혀 먹히지 않는 이유다.

개발자들은 하청-재하청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소프트웨어 산업 구조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개발자는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자긍심이 없으니 어릴 때부터 이에 대한 꿈을 갖지 않고, 꿈이 없으니 훌륭한 인재도 드물고, 결국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가 나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일은 '프로', 대접은 '하청업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상당수는 명문대학을 나온 수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하청업자'라고 자조적으로 부른다. 왜 그럴까.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글로벌부문장은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산업을 일종의 건설산업처럼 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이나 정부가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지 않고 대형 IT회사에 맡기고, 이 회사는 이런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작은 소프트웨어업체에 또 맡기는 현실을 비꼰 것이다. 임 부문장은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은 전문성은 배제하고 국가가 정한 소프트웨어 노임 단가를 기준으로 경력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진다"며 "고도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필요한 프로로서 일하지만 하청업자 대우를 받는데 누가 이 일에 꿈을 갖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청 구조로 인한 싸구려 노임이 하도 심각하다 보니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정부가 나서 아예 최소한의 단가를 지정했다. 유능한 개발자들이 생계마저 곤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장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노상범 소프트웨어 개발자 커뮤니티 대표는 이런 문제를 정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소프트웨어개발자협동조합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노 대표는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은 고질적인 하청 구조, 개발자를 하수인 부리듯 하는 방식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며 "종사자들이 대우를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일갈했다.

○쓸 만한 인재는 더 없다

이런 현실에서 쓸 만한 인재가 엔지니어의 길을 택하는 게 어찌 보면 이상할 정도다. 그래서 이공계 전공자는 넘쳐나지만 막상 IT기업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구하기 어렵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2005년 11만1000명이었던 소프트웨어 산업 인력은 2008년 13만9000명, 2009년 15만2000명으로 늘었다. 작년엔 19만7000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개발전문가 충원 비율은 몇년째 7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력 부족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소프트웨어 인력 수급 동향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은 5796명 부족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1만1990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절대적인 양도 부족하지만 바로 현장에 투입할 인재는 더 구하기 어렵다. 기술력으로 정평이 난 벤처기업 노매드커넥션의 이경준 대표는 수시로 모교인 포스텍(포항공대)을 방문한다. 쓸 만한 엔지니어를 직접 채용하기 위해서다. 그가 1년 내내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엔지니어를 구하는 것. 그렇게 발품을 팔고 네트워크를 총동원해도 바로 쓸 만한 인재는 거의 없다. 이 대표는 "학교 교육 프로그램이 현장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데다 엔지니어로서 어릴 때부터 훈련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사람이 더 없다"며 "일단 2년 정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칠 생각으로 직원을 뽑는다"고 토로했다.

○엔지니어를 전문가로 대우해야

일본의 벤처기업가인 나카지마 사토시는 "미국의 IT업계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프로야구 선수 같은 존재"라고 했다. 구단은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스타플레이어에게는 그에 맞는 최상의 대우를 하듯 뛰어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프로야구 선수 같은 대우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우를 받으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 각종 직업 관련 조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항상 유망직업 1순위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은 IT업계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수입이 가장 많은 직종이기도 하다. 포브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개발자 평균 연봉은 10만420달러로 전체 직종 중 유일하게 10만달러를 넘었다. 미국 직장인의 평균 연봉 4만5000달러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김진형 KAIST 교수는 "미국과 선진국에서 최고의 직업으로 꼽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한국에서 유독 안 좋게 인식되는 것은 산업 구조와 환경 등에 기인한 바가 크다"며 "이들을 하청업자가 아니라 전문가로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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