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삼성 갤럭시S는 성공한 "베끼기 도박"이었나 ①

이현식 기자 입력 2012. 8. 30. 15:57 수정 2012. 8. 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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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삼성과 애플의 소송에 관한 이런저런 국내외 기사와 인터넷 글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기성 언론들의 기사 가운데는 '삼성이 미국 배심원들로부터 부당하게 당했다'는 관점에서 쓴 기사가 많아 보였습니다. 그에 대한 반응 내지 반격으로 인터넷에서는 '삼성의 막강한 광고비 지원을 받는 언론들이 삼성 감싸기에 나선다. 애국주의적 견지에서 삼성을 감싸는 것은 삼성에게도,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관점의 지적이 많이 나오더군요.

미국에서도 매체에 따라,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자 경력 가운데 7년 가까이를 IT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업무를 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10여종의 애플/ 삼성 기기들을 쓰는 사용자로서, 이번 사안을 보며 든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실리콘밸리 배심원들은 왜 삼성이 '베꼈다'고 보았나.

'삼성 갤럭시S가 아이폰 3GS의 디자인을 베꼈는가'와 관련해 ,국내에서 삼성을 두둔하는 분들의 시각을 잘 반영해주는 패러디 사진이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입니다.

애플의 '둥근 모서리 사각형'은 이전에도 산업 디자인에서 많이 쓰이는 모티프였다는 것이죠. 각론만 떼어놓고 보면 맞는 말입니다만, 이는 사안의 본질을 회피하는 주장입니다.

저는 갤럭시S 스마트폰, 그리고 갤럭시 10.1 태블릿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포장부터 애플 제품과 너무 똑같았거든요. "야, 상자까지 흉내내나?" 하는 첫인상이 강렬했습니다.

국내의 재야 모바일 전문가들은, 삼성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애플 디자인을 카피해 왔는가를 적시해 놓기도 했습니다. 포장은 물론, 제품 사진 찍는 컨셉까지 따라했다는 점을 적시해 두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코나타의 모바일 생활; 삼성 갤럭시S는 애플 아이폰의 어떤 것을 얼마나 카피했을까) http://konatamoe.com/20165267804

이번 재판의 핵심은 '삼성 갤럭시S가 애플 제품이 주는 전체적 느낌(look and feel)을 베꼈는가' 그리고 '그것이 의도적인 것이었나' 입니다. 양쪽 제품을 다 아는 사람이라면, 'No'라고 말하지 못할 겁니다. 애플(또는 애플의 법무법인)은 이 큰 줄기를 잘 활용했습니다. 반면 삼성은, 물증이 드러난 절도 사건의 피의자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법리상 그것이 절도가 아닌 이유'를 복잡하게 설명한다고 해서 '훔쳤다'는 원고의 주장을 피해 나가기 어려운 것과 비슷했다고 할까요. 중국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팔면 우리는 '짝퉁'이라고 부르죠. 갤럭시S와 아이폰3GS의 관계는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제품 사진을 보고 각자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2. 배심원이 비전문가여서 문제가 되나

이번 재판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의 또 다른 축은 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만 그런 게 아니고, 미국에서도 법률전문가들간에 크진 않지만 논란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특허법률 적용과 배상액 산정에서 비전문적인 구석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구글이 배심원 평결에 대해 낸 성명에서 "특허당국과 항소법원이 다시 들여다 볼 것"이라고 문제제기를 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배심원을 둔 재판을 왜 하는가'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기업 애플과 한국기업 삼성의 재판이어서가 아니라, 미국의 재판에는 늘 비전문가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참여합니다. 양측 변호인들은 특정 배심원이 사안에 관해 사전적 편견을 갖고 있을 것 같으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제도가 생겼을까요? 법이라는 것은 어차피 그 사회의 역사와 전통, 상식, 문화같은 것들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갖춘 법률가가 사법적 판단을 독점하게 되면, 전문적인 법 논리로 따지면 옳지만 일반인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법률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로 하여금 재판에 '상식'과 '일반인의 법 감정'을 반영토록 하는 것 아닐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최재천 의원의 블로그 글을 추천합니다.http://yourrights.tistory.com/265

미국내에서 이번 배심원 평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배심원들이 내린 큰 틀의 판단 -즉 '갤럭시 S가 애플 제품과 너무 비슷하다. 삼성 내부 문서나 구글의 만류 이메일 등을 볼 때, 삼성은 애플을 베낄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는 것 자체를 문제삼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베낀 것은 베낀 것이라도, 이와 같은 소모적 특허소송전은 IT전체의 발전과 소비자 권익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죠. 이 얘기는 좀 더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역시, 요즘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패러디 사진입니다.)

3. 그렇다면 삼성은 왜 갤럭시S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을까..?

배심원들의 판단이 큰 틀에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생각해 볼 부분은 '삼성은 왜 그랬을까'입니다. 이 문제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삼성은 왜 갤럭시 S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을까?"와, "삼성은 왜 이런 식으로 소송전을 끌고 왔을까?"입니다. 여기선 우선 전자를 생각해 보기로 하죠.

경쟁이 심한 큰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달리고 있는 선두를 따라잡으려면 후발 주자는 어떤 전략을 쓸 수 있을까요. 우선, 자기가 가던 길을 고집하는 전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노키아와 림(블랙베리), 팜 등 나름 성공적인 자체 OS를 갖고 있었던 스마트폰 선발주자들이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것때문에, 지금은 존립이 위협받을 정도로 실패했습니다.

반면 삼성은 외부에서 대안을 찾았습니다. 한때 국내에서 삼성이 자체 OS 대신 안드로이드를 쓴다는 점을 비판하고, 심지어 '왜 안드로이드가 구글로 넘어가기 전에 사들이지 않았는가'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진 적이 있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소프트웨어 자이언트인 구글의 품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나름 성공적인 OS로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삼성은 구글과 연대해 반 애플 진영을 구축하고, 막강한 제조업 능력을 활용해 반 애플 진영의 선두에 서겠다는 전략을 택해 이를 잘 실행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지위 (스마트폰 판매량 세계1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삼성 입장에서, 고민은 처음부터 디자인이었을 겁니다.여기에는 제품의 외관 뿐 아니라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포함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드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죠. 실제로 , MS가 올해 내놓은 윈도우폰의 인터페이스는 전문가들에게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의 눈은 이미 애플이냐 안드로이드(주로 삼성)냐로 고정돼 있고, 시장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그래서, 1등 제품을 모방하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시장에서 '짝퉁' 회사들에게 당한 일을 미국 시장에서 애플에게 행한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추정컨대, 처음부터 삼성은 애플이 소송에 나설 가능성을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 소송을 당해서 망신을 당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되더라도 일단은 아이폰과 비슷한 제품을 내 놓아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이폰과 맞먹는 스마트폰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과 예상 비용, 그리고 소송으로 치러야 할 비용도 비교해 봤을 겁니다.

폭력세계를 다룬 영화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있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삼성은 이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기업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아이폰이 만든 스마트폰 카테고리의 아류작들을 내놨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의미있는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은 삼성이 유일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진: 갤럭시S와 아이폰3GS)

3-1.아이폰을 팔 수 없는 이동통신사와 아이폰을 만들 수 없었던 제조사의 결탁

이 과정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동통신 시장의 특성입니다. 소니와 같은 미디어 재생기 강자가 휴대폰 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이유, 애플이 훌륭한 혁신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시장을 통째로 다 먹지 못하고 삼성의 추격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와 관련됩니다.

휴대폰 시장에선 '사업자'가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KT나 SK 텔레콤 같은 존재들이죠. 휴대폰은 구입 뒤 '개통'을 해야 전화기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사업자가 단말기 제조사에 이런 저런 요구를 합니다.

애플은 그런 요구에 일일이 맞춰줄 생각도 없고, 맞춰줄 수단도 없는 회사입니다. 반면 한국 이동통신 시장에서 애니콜을 팔며 성장한 삼성은, 이동통신사의 어떤 변덕이나 까다로운 요구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제조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사진: 미국 이동통신사들의 로고)

애플이 2008년 이후 아이폰으로 휴대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때, 애플의 정책은 '말 잘듣는 대형 사업자 한 군데에만 아이폰을 독점으로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AT&T가 독점적으로 아이폰을 팔았습니다. 이통시장 1위인 버라이즌, 그리고 3위 이하 사업자인 T-모바일이나 스프린트 등은 아이폰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버라이즌이 AT&T보다 무선망 품질이 좋았고, 군소 사업자들은 통신요금이 AT&T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소비자들은 AT&T 아이폰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었습니다.)

그 공백을 삼성이 재빨리 메웠던 겁니다.(다시 한번, "재빨리" 메워야 했기 때문에 삼성으로서는 카피 외에 대안이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제까지 이와 같은 거액의 '디자인' 특허소송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소송을 당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다고 안이하게 판단하고 너무 노골적으로 모방 작전을 펼쳤는지도 모릅니다.) 애플이 지난해 버라이즌 등 기타 통신사용으로도 아이폰을 공급해 주기 전까지, 아이폰에 '가장 근접한' 갤럭시S는 기타 통신사들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4. 애플은 왜 구글 대신 삼성을 상대로 소송했나.

애플 창업주이자 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안드로이드'에 대해 분개했었다는 건 유명한 얘기죠. 전기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에게 "애플이 갖고 있는 현금 4백억 달러를 몽땅 털어넣어서라도, 핵전쟁을 벌여서라도 안드로이드를 파괴해 버리겠다"고 공언했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애플은 왜 구글이 아니라 삼성을 소송대상으로 삼았을까요?

포브스(Forbes)지의 발행인인 리치 카알가드(Rich Karlgaard)는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쓴 칼럼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애플에게 삼성은 구글보다 훨씬 더 손쉬운 상대였다는 건데요. 같은 실리콘 밸리 기업이자, 많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구글보다는, '외국계 대기업'인 삼성을 적으로 만드는 게 대중과 법조계,정치계의 암묵적 지지를 받는 데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상대의 홈 구장에서 열린 재판인데다, '현지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도 불리한 싸움이었는데, 삼성은 여기에 대해 '복잡한 기술 논리'를 들이대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하는 변명으로 피해가려는 전략을 썼습니다. 처음부터 패배 가능성이 높은 싸움이었던 셈입니다.

특허소송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그 결과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돈 받고 파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해서 애플이 거둘 금전적 실익이 확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반면 삼성은 갤럭시 S를 몇대 팔아서 얼마를 벌었는지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손해액 산정이 보다 용이하지요.

이번 사안처럼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실리콘 밸리에선 어떤 새로운 디자인이나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회사가 다른 후발주자들이 자리잡을 때까지 기다린 뒤에, 뒤늦게 소송을 거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동물을 키워서 잡아먹는 것과 비슷한 건데, 기왕 힘들게 돈들여 소송할 바에는 뜯어먹을 게 많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죠. 여러가지로 삼성 입장에선 "왜 나만.."이라고 억울해할 만도 한데, 애플쪽에서 볼 땐 삼성이 당연히 첫번째 타겟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안이라 생각됩니다.

(다음 글에 계속)이현식 기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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