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쓴 컴퓨터 글자체(폰트).. "198만원 내고 쓰세요"

김충령 기자 2012. 3.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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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제작사 "저작권 침해" - 최근 법무법인과 손잡고 출판사 등 업체뿐 아니라.. 개인·비영리 업체 등에도 저작권 침해 고소 잇따라

웹디자이너 오모(35)씨는 지난달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폰트(글자체)를 무단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니 3일 이내에 정식으로 구매했음을 증명할 정품 인증번호나 구입 영수증을 제시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폰트제작사로부터 위임을 받았다는 이 법무법인은 "만약 폰트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라면 폰트제작사의 패키지 상품을 구매해야 하고, 구매하지 않는다면 저작권 침해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영세한 규모로 웹디자인을 하는 오씨에게 100만원을 호가하는 패키지는 큰 부담이 됐다. 오씨가 패키지상품을 사지 않자 법무법인은 지난주까지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고소당할 수 있다"며 구매를 요구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윤디자인, 한양정보통신 등 주요 폰트제작사들이 법무법인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무단 사용자들에게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고가의 패키지 상품 구매를 요구해 사용자들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폰트 제작사 입장에선 자신들의 저작권을 지키기 위한 행위라고 하지만, 사용자들은 "영세한 사업자들까지 고가의 패키지를 구매하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패키지 구매를 요구받은 사용자들은 2011년 네이버에 폰트제작사를 성토하는 카페를 개설했다. 현재 카페 회원은 2500여명에 달한다.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29)씨는 "과거엔 폰트제작사들이 규모가 큰 출판사 등을 상대로 저작권을 주장했는데, 최근에는 법무법인과 손을 잡고 비영리목적으로 만든 웹사이트나 영세한 디자인업체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을 무작위로 뒤지다가 해당 폰트제작사의 글꼴을 사용했다고 판단되는 사이트를 발견하면 공문을 보내 패키지를 구매하라고 한다는 것.

한 폰트 사용자는 "예배 동영상을 촬영해 교회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그 동영상 자막에 사용된 폰트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198만원을 내고 패키지를 구매하라고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복사집을 운영하는 한 폰트 사용자는 "법무법인에서 느닷없이 찾아와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110만원을 주고 패키지를 사라고 했다"고 했다. 그는 "복사기 두 대로 출력해서 그럭저럭 먹고사는 영세업자고, 문서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온 문서들을 출력만 해주는데 서체의 정품 여부를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패키지 구매를 요구받은 사람들은 "폰트제작사들이 자신들의 저작물이 인터넷에 퍼지도록 관리를 부실하게 하고, 저작권이 있음을 알리려는 홍보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고발하겠다며 패키지 구매를 요구하는 것은 저속한 상업주의"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일반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매했을 때 무료로 제공되는 글꼴인 '번들폰트'를 다른 소프트웨어에서 사용한 경우도 패키지 구매를 요구받았다. '한글'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는 컴퓨터에선 건축설계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도 '한글'프로그램의 번들폰트가 자동으로 넘어온다. 이를 사용한 전북건축사회에 대해 패키지 구매를 요구한 것이다. 전북건축사회는 "고의적으로 폰트를 다운받아 쓴 것도 아닌데 지나치다"며 문화관광부에 개선을 요청했다. 지난 2월 문화관광부는 "번들폰트를 다른 프로그램에서 불러와 이용하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아 법무법인의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고 회신했다.

한 폰트제작사 관계자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협박으로 들을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저작권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폰트제작사는 창업 때부터 폰트를 묶음(패키지) 형태로만 판매했는데, 저작권 침해자를 위해 낱개로 판매할 수는 없다"며 "방문을 하거나 전화를 거는 직원들에게 (소비자가 협박으로 느끼지 않도록)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무작위로 공문을 발송하고 패키지상품 판매를 유도한 것을 "거래강제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정을 내렸다.

문화관광부는 "법무법인에서 불법적으로 폰트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혐의가 없는 사람에게도 공문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저작권자도 저작권 보호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달 중으로 폰트제작사·폰트사용자 등 관계자들과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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