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한국에 PC방이 있다면 유럽에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최근 찾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낯익은 국산 '토종 게임'을 하고 있는 네티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후안 곤잘로(17)는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넥슨의 역할수행게임(RPG) '메이플 스토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이 게임에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가 소개됐다"며 "메이플 외에도 한국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고 말했다.

유럽지역에 '게임한류'가 움트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확대 보급되면서 한국이 강점을 지닌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고 있어서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독일 쾰른서 열린 게임전시회 '게임스컴'에서는 온라인게임 전용 전시관인 '온라인 월드'가 처음 설치됐다. 게임스컴은 33개국 505개 게임업체가 참여하는 유럽 최대 게임 박람회다. 그동안 게임전시회는 비디오 게임을 주로 다뤄왔다.

유럽시장에서 온라인 게임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대용량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인터넷월드스태츠(IWS)에 따르면 유럽지역 인터넷 보급률은 6월 말 현재 58.4%에 이른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IDC도 유럽 온라인 게임 시장규모가 2008년 11억8100만달러로 2005년 3억6500만달러에 비해 3배 이상 커졌다고 밝혔다.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올해 유럽 게임시장은 25억달러에서 내년엔 3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온라인 게임 이용자 수는 현재 7000만명으로 추산된다. 반면 비디오 게임시장은 점차 줄고 있다. 프랑스에서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 규모는 2008년에 비해 11.4% 감소했다. 이 같은 변화를 감지한 토종 게임사들은 유럽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업체 넥슨은 이르면 연말까지 유럽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런던 법인이 있지만 유럽지역 공략을 위해 인력충원을 거쳐 법인을 새로 만든다. 넥슨 관계자는 "지난해에 8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전년 대비 169%의 성장률을 기록해 상주법인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날엔터테인먼트가 독일 부르다아이시를 통해 배포한 온라인 게임 '로코'는 유럽시장에 공개한 지 3주일 만에 이용자 수가 30만명을 돌파했다. 엠게임도 최근 온라인 게임 '아르고'를 유럽 30여개국과 북미 지역에 서비스하는 계약을 현지 업체와 체결했다. 웹젠의 '배터리'처럼 총싸움게임(FPS) 개발을 서두르는 업체들도 있다. FPS는 국내 시장에선 '비주류'지만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인기가 있는 게임 장르다.

걸림돌도 있다. 유럽시장에선 느린 인터넷 속도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종류가 우리와는 다르다. 웹브라우저로만 즐길 수 있는 '웹게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가입하면 즐길 수 있는 '소셜 게임'이 대표적이다. 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는 다운로드 게임 분야에선 블리자드가 만든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장벽이 높은 반면 웹게임에선 독일·중국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유럽 지역에선 20여개의 언어가 사용되는 데다 등급제 도 각기 다르다"면서 "2004년에 유럽법인을 설립하긴 했지만 직접 마케팅을 하지는 않고 나라마다 배급사를 지정하는 식으로 게임유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마드리드(스페인) | 백인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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