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 노화 정복 꿈꾸는 인간의 도전

서진우 2016. 10. 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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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게 끔찍한 것인가, 아니면 전혀 늙지 않는 게 더 끔찍한 것인가. 1995년 개봉한 닐 조던 감독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는 오로지 뱀파이어라는 이유만으로 몇백 년을 청년 또는 소녀처럼 사는, 그것도 낮에는 관 속에 갇혀 있고 밤에만 나돌아다니는, 아주 잘생긴 뱀파이어들(톰 크루즈·브래드 피트)이 등장한다. 햇볕 하나에 촛농처럼 사그라질 뱀파이어들이 오로지 만년 청춘이라서 부러운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이 물음 앞에 적어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과제들은 있다. 인간이 왜 늙는지, 그걸 조금이나마 늦추는 방법은 없는지, 아예 알약 하나로 노화를 막을 순 없을지 고민하는 게 지금 인간이다. 이 분야 생명과학이 최근 꽤 진일보했다. 연구방법론도 그렇거니와 임상학적 해결 과제가 남긴 했지만 장수 약에 대한 연구도 많이 축적됐다. 우리의 관심은 대략 3가지. 왜 늙는가, 즉 노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곧장 실험할 수 없다면 무엇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장수하는 약은 정말 인간이 복용 가능한가.

외부 스트레스가 DNA 변이 일으켜

생명과학에서 노화만큼 똑 부러진 답을 내놓기 힘든 분야도 드물다. 다만 인간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중의 기본인 DNA가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노화가 발생한다는 가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설득력 높다. 인간은 돌연변이에 의해 암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는 노화와도 관련이 깊다. 나이를 먹을수록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광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외부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와 활성산소 등으로 단백질과 DNA에 변화가 일어나 노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 명확한 건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이 개최한 노화 유전학 심포지엄에서 얀 페이흐 미국 알베르트아인슈타인 의과대학 교수는 "노화 과정에서 DNA 돌연변이가 축적되는데, 특히 인간의 장기와 조직에서 생기는 신체적 돌연변이를 측정할 수 있도록 DNA 염기배열(시퀀싱)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결국 변이가 증가할수록 노화든 암이든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DNA 연합체인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아미노산 모양이 노화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가설이 등장했다. 이는 단순히 DNA 변이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노화를 설명한다. 아미노산은 왼손 모양의 좌수형(L형)과 그 반대인 우수형(D형)으로 구분되는데 그동안 인간의 아미노산은 오로지 좌수형으로만 이뤄져 있다고 알려져 왔다. 생명체가 죽으면 단백질 속의 아미노산이 서서히 우수형으로 변한다는 것도 기존에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학자들은 좌수형 아미노산이 연결된 가운데 우수형 아미노산이 섞이면서 아미노산 입체 구조가 크게 일그러지는 현상을 파악했다. 이것이 곧 변이라는 것이다.

그 같은 변이는 노화 조직에서 유독 잘 발견됐다. 뇌나 피부, 이, 뼈, 동맥 벽 등에서 우수형 아미노산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원인 중 하나인 아미노이드 단백질이나 타우 단백질, 백내장에 관여하는 크리스탈린 등에 우수형 아미노산이 존재한다. 후지이 노리코 일본 교토대 교수는 "자연의 자외선과 활성산소 등의 스트레스가 좌수형 아미노산을 우수형으로 바꾼다"고 지적했다. 결국 외부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로 아미노산 형태에 변화가 일어나고 이것이 DNA 변이를 일으켜 노화가 발생한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유력한 노화 이론이다.

노화연구 모델 잇달아 등장

노화를 연구하려면 실험 대상이 필요하다. 그동안 인기를 끈 건 초파리나 생쥐·원숭이 등 포유류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선충과 물고기가 각광받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식물노화·수명연구단은 길이 1㎜짜리 벌레에서 노화와 건강수명을 예측하는 유용한 지표를 새로 개발했다. 벌레 이름은 예쁜꼬마선충. 몸이 투명해 변화가 생겼을 때 관찰하기 쉽고 얼려서 보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예쁜꼬마선충은 다세포 생물 가운데 최초로 DNA 염기서열이 분석된 생물로 인간과 유전자가 최대 80% 가까이 비슷하고 유전자 수도 총 1만9000개로 인간과 유사하다. 무엇보다 수명이 2~3주 정도로 짧다는 점이 노화 연구에 최적화돼 있다. 수명이 짧아야 어떤 요인에 따라 노화가 발생하고 곧 생명을 다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선충의 움직임을 일정 온도와 습도 조건에서 24시간마다 30초씩 초당 30프레임 속도로 촬영해 가장 빠른 속도로 추출한 '순간최고운동속도'를 쟀다. 그랬더니 이 운동속도가 점차 감소되며 그 정도가 남은 수명을 예측할 수 있는 척도임을 알아냈다.

운동능력이 줄어들었다고 노화, 그리고 수명이 다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실험에서 주변 환경 영향을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에 오로지 이 선충의 운동성이 수명과 연관 있다고 파악했다. 특히 인슐린 수용체를 제거한 돌연변이 선충을 갖고 실험했더니 오히려 순간최고운동속도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걸 관찰했다. 남홍길 식물노화·수명연구단장은 "건강한 수명 연장을 가능하게 하는 인슐린 신호전달 체계가 예쁜꼬마선충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적으로 잘 보존돼 있기 때문에 이번 실험 결과는 향후 사람의 건강한 노화를 위한 연구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초파리나 선충보다 인간 유전자에 더욱 가까운 킬리피시라는 물고기도 새로운 노화 연구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평균수명은 5개월 정도로 선충보다는 훨씬 길지만 연구에는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짧은 편이며 양식도 가능해 실험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쥐 생존기간은 두 배까지 연장

지난해 초 미국 타임지의 표지는 귀여운 아이가 142세까지 살 수 있다는 내용의 사진으로 구성됐다. 미국 텍사스대 헬스사이언스센터 연구팀은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 토양에서 '라파마이신'이라는 항진균제 물질을 발견했다. 이 물질이 세균 주변의 곰팡이를 잡아먹는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연구팀은 라파마이신을 복용한 쥐가 그렇지 않은 쥐보다 1.77배가량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27개월이던 기존 쥐의 생존 기간도 48개월까지 연장시킬 수 있다는 걸 파악했다.

라파마이신은 밥을 적게 먹는 소식(小食)과 비슷한 효과를 갖고 있다. 섭취 칼로리를 제한하면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라파마이신을 인간이 복용할 경우 녹내장이 증가하거나 후두염, 빈혈, 각종 염증 발현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게 실험의 최대 난제다. 다만 가능성은 조금씩 열리고 있다. 매트 캐버레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최근 국내 한 학술포럼에서 "라파마이신의 단기간 복용 시 심장이나 면역 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며 "특히 애완견을 대상으로 정밀한 임상실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노령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수의학 지식 수준이 꽤 높아졌지만 개나 고양이의 노화에 대한 종합 연구는 여전히 부실한 실정"이라며 "중년 동물에게 라파마이신 실험을 해보는 건 중요한 연구과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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